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었다. 원래는 그런 것 따위 모르고 샀으나, 청소기를 사고 얼마 안 되어 치명적인 문제점을 알게 되었다. 자동 먼지 비움의 편리함 때문에 구매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먼지통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그래서 그곳은 가루응애의 천국이 되어버린다는걸.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안도했다. 우리 집 청소기는 멀쩡하구나. 남의 집 일이거니. 삼성만 문제인가, LG를 사서 다행이구나 이러면서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법이고 이번에도 역시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게 아니었다. 8월 초 일주일 정도 집을 비웠으며, 집에 막 도착했을 때 온 집안은 숨 막힐 듯한 더위와 습기가 가득 찼다. 그때는 청소기 걱정 따위는, 가루응애 같은 건 떠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일주일 만에 에어컨을 켜니 온도가 잘 안 떨어지네. 이미 집안의 벽과 바닥이 태양열에 따끈하게 달구어져 있었다. 환기가 안된 채로 일주일 동안 잘 구워진 집은 쉽게 온도가 떨어지지 않았고 무더위가 이런 건가 싶게 짜증이 자꾸 올라왔다. 그래도 그것도 잠시. 결국은 에어컨이 이기고 우리는 다시 예전의 시원한 집을 갖게 되었는데.
드디어 개학. 신나는 개학. 게다가 월요일이라니. 휴가구나 휴가야. 월요병 같은 건 완치된 지 오래. 신나게 청소하고 집안일하고, 아무 문제 없었는데.
문제는 화요일 아침이었다. 그때는 문제인지도 몰랐다. 오전에 청소기를 돌리려고 들었는데 이상하다. 청소기에 있는 먼지통이 비워져있지 않았다. 자동 비움을 했으나 먼지통의 먼지는 제대로 흡입이 되지 않은 채 청소기에 걸려 있었다. 먼지통이 좀 열려있는 채로. 그래도 뭐 그러려니 했다. 이놈의 청소기는 비싼 값을 못하고 이리저리 불편하게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 하나가 가끔 이렇게 흡입이 되다 마는 거였다. 조치는 간단하다. 먼지 통을 열어서 먼지를 털고 청소기로 다시 빨아들이면 그만. 어정쩡하게 걸린 채로는 아무리 먼지 비움을 진행시켜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아예 다시 흡입하는 게 낫다. 그랬는데.
청소기 스테이션의 상단부가 이상하다. 우리 집은 먼지가 잘 내려앉는 데다가 특히 이렇게 까만 전자기기 위에서 더 눈에 띈다. 그래서 청소기를 꺼낼 때면 습관적으로 청소기 스테이션의 상단부의 먼지도 쓰윽 하고 닦아주곤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매일 보던 먼지 모양이 아니다. 하얀 점이 콕콕콕.
불현듯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하얀 가루인 줄 알았는데 벌레였어요! 청소기를 버렸어요! 박멸할 수가 없어요! 따위의 벌레 후기들. 아아. 하얀 점을 지긋이 째려본다. 역시. 역시나. 움직인다아아앙아ㅏ아아아아아아앜!!!!!!!!!!
알코올 티슈로 싸악 닦아 내고 청소기 분리하고, 먼지봉투를 갖다 버리고 알코올 티슈로 다시 한번 닦아내고, 청소기를 세척하고. 알코올 티슈로 다시 닦아 내고. 그 악명 높은 청소기 가루응애.
다행히 초기에 발견한 편인지 금세 발견 개체 수는 줄어들었다. 처음에 50개 정도면 다음엔 20개, 그다음부턴 10개 정도? 집에서 시간이 많은 백수여서 수시로 청소기를 째려본다. 알코올로는 안 죽는 것 같지만 그래도 기절이라도 하라는 마음에 알코올 티슈로 닦는다. 닦는 김에 우리 집에서 홀대받던 구석구석도 다시 한번 닦아 본다.
보이는 개체 수가 줄어드니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긴다. 혹시라도 우리 집 전체에 퍼졌으면 어쩌나 싶다. 약간의 먼지에는 항상 관대하게 대해줬지만 이제는 먼지 한 톨만 내려앉아도 도끼눈이 되어 째려본다. 이젠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도 잘 모르겠다. 째려보면서 스트레스받느니 보이는 족족 닦는 게 오히려 나으려나. 나 그렇게 부지런하고 꼼꼼한 사람이 아닌데. 그래서 이사단이 났나. 갑자기 왜 가루응애가 나타났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여름부터였던 것 같다. 진작 먼지봉투를 바꿔줬어야 했는데. 여름엔 한 달에 한 번씩 바꿔주라던데. 무신경했다. 시간을 조금 돌릴 수 있다면 집을 비우기 전 청소 봉투도 비우고 갔어야 했는데.
