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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란 Aug 17. 2020

이제는 내 마음에 여유를 내어 줄 시간

북유럽 여름, 휴가, 여유에 대해

예전에 폴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이곳저곳 여러 곳을 둘러보며 재밌는 경험을 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머릿속에는 버스 안에서 고정된 시선으로 웃음기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표정의 얼굴로 그저 자신의 갈 길만 묵묵히 가고 있었고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나도 모른다. 사람에게도 첫인상이 있듯 장소에도 첫인상이 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에 대한 느낌이 바람을 타고 다가온다. 굳이 느끼려 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느끼고 있다. 왜 그런 느낌을 느끼는지 그 장소가 건네주는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깊게 알아보는 것도 여행의 재미인 것 같다.



덴마크도 그런 첫인상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인상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다. 덴마크 사람들은 겨우내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시건조차 잘 주지 않는다. 한 점의 감정도 보여주지 않을 것처럼 차가워 보인다. 하지만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약간은 ‘정신이 나간냥’ 언제 그랬냐는 듯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이웃들을 많이 보는 날들도, 대화를 나누는 날들도 이런 봄날이 되면 그 빈도수가 극적으로 늘어난다. 가둬 두었던 마음의 여유를 여름이 되면 방출한다. 여름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은 더더욱  ‘여유로운’ 느낌을 뿜뿜 뿜어낸다.



북유럽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여~


코로나로 바뀐 일상 때문도 이지만 가족들끼리 산책을 하는 모습들 야외 카페에서 시간이 많은 듯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여유’라는 단어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해만 나면 태닝을 위해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여유로운’ 신을 만들어 낸다.



내가 보는 이곳의 여름은 이렇다.

이곳의 여름은 사계절 중 두계절을 마무리한 전반부 후의 휴식시간이며 캄캄하고 어두운 가을과 겨울에 비참하게 굴복하지 않기 위해 나를 위해 열심히 ‘햇살’과 ‘쉼’을 챙겨 놓는 기간이다. 날씨가 좋지 않은 여름날에 대한 덴마크 사람들의 실망은 집에 돌아가면 먹으려 했던 꼭꼭 숨겨 둔 사탕을 동생이 먹어버린 실망감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좋지 않은 여름, 그 실망의 목소리는 크다. 그리고 날씨가 좋을 거라는 기대를 너무나 조심스럽게 비추곤 한다. 혹여 날씨가 좋지 않으면 무너질 기대감과 상실감을 최소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여유에 대해


이곳에 살아보니 그들에게 보였던 여유로움이 조금은 무엇이었는지 알 것 같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그 순간을 잡아 그 순간 속에 사는 것, 그리고 바로 내 앞에것/옆에 것을 소중히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는 게 아닐까...



이곳의 여유를 보며, 느끼며 생각한 것들을 적어본다.



여유로운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유롭다라는 것은 경제적인 여유도 있겠지만 시간적인 여유 그리고 마음의 여유도 포함한다. 그들 속에서 나도 속도를 맞추어 나가 본다. 생각보다 늦추는 데에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된다. 시간이 남으면... 돈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여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하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도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살기란 나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라느것을 느낀다. 시간만 있다면, 경제적 여유만 있다면 나도 여유로워 보이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름휴가 시간을 보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여유로운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내 마음이 여유롭지 못하면 여유로울 수 없다는 의미일지 모르겠다. 가끔은 나를 푸시하고 추구하고 달리고 끙끙대며 땀을 흘리고 싶어 질 때가 있다. 그래서 여유로움이 슬로우 모션처럼 나를 뒤로 잡아 끌어당기듯 감당을 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바쁘고 싶고 추구하고 싶고 자꾸 달리고 싶은  내 마음의 쉬지 않는 ‘모터’가 있다.



특히 여유가 생활화되지 않지 않으면 이 긴 여름휴가 기간이 그리 쉽지가 않다. 매년 한국에 가느라 써버린 휴가기간을 이번에는 덴마크에서 써야 했다. 진짜 다른 덴마크 가족들처럼 시간을 써보고 여유를 부려본다.



나는 항상 달려야 한다는 외부의 푸시를 느끼며 살아왔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 왔고 그런 외부의 압박이나 동적인 느낌이 없으면 삶에 생동감이 떨어지는 듯했다. 그런 푸시가 사라지니 내 자신을 푸시할 동력이 떨어진 것만 같았다. 살아있는 느낌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시간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여유로움을 즐길 수는 없다. 내가 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 자체를 바꿔야 한다. 내가 쉬어야 하는지, 합리적 이유를 찾아 내 머릿속에 새겨야 한다. 빨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너무 많은것을 이루려 하지 않아도 괜찮다. 여유에 대한 Reasoning 자체를 바꿔야 했다.



나는 내가 ‘쉬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쉬는 것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여야한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은근히 쉬는 것 = 덜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그래 왔다.



하지만 덴마크 남편은 달랐다. 긴 휴가를 다 쓰고, 여기저기 쉬는 날이 많아도 그런 죄책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쉬지 못할 때 자신에 대한, 자신의 가족에 대해 여유를 제공해야할 ‘의무’를 지키지 못해 죄책감이 크다고 한다.



이번 휴가도 일주일을 독일을 다녀오고 3주 동안 아이들을 위해 ‘쉼’과 ‘휴가’를 쓰는 것이 나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내 안의 모터의 버튼이 고장 난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여유를 만끽할 줄 모르는 나를 발견한다.



여유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여유로운 사람들 사이에 살게 되니 나도 여유롭게 살아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 여유를 위해 주어진 시간을 얼마큼 창의적으로 잘 활용하고 내 삶에 도움을 주는지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인 양 보인다.



일상을 잊고, 삶을 리셋하는 이 여유의 시간에 나는 일상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항상 무엇인가로 채우고자 노력하며 이뤄내야만 하는 게 있었다. 참 호강하는 소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잠시 잊는 이 시간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힘이 든다.



주위 사람들을 보니 여름휴가는 생활이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그리고 그것에 필요한 필요한 모든 것, 인프라를 구축해 놓고 있다. 가진 연장과 도구가 있으니 쉬는 것도 일사천리다. 참 잘 쉰다.



우리 엄마는 65살이 넘으셨다. 작게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손을 떼지 못하신다. 일을 많이 하는 것이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막상 일을 그만두셔도 걱정이다. 그 많은 여유의 시간이 무거운 압박감으로 돌아와 견디지 못하실까 겁이 난다. 여유라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평생 연습이 없으신데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막상 나도 엄마와 그다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부모님들을 보면 많이 다르다. 두 분 다 은퇴를 하셨고 자신들의 여유시간을 너무나 능숙하게 보내신다. 매년 휴가 때마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 연습을 해오신 것이다. 여유를 즐기시는 모습에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 한국에 엄마 모습이 겹쳐 마음이 아프기도 하다. 매년 가지셨던 휴가의 기간들은 노후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지에 대한 연습의 시간이 된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정확히 어떻게 시간을 보내실지 아시는 듯 보인다.





워라밸과 여유로움의 대명사인 북유럽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유를 타고났구나. 경제적 시간족 여유가 뒷받침해줘야 가능하지. 참 시간이 많아 좋겠다 부러워하던 마음에서 이제는 나도 내 자신에게 ‘여유’의 마음을 선물하고 싶다. ‘여유’도 선택이고 다른 것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다. ‘여유의 스킬’을 이제는 좀 배울 때다. 너무 늦기 전에. 죄책감 없이.



- 2020년 여름휴가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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