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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Apr 10. 2020

다양한 몸에 익숙한 눈 삽니다

덴마크 ‘성’을 ‘교육’ 하지 않는다


케스트롭 슈벨(Kastrup Søbad) 계절에 상관없이 바다수영을 즐기는 덴마크 사람들


바람이 잔잔하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에 산책을 자주 간다. 4월 초 햇살은 따뜻하지만 아직 바람은 차다. 저 멀리 파랗고 추운 바닷가에 한 구조물이 보인다. 유선의 선을 살린 커다란 목조 구조물은 파란 바다와 잘 어우러져 감탄을 자아낸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4살짜리 아들도 관심이 가나보다. 보드워크를 지나 구조물 쪽으로 뛰어가는 아이를 잡으러 나도 함께 그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중에서 보니 원형을 이룬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연에 다른 인공적인 것을 만드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바닷가 앞에 멋진 레스토랑이나 카페를 줄지어지어 멋진 뷰를 즐길 만도 한데 그런 경우는 여기서 드물다. 자연에 무엇을 새로이 지으려 시로부터 허가받기도 힘들뿐더러 무엇보다 자연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것이 가장 멋지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는 가능한 인공적인 요소는 빼고 ‘자연 그대로’를 즐긴다. 바닷가의 공간을 크게 채운 이런 구조물을 의도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은 실용성이 굉장히 컸다는 이야긴데... 점점 이 구조물의 정체와 용도가 궁금해진다.



365일 개장 바다수영장


지금은 사회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시간. 그 구조 물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유지하며 있었다. 겨울 동안 결핍됐던 햇볕을 쬐며 광합성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여기저기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 보인다. 그리고 나체로 물속으로 천천히 몸을 담그는 사람들이 보인다. 수영복을 입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은 바다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자주 오는 곳으로 나체 수영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이 추운 날에 바닷가에서 해병대도 아니고 ㅎㅎ 평범함 사람들이 수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에서는 겨울철 자연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몸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자연과 한 몸이 되는 게 정신적으로 엄청난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바닷가에서 이러한 사람을 위한 벨후스( Bad hus-바다수영시설)이 여기저기에 많다. 어떤 벨후스들은 전통도 깊고 미적으로도 뛰어난 곳도 많이 볼 수 있다.


코펜하겐 Amager strand 근처 바닷가에 있는 벨후스


스웨덴 Varberg 작은 해변도시의 벨후스


이 벨후스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보통 덴마크인들보다는 조금 더 ‘자연적인 것’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이 있다는 것은 꽤 많은 사람이 바다수영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몸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벗은 몸을 보는 것에 놀라는 게 오히려 더 놀랄 일이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고 자연스러웠다. 이곳에 들어 간 나 같이 ‘자연 그대로의 것’에 익숙하지 못한 나의 눈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라 배회했다. 그곳에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들 그저 자신의 일에만 신경 쓸 뿐 다른 사람은 의식하지 않는다.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신체’ ‘몸’들을 볼 수 있었다.  


엉덩이가 크고 둥근 할머니의 몸
살이 찐 아저씨 몸
미끈하고 젊은 여성의 몸
아이들 그리고 부모의 몸 등등...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게 된다


나도 이안에서 자연스러운 듯 행동했다. 내가 여기서 부끄러움을 표현하는 게 그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바다에 옷을 다 벗고 바닷물에 몸을 담근 사람들은 물속에서 나와 춥다고 몸을 떨거나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차분하다. 그 사람들의 고요한 ‘명상 활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 아담과 이브의 동상까진 아니지만 이렇게 부끄러움 없이 없다는 것은 이것이 생활이고 익숙함이라는 것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몸에 대해 ‘부끄러움’을 키워 왔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의 눈에서 다양한 몸들은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같이 보는 아이들은 이러한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눈에 이러한 다양한 몸의 형상이 익숙해진다. 다른 사람의  나체가 부끄럽지 않다. 자연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그리고 사람도 자연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이성의 몸을 대할 때 다른 한 자연의 한 부분이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연을 대하듯 자연스럽게 몸을 대하고 이성의 성도 ‘있는 자체로’ 받아 들어줄 확률이 높다.


왜 한국사람들은 옷을 입고 수영하는가?


남편과 한국에 갔을 때 실내 수영장은 물론이고 해변에 갔을 때 물어본 적이 있다. 왜 한국 사람들은 수영을 하는데 옷을 다 입고하느냐고. 덴마크 남편의 눈에는 그게 좀 다르게 보였나 보다. 이곳에서는 배가 나와도 수영복을 입는데 거리낌이 없다. 이제는 아이를 둘이나 낳은 아줌마 몸매지만 비키니를 입어도 뭐라라는 사람도 없고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살 타는 것을 피하고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옷을 입는 것도 있겠지만 몸을 가리기 위해 입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몸’을 가려할 것으로 배워오고 ‘완벽한’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다른 사람 눈에 피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신체의 부분을 나누어 디테일하게도 부끄러움을 만들어 냈다. 가슴은 ‘절벽’이고 나온 배는 ‘똥배’ 다리는 ‘조선무’라고 우리 신체 부위들은 다 별명이 붙여져 있고 놀림당하기 일쑤다. 참 감사했던 것은 덴마크 남편을 만나니 이렇게 나의 일체의 일부에 대해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그냥 나의 ‘전체’를 봐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성’에 대한 인식과 연결된다.


몸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 없이 사춘기를 맞이하고 그때 듣는 성교육은 내 몸에서 일어날 수 없는 동떨어진 일로 생각된다. 우리의 몸을 지극히 자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내 몸에 대한 올바른 자각이 있을 때 이성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도 올바르게 형성되는 게 아닐까? 이곳의 성교육은 사춘기가 되어서 시작하는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대해 일찍 받아들인다. 교육을 위해 수업을 개설해서 아이들에게 콘돔 사용 방법과 피임법을 가르치는 게 성교육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대해 부끄러움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버닝썬 게이트나 n번 방 같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여자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그 범죄성의 깊이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성’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기본적인 것이 원인인 것 같아서다. 바다수영을 하고 나체의 몸을 보는 것만으로 성교육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몸에 대해 조금은 ‘자연 그대로’가 더 좋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그대로#우리 몸을 소중히#덴마크 바다에서 생기는 일#성교육 따로 안해도 된다#몸에 대한 다양성 인정#n번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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