가루응애, 청소기 가루응애로 검색하면 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나온다. 박멸을 했거나 못했거나. 예전에 검색해서 봤을 때보다 후기가 훨씬 많아졌다. as를 신청하면 수거해서 소독, 박멸 후 다시 보내준다는데 그래도 다시 생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받자마자 기어다니는 응애를 본 사람도 있고. 더 이상 보지 않은 사람도 있고. 집에서 비오킬, 로보킬을 뿌려서 박멸했다는 사람도 있고. 비닐봉지에 밀폐해서 2주~한 달 정도 두면 굶어죽는다나, 숨이 막혀 죽는다나. 정말 각양각색이다.
as 하기에는 응애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서 집에서 해결해 보기로 한다. 밤사이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확인해 보니 10개 미만인 듯. 째려보고 있노라니 꾸물꾸물 기어간다. 내 몸에도 기어다니는 것 같이 간질간질하다. 이거 사람한테 해로운가. 모낭충도 밤사이에 얼굴을 기어다닌다 하지 않나. 그래도 사람에게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같이 살아도 되지 않나. 집 먼지 진드기나 침구류에도 내가 모르는 애들이 같이 살고 있을 수도 있잖아. 왜 이렇게 예민해졌나 했더니 역시 눈에 보여서 그런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이 먼지톨만한 진드기 모른 척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천성이 무던하니까 안 보이면 그만이라고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미 눈에 띈 이상 그럴 수 없다. 저렇게 꼬물대는 게 보이는데 어떻게 없는 척할 수 있겠어.
가루응애 번식, 전파, 이동으로 여러 개 검색해 보았지만 딱 맘에 드는 결과는 없다. 대략, 1개체가 100개 정도로 알을 낳고 혼자서도 낳고(이게 제일 싫음), 2~일주일 사이에 성충이 되고, 건조한 환경을 싫어해서 건조하면 건조한 상태로 진짜 먼지처럼 7개월 정도도 버틸 수 있다고. 덥고 습한 환경이 조성되면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왕성하게 번식. 혼자서도 번식. 그게 진짜 싫다. 그럼 한 마리도 남겨서는 안되는 거잖아. 그래서인지 박멸이 확인되기 전까지 청소기도 사용을 안 하고 사용한다 하더라도 먼지 비움 기능을 쓰지 않게 된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봉투 교체도 귀찮지만 매일 청소기 먼지를 따로 버리는 것도 귀찮지 않나. 원래 그랬어야 했나.
아악.
아아악.
간지러워. 간지럽다. 왜 이렇게 간지럽지.
약을 쓰기 찜찜하지만 집에 있는 비오킬을 물티슈에 흠뻑 적셔서 청소기를 닦아본다. 약을 뿌리는 사람도 많지만 전기 제품이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 대신 축축하게 닦아주고 말려본다. 30분,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들여다보느라 이게 늘어나는 건지 줄어드는 건지, 움직이긴 하는 건지 이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약으로 닦아줬으니 괜찮지 않을까.
만만의 콩떡. 전혀 괜찮지가 않다. 처음부터 개체 수가 엄청 많지도 않았고, 한번 닦아준 뒤로 확연히 줄어든 상태였다. 게다가 닦아준 이후에도 아예 안 보이는 게 아니라 한참 뒤에 보면 한두 마리가 또 보이니 닦아주기 전과 후가 체감상 전혀 차이가 없다. 게다가 문제가 더 생겼으니 검은 플라스틱 상단에 하얀 물 자국이 지저분하게 동동동 찍혀있는 게 아닌가. 어헉?
비오킬이 화학약품이다 보니 플라스틱이랑 만나면 변색이 될 수도 있다잖아!! 맙소사. 효과는 못 본 채 청소기만 더 못생겨졌다. 혹시나 싶어 알코올 티슈로 더 박박박 닦아 보고, 비오킬을 더 축축이 적혀서 닦아 보고, 스티커 제거제로도 닦아 봤으나 무용. 내 온갖 무용한 것들을 좋아하고 사랑하나 이건 아니지. 흑흑. 너무 속상해하니 영감이 스티커를 붙여서 가려보라고 한다. 딸랑구는 신나서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다행히도 다음날 아침에 보니 전날보다 자국이 줄어든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상복구가 되는 걸까. 영감님한테 이야기하니 이미 얼룩에 익숙해진 게 아니냐고 한다. 이럴 수가.
