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사회적 거리
살면서 이런 일을 내가 경험하리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집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종종 안부 인사가 들려온다. “How are you doing in this crazy time? ”이런 미래가 어디쯤엔가는 있겠지만 내 앞에 이렇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Surreal” “Unreal”이라는 수식어가 오가고 상상하지 못했던 비 현식적 인일이 내 눈앞에 일어난다. 처음 중국과 한국에서 감염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 설 마이 곳까지 영향을 미칠까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덴마크는 일찌감치 Lockdown전략으로 의료시설 수용 가능 범위 안에서 감염자 수 확산을 막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첫 확진자가 생기자마자 곧이어 보육원과 학교 휴교령은 물론이고 재택근무, 10명 이상 사회적 모임 금지 등으로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 사회적 노력을 쏟아부었다. 스웨덴은 집단면역을 대응 전략으로 내세웠단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 가까운 이웃 나라인데 전혀 다른 접근을 한다는 게 의아하고 신기하다. 덴마크에도 사회적 거리 두기가 진행되고 있다. 2미터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의무화했고 이를 어기면 1500 크로네( 한화 약 27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덴마크에서고 정부가 이 상황을 잘 대처해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번 주면 학교와 보육원 시설들이 점차적으로 문을 연다고 한다. 시기가 너무 이른 건 아닌지 준비가 덜 된 건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점차적인 개방 계획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것 같다. 이곳 뉴스에서 한국 이야기도 자주 접할 수 있다. 한국의 진단키트 도입에 대해 그리고 한국의 대응 방법에서 배울게 많다는 등의 기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 가족들은 잘 있나요?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부를 물어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한국을 걱정할 시기는 지나고 덴마크도 상황이 남 걱정할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한국의 가족들이 중에 감염자가 생기면 어쩌나, 다시 감염자 수가 늘고 있다는데 걱정이 된다. 이렇게 한국 소식을 듣고 있자면 걱정되는 이야기도 많지만 그 와중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도 들린다. 대구가 감염자가 증가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의료 관련자들이 자원봉사를 지원했다는 뉴스들이다. 그리고 자가격리 중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음식을 보내주고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는 모습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응원을 주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글들도 많이 읽을 수 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마음의 거리가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는 한동안 느끼지 못했던 뜨거운 감정들을 느낀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회적 거리를 의무적으로 두어야 하는 시간. 항상 두어왔던 다른 사람과의 거리를 의식적으로 둔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거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해외생활을 하며 나는 이곳의 모습을 보며 내가 자라온 곳과 상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느 곳이 낫다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작업은 아니다. 그 생각의 차이가 그 다른 점이 나는 참 흥미롭고 신기할 뿐이다. 덴마크에서는 개인과 개인의 거리가 한국인보다 멀다고 느껴진다. 내가 이곳에서 외국인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덴마크인들 사이에도 그 거리는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개인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게 미덕인 이곳에서는 이 거리는 필수적인 것이다.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있어요
사람들 간의 거리가 더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바로 사회적인 시스템이다. 현재 코로나19 사태에서도 덴마크 사람들은 국가의 강력한 시스템 안에서 꽤 큰 안정성을 보장받는다. 모든 병원은 공공재이며 국민의 세금에 의해 운영되고 내가 감염이 된다면 직접적인 비용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소득이 줄어든 개인들과 기업들에게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 이러한 초유의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중앙시스템의 효율성이 빛을 바란다. 국가의 리더그룹과 각각의 지방 단체들은 잘 짜인 계획과 단단한 전략으로 시스템은 참 기능적으로 작동한다. 위기 상황에서 국가가 얼마나 강하게 견딜 수 있는지 그리고 다시 회생할 수 있는지를 조사한 국가 리질리언스 인덱스( Global Resilience Index 2019 by FM global)에서 보여주듯 덴마크는 노르웨이 다음으로 2위의 자리에 있다. 이 상황이 걱정이지만 국가는 강하며 우리를 도와주라라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다.
사회적 거리를 느끼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다
이러한 효과적이고 안정적인 시스템 안에서 볼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게 있다. 덴마크 뉴스에서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 이야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덴마크에서는 대구에 바이러스가 공기 속을 매울 때 그 바이러스 불구덩이로 들어가 자신의 목숨을 걸며 다른 사람을 구하고자 달려간 작은 영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덴마크에서는 개인으로서 우선은 그럴 이유가 없다. 개인보다는 시스템이 한 발짝 더 빠르게 움직인다. 한 도시에서 의사가 부족하면 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바로 다른 도시의 의사를 도움이 필요한 지역으로 이동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치된 의사는 개인을 희생한 ‘자원’이 아닌 그냥 ‘일’을 한 것에는 차이가 크다. 내가 남을 도와주고 싶고 희생을 불사하고 나서는 것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
히로이즘(heroism)이라는 것은 남을 위해 용기를 내어 누군가를 도와주는 영웅적인 행위를 일컫는다. 이곳에서 영웅을 보기가 힘들다. 덴마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소중히 여기고 기여하고자 하는 책임감 있는 독립된 개인이 되고자 한다. 자신이 번 돈의 반이 넘는 소득을 세금으로 내는 것을 마다 하지 않는다. 남을 직접 돕지는 않지만 약자와 가난한 자를 세금으로 돕는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돕고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돕는 영웅적 이야기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나는 영웅들이 그립다
우리는 이런 영웅들을 보며 삶의 영감을 찾는다. 나 자신보다 남을 돕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는 이런 개인들의 이야기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다. 시스템과 제도의 배경에서 다른 사람의 도움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사회에 살다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타인을 깊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 종종 느낀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누군가를 위해 도와줄 생각을 적게 하게 된다. 내가 아니어도 그 사람은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행복국가 패러독스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분비되며 엄마가 아이에게 보살핌을 주고, 연인이 사랑하며, 우리가 남에게 도움을 줄 때 분비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도울 때 행복함을 느낀다. 복지제도가 잘 발달하고 부강한 나라에서 좋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의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 냄새가 그립기도 하다.
바람이 세다.
풍력 발전기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돌아간다.
최고의 효율성을 위해 거리가 필요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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