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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Aug 07. 2020

덴마크, 보이지만 말하지 않는 것들

육아하며 느끼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나의 모든 생각에 기울여 주고 나만 바라보는 초기의 결혼 생활은 모든 게 쉬웠다. 남편과 아내로서 우리 둘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다. 둘이 함께라면 어려운 문제도 척척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둘에게만 집중하면 되었던 시간은 성격도 잘 모르겠는 새로운 존재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요구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이전 경험이 없는 새로운 고전에 하루하루 진땀을 뺀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과 나만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만으론 부족하며 가족 안의 여러 사람을 이해하고 만족시켜야만 하는 복잡한 관계로 들어선다.



그 콤플렉스 한 과정을 시간이라도 충분하면 풀어 나갈 수 있을 텐데 문제는 모든 문제들을 좋은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기에 아이를 둔 부모의 하루는 너무나 짧다. 육아는 육아서적대로 ‘척척’되지 않는 큰 도전이다.


아이를 키워나가는 일 자체도 어려운 일이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누군가와 함께 아이를 같은 방향으로 키워 나간다는 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을 때가 그룹과제를 해야 할 때다. 주어진 과제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맞춰다며 일을 하는 게 더 어려웠다. 육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 그룹과제를 남편이라는 성별도, 생각도, 성격도, 자란 환경도, 가치관도 그 밖의 아주 많은 것이 다른 사람과 이 그룹과제를 끝마쳐야 한다. 나 같은 경우 남편이 나른 나라 사람이고 둥지를 다른 나라에 틀었기에 그 과제는 난이도 더욱 업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도전 과제가 그냥 풀리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 대해 잘 몰랐던 점들을 속속들히 알아간다. 남편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지,  인내심은 어디까지 인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행동에 대해 어린 시절 가정교육이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 등등 많은 것들을 배워가며 이해해간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서로 다른 부분이 많지만 가치관이나 우선순위 같은 중요한 부분에서는 같은 부분들이 많다. 가끔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랐지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서로에게 놀랄 때도 있다.


덴마크 남편과 육아를 하며 이곳 사람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지를 관찰하며 발견한 몇 가지를 적어볼까 한다.



가족 안에서도 평등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애교를 보고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울 때가 많다. 이런 애교 타임에 빠지지 않는 게 있지. 아이에게 누가 더 좋냐는 질문을 발사한다.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무 생각 없이 했던 이 질문에 남편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아무리 장난이라 할지라도 그런 질문을 왜 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 이곳 어디에서도 둘 중에 누구를 선택하는 질문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깊게 고민하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 장난으로 하는 질문이었는데 남편은 아이에게 너무나 잔혹한 질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단다. 특히, 어린아이에게 엄마나 아빠를 한 명만 골라야 하는 그런 상황을 왜 일부러 만들어 질문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다. 아이의 선택이 어떤 근거에 바탕이 있는 논리적 선택임을 떠나 아이에게 그런 상황을 만들어 선택하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무엇을 얻고자 그 질문을 했을까 생각해 본다. 엄마와 아빠 중 시간을 많이 보낸 사람을 더 좋아하거나 좋은 경험을 다수 한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웃음을 주기에 했던 아이들에게 했던 대한 질문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될 줄이야.


그리고 아이들은 엄마를 찾을 때가 많고, 엄마와 애착관계가 더욱 빠르게 이루어진다.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함에 있어 남편의 육아참여를 당연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정작 나는 아빠의 자리를 평등하게 대해줬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하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이 표출된 말이나 행동들이 엄마 위주로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본다. 부부 사이에도 육아에서도 좀 더 평등할 수 있는 법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다. 덴마크에서는 한쪽이 쏠리지 않는 균형을 곳곳에서 찾는다. 가족 안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아, 평등의 길은 멀고도 멀다.