스카치테이프를 살짝 말아 검지에 살짝 끼운다. 죽지도 않는 알코올 티슈보다는 테이프로 찍어내는 게 더 효과적인 것 같다. 가루응애가 눈에 보일 때마다 찍어 낸다. 어느 구석에 숨어 있다가 뽈뽈 기어 나오는지 그래도 한두 마리씩 계속 보인다. 계속 찍어낸다. 몇 개 안되는 벌레여서 그런지 물티슈나 알코올 티슈보다는 이 방법이 편한 것 같다. 오늘도 청소기를 못 돌리고 밀대로 밀어준다. 돌돌이도 큰 걸 하나 사야 하나. 정전기 포로는 개운하지가 않은데. 알코올 티슈로는 그동안 지나쳤던 집안 곳곳을 소독한다. 오늘 하루 반짝 일지 모르겠으나 안 하고 못 버티겠다. 집에 화분이 많아서 그동안 날파리는 많이 자주 봤는데 새삼 가루응애는 참지 못하겠다. 왜 너만은 못 참겠는지.
집이 쓰레기장이라도 된 것 같다. 이러고 하루 종일 집안을 째려보니 온통 버릴 것투성이다. 저것들 때문에 우리 집에 벌레가 들끓는 거야.라며 비약하기 시작한다. 진짜 들끓을 리 없을 거라는 생각을 바탕에 깔고 비약이라고 우겨본다. 책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안 보는 책은 싹 가져다가 버려야 하는데. 역시 책은 빌려 읽어야 해. 소유하는 건 의미가 없어. 죄책감 없이 다 버리고 싶은데 또 버리지도 못하는 나. 쓰레기 하나에 추억과, 쓰레기 하나에 사랑과, 쓸쓸함과.... 다 집어치우고 버려야 하는데 도무지 버릴 줄을 모르니. 미니멀하게 깔끔하게 살면 벌레 걱정 따위 안 할 수 있을 텐데. 우선 베란다의 화분부터 처치하자. 안 보는 책들은 당근을 해도 인기가 없으니 그냥 버려야겠지. 다 못 푼 문제집들도 과감히 버려야 하는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풀려야 직성이 풀리고.
당분간 하얀 먼지들에 강박이 생길 것 같다. 움직이나? 움직이나? 움직이나? 몰라도 되는 세상을 알아버렸다. 발견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난 지금. 한 시간마다. 테이프로 콕콕. 어차피 겨울이 되면 다 사라질 거라던데. 춥고 건조해지면 못 버틴다던데. 그렇게 다 죽은 것 같아 보여도 여름이 되면 다시 나타난다던데. 부질없다 부질없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그냥 같이 살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사실 이런 벌레들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화분 때문에 최근에도 약간의 날파리들과 공생하고 있고, 가루 응애는 예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유독 이번에 더 참기 어렵다. 일관성이 없는 변덕쟁이 같은 성격이어서 그런가. 응애가 나타난 지 3일차.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 청소기 스테이션에 움직임이 적은 하얀 점들을 콕콕 찍으면 생각해 본다. 왜 나는 너희들을 못 참는가. 사실 그동안 우리 집에서 이런 벌레들은 쌀, 콩, 잡곡류에서 많이 생겼다. 대부분 퍼지기 직전 봉지 안에서 검거할 수 있었으며 바로 버리는 걸로 거의 조치 완료되었다. 하지만 청소기를 버릴 수 없지 않은가. 게다가 분해도 할 수 없다. 약을 시원하게 뿌릴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 녀석들은 매일 조금씩 출몰하여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 아직 여기 살아있어.
차라리 안 보이면 좋으련만. 우리 집 이불에 혹시 있을지 모를 진드기들은 안 보이니까 괜찮잖아. 없다고 믿고 산다. 그런데 이건 이제 잘 움직이지도 않고 먼지랑 구분도 잘 안 가고, 어쩌면 먼지일지도 모르겠는데 계속 신경이 쓰인다. 게다가 이 상태로 청소기를 돌리면 온 집안에 사방팔방 전파되는 게 아닐까. 나름 운동성이 떨어지는 녀석이라 멀리 퍼지지 않는다고 알고 있는데 청소기의 도움으로 여기저기 멀티를 만들면 어떡하지. 결국은 박멸이 확실해질 때까지는 청소기를 돌릴 수도 없다. 다른 어딘가에서 발견하면 진짜 못 살 것 같아.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제보다는 청소기를 쳐다보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한 시간에 이 녀석들이 얼마큼 꼬물대는지는 모르겠으나 눈을 피할 정도로 이동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보일 때마다 한 마리가 100마리라는 마음가짐으로 남김없이 찍어내린다. 둘이 만나야만 번식을 할 수 있는 벌레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어느 구석에서 알을 까고 있을지 모르니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3일째라고 그새 마음이 풀어지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매일 찍어내고 있는 건 벌레가 아니라 먼지일지도 몰라. 노안이 와서 그런지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 처음에 봤을 때 보다 움직이는 속도도 확연히 줄어든 것 같아. 움직이지 않았는데 내가 움직이고 있다고 인식한 걸지도. 언젠가는 둘 중 하나가 이기고야 말 것이다. 그리고 그게 부디 나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