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인물의 존재의 이유
말을 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건 공이 든다.
물론 말을 하는 것도 힘이 들지만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쓴다는 건 뭔가 더 양식에 맞춰서 각을 잡고 하다 보니 더 어려운 것 같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도 막상 글을 써보라고 펜을 쥐어주던가 컴퓨터를 켜고 보면 그 하얀 여백에 주눅 들기 십상이다. 그러면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기보다는 못한 말이 더 많은 경우가 많다. 막상 글을 올리고 나서 미처 쓰지 못한 생각들이 떠오른다거나. 그런 와중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장이나 부연설명이 있다? 내 생각에는 쓸데없이 있을 리가 없다. 최소한 퇴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쓸데없어 보이는 문장은 다시 읽으면서 지우지 않겠나. 그런데 출간까지 된 글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어서 적힌 글 조각일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은 커다란 그림, 건축, 조각을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포석을 쌓아간다. 꼭 필요한 이 돌멩이가 없다면 작품은 기우뚱하며 쓰러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하나 쌓아가다가 어딘가에 필요 이상으로 좀 더 돌을 많이 두었다면 다시 전체적으로 살피면서 치워내겠지. 그래서 책을 읽을 때면 더 고민이 많아진다. 도대체 이 문장은, 이 이야기는 왜 썼을까. 이 사람은 왜 등장했을까.
아니, 등장인물 하나 캐릭터 하나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그냥 의미 없이 등장했다고? 소설은 실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있어야 하는 인물들과 필요한 대사들만 나올 테다. 의미 없어 보이는 대화들도 하나하나 캐릭터의 강조, 혹은 서사를 쌓기 위해 나오는 게 아닌가. 어쩌면 정식으로 글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못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굳이 필요 없는 사람을 등장시켜서 대사까지 넣어 준다고? 전체 내용이 다채롭기 위해서라고, 그 어떤 사소한 목적을 위해서라도 그 요소는 일부러 등장시켰을 것이다.
그렇게 목적을 찾아가며 읽다 보면 그런 순간이 온다. 이건 이제 길이를 늘이기 위해 늘어지고 있는 문장이구나. 특히 분량에 제한이 없는 포스팅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지만 출간을 위해 어느 정도 분량이 필요한 책 같은 경우에는 끝에 가서 그렇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꼭 분량이 아니더라도 주제가, 내용이 흐지부지 해지는 기분. 용두사미. 시작은 뻑적지근 요란했지만 막상 쓰다 보면 결말이 으엉? 싶은데.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손과, 눈을 떼지 못하게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쓸 수 있을까.
하나를 읽다 보면 다음 이야기가, 그리고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그런 글. 웹툰과 웹소설을 좋아하지만 모든 것들을 유료결제하면서 보지는 않는다. 그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한데 내가 이거 100원, 300원도 못 내나. 내가 이러려고 돈을 벌지. 아니 술 담배 사는 것보다 여기에 유료결제하는 게 못할 짓인가. 사실 처음엔 못할 짓이라 생각했다. 하루만, 일주일만 기다리면 다음 편이 무료로 나오는데 그걸 못 기다리고 돈을 쓰다니. 어차피 완결도 안 나서 끝까지 다 못 보는 게 자명하거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더라고. 못 기다리겠다. 당장 다음 이야기를 내놔. 내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었나. 유료연재의 미리 보기를 내놓거라. 전혀 지루하지가 않아.
갑자기 생각나서 주룩 썼는데 앞선 이야기와 결이 조금 다른 것 같다. 너무 딴 소리 하는 것 같은데. 싶다가 아차 했다. 이렇게 쓰다 보니 글과 전혀 상관없이 쓸데없는 글과 문단이 들어갈 수도 있겠구나. 나 같은 사람인가. 말이 많고 생각이 많아. 생각의 흐름대로 혼자 모니터를 보면서 손으로 떠든다. 갑자기 손가락이 주르륵 써 내려갔는데 지우기는 아깝고 해서 남겨두는 건가. 저 말도 하고 싶었던 말인데 하면서 맥락 없이 집어넣은 걸까. 아니 아깝긴 뭐가 아까워. 타자 친 시간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은 시간이 아까운 건가.
써 내려간 글을 읽으며 글과 상관없는, 초점이 안 맞는 부분은 걷어내고, 정말 하고 싶었던 부분은 다른 꼭지로 글을 쓰면 된다. 그런데 차마 그러지 못하고 중구난방이 된 글을 발행하고야 마는 건 필요 없다고 쳐내려 가면서 줄어드는 분량 걱정과, 새로 쓸 글이 미쳐 한 분량이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근심. 결국 글쓰기의 양이 차고 넘칠 만큼 충분하지가 않고 겨우 근근이 채워지는 수준인 탓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 딴 소리를 하지 않고 모두 한 방향을 향해 빠짐없이 달려가고 싶다. 다른 곳을 보는 글과 조사가 하나도 없길 바란다. 하지만 쓰다 보면 이리저리 길을 잃고 만다. 다시 읽어본다. 쳐내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럼 내용이 너무 없는 것 같다. 뱀 다리의 발톱까지 너절하게 달아본다. 묽게 흘러내린다. 나는 하지 못하는 걸 해내는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단단하고 조밀하게 짜여진 글. 어떻게 저렇게 군더더기 없이 재미있을까.
다른 사람의 글은 쓸데없는 부분이 있을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 읽어낸다. 타자된 모든 글들이 다 이유가 있을 거라며 글 조각의 존재 이유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내가 쓴 건 심심풀이 수다같이 여기도 저기도 지워야 할 부분 투성인데 미처 지우지 못한다. 짧은 글을 쓰고 나면 약간 탈진한 느낌도 든다. 친구와 수다를 한참 떨고 나서 머릿속이 텅 빈 그런 느낌인가. 이 문제는 머릿속을 꽉 채워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주변에는 머리를 비우는 것들만 가득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다면서 자꾸 만연체로 여기저기 흐느적거린다. 핑곗거리는 아주 잘 찾았지.
쓸데 없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도 쉽게 귀기울여 주지 않을텐데. 그치만 필요한 이야기만 할 수도 있나. 수다쟁이여서 그런가 입이 가벼워서 그런가. 생각이 없어서 그런가. 진중하게 필요한 생각만 고르고 골라서 글로 남기는게 좋을텐데. 여전히 어렵다. 말을 고르고 고른다는 건. 그냥 우선 냅다 다 이야기하고 싶은데. 언젠간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하필 그 문장을, 그 묘사를, 왜 한 걸까.
2024.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