외모 칭찬


어느 문화나 어떤 가치관이나 에티켓이 강조되어 흔히 보이거나 많이 말해지는 게 있으면 빨리 습득할 수가 있다. 하지만 덴마크에서의 다른 점은 이런 습득이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누구도 말하지 않고 또 그렇게 하지 말라 말하지도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나에게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덴마크 사람들이 잘하지 않는 것을 발견한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덴마크에서는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잘하지 않는다는 것. 덴마크에 오기 전 몇 년을 미국에 산 경험이 있는 나는 외모 칭찬에 익숙해져 있었다. 굳이 외모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외모나 그 사람의 스타일을 칭찬하는 것은 항상 첫 대화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어왔다. 그리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기에 칭찬을 하는 말은 나쁠 게 없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스몰토크와 칭찬의 기술이 이곳에선 잘 통하지 않았다.


육아를 하고 다른 엄마들이나 아이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나의 아이에 대해 보자마자 코멘트를 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대신 나는 상대방의 아이에게  ‘눈이 크다’ ‘코가 오똑하다’ ‘속눈썹이 길다 ‘ 등등 보이는 대로 칭찬될만한 것을 모아 그대로 발사했다. 돌아오는 칭찬이나 코멘트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덴마크에서는 외모에 대한 코멘트를 잘하지 않는단다. 외모를 치켜세우고 칭찬하게 되면 ‘외모’라는 가치가 중요시 여겨지게 된다. 외모에 대한 칭찬을 하면 듣는 사람은 당장 기분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칭찬하면 ‘외모’라는 가치가 다른 가치위에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외모가 뛰어나면 좋겠지만 모두가 뛰어난 외모를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외모는 그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한 게 아니고 타고난 경우가 많다. 아이들에게 외모나 노력 없이 성취한 결과를 칭찬하게 되면 오히려 노력을 하지 않게 되고 성공된 인생을 살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덴마크에 와서 많이 놀랐던 것은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너무 과하게 꾸미지 않고 ‘일반인’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스를 봐도 남자 앵커는 물론이고 여자 앵커들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은 듯 나오는 경우가 많다. ‘저 사람들은 헤어/메이크업도 해주는 사람도 없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앵커의 경우 직업에 있어서 외모가 기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그 앵커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여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라는 얘기를 남편에게 듣는다. TV를 보는 사람도 TV에 비추어질 사람도 ‘외모’라는 것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하다.



보이지만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게 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대해 집중을 하지 않다 보니 사람을 볼 때 외모부터 보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봤다 하더라도 표현을 하여 외모의 중요성을 프로모션 하지 않는다. 외모는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은연중 외모가 뛰어남을 칭찬함으로써 그 가치를 프로모션 시키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새로운 엄마나 아기를 만났을 때 외모 칭찬을 빼고 나니 처음에는 할 얘기가 많지 않다. 아이들을 봐도 이제 한번 더 필터를 거친다. 무턱대고 보이는 대로 외모를 칭찬하기보다는 한번 더 생각하고 질문을 한다. 밤에 잠은 잘 자는지, 건강한지, 잘 먹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등등을 물어보니 엄마들과의 대화가 한결 잘 흘러간다.





유아서적도 많지 않은 이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는지에 대해 상세히 적힌 가이드라인도 없고 자율성을 강조하는 이곳에서는 남의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에 대해 누구 하나 왈가왈부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속에는 비슷한 패턴이 있는듯하다. 옳고 좋은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오랜 기간 그래 왔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모들에게 배운 것들 그리고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생각되는 가치관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이 사람들도 다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다 말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다 말하지 않는 방식이 외국인으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고 답답한 면이 있다. 그리고 왠지 차갑고 정적인 것 같아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고 느낄 때도 많다. 그렇지만 말을 하는 데 있어 가치관이 들어있고 말을 해서 강조되지 말아야 할 가치가 프로모션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건 아닐까? 어떤 것을 표현함으로써 얻는 것도 있지만 의도되지 않게 높여지는 게 있는 게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내 아이들이라는 인간과 남편이라는 인간 그리고 나 자신이라는 인간을 알아가는 배움의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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