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드에서 배우는 육아
남편은 내가 선택할 수 있지만 남편의 가족들은 선택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혼자 오는 게 아니라 ‘패키지’와 함께 오지요. 남편을 아무리 잘 선택했더라도 그 가족들이 나와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온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 안에서 함께 살아감으로써 부딪치는 경우도 많이 생기기도 합니다. 덴마크에도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라 이러한 가족 간의 갈등이나 불만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외국 며느리로서 ‘왜 이렇게 하시지?’ 하며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 육아로 글을 쓰다 보니 우리 시부모님들의 육아방식이나 태도는 어땠을지 궁금해집니다. 내 남편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아들을 어떤 철학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키우셨는지 알고 싶어 집니다. 이제 결혼도 7년 차 시부모님도 그 시간만큼 알아 왔습니다. 몇 가지 확실한 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몇 가지를 적어보고자 합니다.
1. 자식들의 의견과 결정을 존중하고 믿어준다
처음 자식의 의견과 결정을 존중해 주신다는 것을 느낀 것은 처음으로 나를 부모님께 소개한 후였던 것 같습니다. 소개 후 남편에게 나에 대해 그리고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당연히 궁금하던 저는 남편에게 물어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고 결혼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고 부모님은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시고 내 선택에 기뻐해 주셔... 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떠나서 부모님은 내가 한 선택을 우선 지지해 주셔...
덴마크 남편 왈
뭐 이런 말들은 많이 들어봤지만 막상 내 자식이 나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문화권이 아닌 다른 문화권에서 온 배우자를 소개하면 하면 솔직히 전 고민이 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우리 엄마의 경우 외국인과 결혼한다는 말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셨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과 그리고 멀리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백 프로 지지해 주시기보다는 약간의 고민하는 빛을 비추셨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많은 부분에서 자식의 인생에 간섭하시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 아이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가끔 속으로는 바라는 바가 있으시지만) 직접적으로 자식들에게 말하거나 혹여나 은연중에 강요할까 봐 조심하시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저의 경우는 가끔 그런 시부모님의 태도가 ‘좀 관심이 없나’ ‘ 정이 없으신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분들을 알아오니 자식들의 생각과 결정을 존중하고 독립된 주체로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여주는 것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저도 이런 부모가 될 수 있을까요? 내가 생각해서 더 나은 길을 가지 않고 위험해 보이는 길을 간다고 소리치는 자식에게 “그래 너를 믿는다. 한번 가 봐라”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내가 이미 경험해 보고 내가 맞을 것인데 자식의 성숙해 보이지 않는 의견을 진정으로 지지해 줄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서양의 사고방식으로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독립적으로 키우는 게 우리의 사고방식과 차이점이 있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진정 좋은 가치관을 가지고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그 선택의 문 앞에 서가 아니라 그전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요?
2.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는다
아들 둘을 키우시고 이제는 손주들까지 꽤 큰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가끔은 내 남편, 내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기를 (나도 모르게) 바랄 때가 있어요. 다른 자식보다 더는 아니지만 그 특별한 관계를 원하곤 합니다. 편애하지 않는 게 맞지만 사랑과 관심을 모두가 바라잖아요?! 시부모님들은 항상 두 아들을 그리고 그 가족들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해 주시려 노력하시는 게 보입니다. 손주들 선물을 살 때도 똑같이 공평하게, 도움을 줘도 똑같은 양의 도움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약한 손가락이나 강한 손가락에 더 감정이 치우치거나 관심이 더 갈 때도 있는 것 같아요(저도 아이를 키워 보니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편애를 하거나 관심이 치우치는 것을 피하시는 것 같아요. 누구 하나 무엇을 성취했거나 좋은 기회를 얻었을 때도 속으로는 대견해하실지 모르지만 겉으로 그 아들을 치켜세우거나 대단한 일로 보시지 않으려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 관심의 중심에 있는 아들보다 오히려 관심을 받지 않는 아들도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얀테의 법칙’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덴마크 사람들의 사고방식 중 하나인데요. 일종의 리마인더처럼 생각하고 하고 있는 신념입니다.
네가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하거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얀테의 법칙
남편이나 시부모님들한테도 이런 생각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자식들이 무엇을 잘했을 때 그들이 자기가 특별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던가 가치가 높다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가르칩니다.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편애하는 게 아이들에게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지 알아야 하고 의식적으로라도 공평하게 대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3. 도움이 필요할 때 항상 도움을 주는 부모가 되려 하신다
가끔 저는 남들에게 먼저 배려를 받거나 그리고 누가 먼저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누가 내 상황과 내 관심사를 미리 파악해서 안부를 물어 준다거나 아님 그에 필요한 도움을 주면 그렇게 좋아합니다ㅎㅎ 그리고 많은 한국사람들이 그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외국인들보다 훨씬) 제 생각엔 그게 ‘정’의 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가끔 남편과도 문제가 많이 되는 부분이
왜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 몰라? 내가 말하기 전에 미리 알아주면 안 돼?
문제인 것 같아요. 남편은 말하죠. “아니, 난 말하기 전엔 몰라” 사고방식이 더더욱이나 다른 국제커플에게 상대가 말하기 전에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시부모님도 마찬가지예요. 육아로 힘들다는 걸 아시면 그냥 좀 알아서 도와주시면 안 되나 뭐 이런 생각이 들어 좀 서운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말이 좀 책임이 없이 들렸습니다. 그저 알아서 챙겨 주셨으면 좋겠다고 하고 있었던 거죠.
하지만 시부모님들은 저희에게 혹여 피해를 주거나 신경 쓰이게 할까 봐 극도로 조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모든 것을 말하지 않고 그냥 척척 알아서 도와주는 것도 참 좋겠지만 그 속에서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 일도 많잖아요. 적당한 거리에서 항상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려는 마음도 이제는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도움이라는 게 나는 도움이라고 생각해서 줬는데 상대에겐 부담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도움을 주기 위해서 저희 시부모님들은 거의 전에 물어보시는 편이에요. 그리고 서로 상의를 해서 그 도움이 진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시는 것 같아요. 서로 부담이 되지 않고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거죠.
이제 두 분 다 은퇴를 하셨고 지금은 노후를 즐기고 계십니다. 열심히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셨고 없는 살림으로 시작하셨지만 절약하시며 두 아들을 키워 내셨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있는 자식들을 위해 도움이 되고자 항상 노력하십니다. 하지만 행여 부담이나 방해가 될까 조심하십니다. 저도 제 아이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뿐만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들을 만들고 내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때도 말입니다.
저의 덴마크 시월드는 그렇게 드라마틱하진 않습니다. 그렇다고 완벽하거나 좋은 것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나름의 고충도 있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막상 제가 아이를 키워보니 이분들이 하시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 배우고 싶은 점에 더욱 초점을 맞추니 다른 육아서적 부럽지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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