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얼마나 길게 쓰면 좋을까
분량을 정해놓은 글쓰기
처음엔 그냥 되는 대로 썼다.
글쓰기를 한지는 얼마 안 됐고 아직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말은 많으니까. 사실 사람 만나는 거 싫어한다고 했지만 말하는 건 너무 좋아한다.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아도 내 마음껏 떠들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속상해할 필요도 없으니 글쓰기 너무 좋아. 물론 들어주면 더 좋겠지만 내 대화를 되짚어 보면 항상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상태가 더 많은 것 같다.
여하튼 그래도 글이라는 건 하나의 주제는 가지고 써야 하니까 글감을 한 가지 잡고 나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던, 머릿속에 흩어져있던 생각을 손끝으로 흘려보낸다. 아마 두서가 없고 정리도 안되어 있지만 그래도 떠오르는 걸 그대로 내보내 본다. 머릿속에서 정리하는 것보다는 눈앞에 글자로서 실제화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좀 더 수월하다. 우선 생각을 다 끄집어내 보자.
쓸 때는 신나게 쓴 것 같은데 막상 화면에 차있는 글자는 뭔가 비어있는 것 같다. 마우스의 스크롤을 반바퀴 돌리지도 못했는데 끝이 난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쓰는 걸까. 너무 길면 화면으로 읽기 부담스럽던데. 그런 글들은 괜히 스크롤 내려서 휘릭 읽기 미안하다. 그렇다고 나처럼 짧은 글은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나. 어느 정도를 써야 적당할까.
권장, 혹은 추천 글자수로 이리저리 검색해 본다. 물론 검색력은 형편없어서 이게 정확히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검색결과를 대략 요약해 보면, 웹소설은 회당 5천5백 자 정도, 블로그는 1~2천 자 정도, 브런치는 2~3천 자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글자수로 보니 조금 막연하다. 나는 어느 정도 글자수로 글을 썼었나. 브런치에 글자수 확인이 안 돼서 조금 불편하네. 나도 다른 글쓰기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게 좋을까. 여하튼 다른 곳에 복붙 해서 확인해 본다. 보통 1천 자 내외, 길게 쓸 때는 가끔 3천 자 정도, 책 리뷰는 1천5백 자 정도. 떠도는 생각들을 다 잡아서 써 내려가보면 보통 적당히 1000자 내외 정도 쓰게 되는 것 같다.
이제 나를 알고 적을 알았으니 계획을 세워 볼까. 보통 1천 자 정도 글을 쓰고 제대로 글답게 쓰려면 3천 자 정도는 쓸 수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글쓰기 연습을 하자. 검색을 여러 가지로 했을 때 글쓰기는 계속 써야 실력이 는다고 한다. 목표는 우선 2천 자 정도 쓰는 게 어떨까. 무리 없이 2천 자 정도 쓸 수 있게 되면 3천 자로 넘어가는 거야. 차곡차곡 레벨업. 지금 나의 레벨은 Lv.1 천자. 다음 목표는 Lv2. 이천. 쪼렙일 때는 우선 노가다를 많이 해야 레벨이 올라간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에게 1천 자는 뭔가 마지노선의 느낌을 준다. 거기까지는 신나게 쓴다. 그 뒤로는 억지로 늘려서 쓰는 것 같다. 앞부분처럼 (나름) 생동감 넘치게 쓰고 싶은데 늘어진 테이프처럼 글이 늘어진다. 괜찮나 이거? 이럴 거면 그냥 짧게 마무리하는 게 낫지 않나. 어거지로 붙잡고 있어도 되는 걸까. 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짧아도 흐지부지 끝나고 길면 늘어지고 아주 난리가 났다.
가끔 그런 책들이 있다. 책 앞부분은 엄청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게 넘어가던 책이, 뒷부분에 가면 이게 뭐지 싶은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글보다 분량이 더 많은 책은 출간을 위한 최소 양이 있을 텐데 이걸 맞추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생각보다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텐션이 나오기가 어려운 듯하다. 이미 글을 너무 많이 써서 추리고 추려서 나오는 책이 아니라 계약을 하고 분량에 맞게 써내려 가야 해서 그런 걸까.
브런치 북을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썼던 글을 그러모아 봤는데 양이 적다. 처음엔 신나게 써 내려갔지만 가장 마지막에 쓴 건 글 길이도 짧고 쓰다 만 것 같다. 아마 이 걸로 책 모양새로 만들려면 나도 늘어진 테이프 같은 글을 더 붙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쓰고 싶던 이야기는 이미 파바박 써버려서 더 쓸 이야깃거리도 없다. 이제는 쥐어짜야 하는데. 이렇게 브런치 북을 만드는 게 맞나.
어쩌면 글쓰기를 꾸준히 해서 필력이 생긴다는 건 원하는 길이까지 긴장감을 떨어트리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글쓰기. 그러려면 의미 없는 글을 최대한 걷어내고 필요한 말만 해야 하는데 너무 어렵다.
우선 그만큼의 글쓰기 시간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시간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식구들이 모두 밖에 나가고 집안일을 끝내고 자리 정리를 하고 커피도 한 잔 타오고 음악도 세팅하고. 근데 여기서 음악 세팅을 하다 실수로 쇼츠를 보기 시작하면 또 시간이 후딱 지나가 버린다. 그리고서 하고 싶어 쌓아 둔 말이 많았다면 1000자는 후다닥 써 내려가지만 별로 쌓아놓지 못했다면 이제 또 곤혹스러운 시간이 지나간다. 머릿속 이곳저곳을 뒤적거리면서 혹시 내가 생각했다가 잊은 게 없는지 찾아본다. 다행히 관련돼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몇 마디 더 붙여 보지만 금세 동이 나 버렸다. 쓰기 전엔 한 꼭지 거리만큼 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쓸 생각과 쓸 수 있는 시간은 항상 같이 오진 않는다. 하지만 오늘은 목표한 2천 자가 있으니 여기서 멈출 수 없어.
'로맨스가 필요해 2'의 한 장면. 남주는 작가인데 데이트하러 간 자리에서 갑자기 글이 잘 써진 다면서 여주를 방치해 놓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결국 여주는 화가 나서 남주의 사이드미러를 박살을 내 버린다. 물론 옆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여주인공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글이 잘 써지는데 어쩔 수 없지 않나. 그때 그 순간에만 써지는 글이 있는데. 아마 이건 글을 잘 못쓰는 사람의 비겁한 핑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를 놓치면 그 순간을 다시는 못 잡을 것 같은 때가 있다. 내가 머릿속으로 이걸 쳐야지 하면서 타이핑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손가락이 움직일 때. 평소에는 쥐어짜야 겨우 글이 나오는 경우가 허다한데 갑자기 글이 줄줄 나오니 놓치고 싶지 않을 수밖에. 그러면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지. 그런 순간이 자주였으면 좋겠다. 너무 가끔씩만 찾아와. 속상해.
분량 때문에 일부러 쓸데없는 글자를 붙이고 붙여서 늘어지지 않게 쓰고 싶다. 꼭 필요한 말만 남기려고 지우다가 이해 못 할 정도로 짧게 쓰고 싶지도 않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데 필요한 말만. 쓸데없는 말은 걷어내고. 그렇게 보여주고 싶었던 생각을 담아 글을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게, 적당히 잘 쓰고 싶다.
2024.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