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나 Oct 10. 2024

[소설] 맡겨진 소녀

나는 충분히 제대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도서명 : 맡겨진 소녀

글 : 클레이 키건

출판사 : 다산책방

출판 연도 : 2023.04.21

별점 : ★★★

난이도 : 쉬움

내 맘대로 한 줄 발제: 나는 충분히 제대로 책임을 지고 있는가.


-책을 읽고 나서-


먼저 읽었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는 어쩔 거냐고 자꾸 되묻는다. 나는 아직 확신에 찰만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던 중 스마트 도서관에 이 작가의 전작이 있어서 덜컥 빌렸다. 여전히 소설은 짧다. 간단명료한 상황묘사. 가독성 좋은 문장. 읽기는 금세 끝났다. 줄거리 자체도 아주 단순하고 단조롭다. 막내가 태어나기 직전이라 애매하게 손이 가는 아이를 맡았다가 출산 후 다시 돌려보내주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 사건이라고 부를만한 이벤트도 없는 그런 날들.


책을 읽을 때 갖고 있는 습관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왜 이야기를 썼을까.' 끊임없이 물어본다.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었을까. 의도가 없이 쓰이는 글이 있을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에 그 무수한 상황들에 감정을 빼고 묘사를 했을 텐데. 그게 뭘까. 쉽게 읽히지만 그럴수록 무언가 찾아내야 할 것 같다. 


 이 아이. 맡겨진 소녀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이름은 먼저 찾는다. 그런데 이름이 없다. 설마, 싶어서 앞에서부터 다시 빠르게 훑어보는데 역시 이름이 없다. 맡겨진 소녀와, 개, 그리고 맡겨진 소녀의 남매들. 소녀도 중간에 알아챈다. 킨셀라 씨네 부부가 개를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는 걸. 누군가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가 되려면, 유일 무이한 존재가 되려면 그 존재를 표현하는 이름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쩌면 부부는 아이에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름을 부르면서 정을 쌓기 시작하면 어떻게 다시 돌려보낼 수 있을까. 그 아이는 그저 맡겨진 소녀인데. 


 그러다 문득 제목을 이해하고 싶었다. 맡겨진 소녀. 누구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걸까. 소녀 스스로가 자신을 맡겨진 소녀라고 생각하는 걸까. 킨셀라 부부가 맡게 된 소녀를 지칭하는 걸까. 원서 제목은  foster. 

foster
1. 동사 조성하다, 발전시키다 (=encourage, promote)
2. 동사 특히 英 (수양부모로서) 아이를 맡아 기르다 [위탁 양육하다] (→adopt)
3. 형용사 수양…, 양…, 위탁…

어렵다. 발전시키다는 의미로 쓴 걸까. 무슨 의도였을까. 이리저리 생각하지만 딱히 결론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국 아이가 나아지고 있으니 첫 번째 의미였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아이는 관심과 돌봄을 받지 못한 들고양이 같다. 주변의 상황을 계속 살펴보며 궁금한 것도 있지만 물어보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처음엔 낯선 친절과 관심, 배려가 어색해서 빨리 원래 집으로 돌아갔으면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 스며든다. 아마도 길들여지는 게 아닌가. 어린 왕자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아이는 자기가 킨셀라 씨 부부와의 삶에 익숙해진 것을 깨닫는다. 아저씨의 농담이 우습게 들린다. 다른 문화의 농담을 이해했다는 이제 거의 그 문화권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린 거라고 할 수 있다. 낯설었던 킨셀라 부부였지만 어느덧 그의 농담을 이해할 정도로 아이는 길들여져 버렸다.


 그걸 깨닫고 보니 이제 보이는 것 같다. 원래의 집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교육을 받지 못한 아이. 얼마 안 있어 돌려보내야 할 아이기 때문에 정을 주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부부. 하지만 서로 조심히 배려하고 거리를 지키다가 달리기 속도가 빨라지듯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길들여진다. 부부는 그 아이를 다시 되돌려 보낼 수 있을까. 길들였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미 그 아이는 원래 집에서도 온전히 행복하게 살기 어려워졌다. 내가 방임이 되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방치되고 있던 삶과 그보다 더 보호받으며 배려받고 존중받는 삶이 있다는 걸 알고 난 다음, 원래대로 돌아갔을 때의 삶. 전혀 다른 감정으로 삶을 대할 수밖에 없을 것만 같다. 


 이번에도 이야기의 결말이 나지 않는다. 소녀가 뛰어가 안겼지만 그대로 안고 도망칠 수는 없는 상황. 과연 소녀의 아빠는 그녀를 보내줄까. 돈을 좋아하니 돈을 받고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방임하여 키웠다 해도 자기 자식이니 쉽게 보내진 않겠지. 그러니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고 다그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정도 애정이 있었다면 좀 더 아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과연 소녀는 어느 가정에서 자라게 될까. 부디 킨셀라 부부의 집이길.



-책 속 내용-


13. 남자들은 이런 식으로 사실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는다.


14. 묘하게 무르익은 산들바람이 마당을 가로지른다.


20. 아주머니가 밖에 나간 사이 두 남자 사이에서 정적 같은 것이 기어오르더니 점점 커진다.


27.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주머니가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가서 언제나처럼 모르는 일은 모르는 채로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28. 가끔 사람들이 행복하면 말을 안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그 반대도 마찬가지임을 깨닫는다


31. 나는 이런 기분을 또 언제 느꼈었는지 기억하려 애쓰지만 그랬던 때가 생각나지 않아서 슬프기도 하고, 기억할 수 없어 행복하기도 하다.


30.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원래 가정과 전혀 상관없는 그런 환경과 분위기. 


57.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공기에서 뭔가 더 어두운 것, 갑자기 들이닥쳐서 전부 바꿔놓을 무언가의 맛인 난다. 


73.  이제 앞으로 갈 수 없으니 돌아가야 한다. 어쩌면 여기까지 온 것은 돌아가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 


74. 나는 내가 아저씨를 업는다는 것이 너무 말도 안 돼서 곧 그것이 농담이었음을, 그 농담을 내가 알아들었음을 깨닫는다.

나도 소녀가 킨셀라 아저씨에게 길들여졌음을 알아챘다.


79.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고, 그래서 울음을 참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 이제야 떠오른다.

원래 집에서는 울지 않으려고 애쓰려는 게 일상이었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 지내는 동안에는 울음을 참을 일이 없었는데. 



2024.10.08-10

매거진의 이전글 [문학] 모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