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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나 Oct 27. 2024

글짓기와 글쓰기

재미있는 이야기를 짓고 싶어

글을 쓴다는 표현은 왠지 부끄러움이 따라붙는다.


 내가 끄적거린 이런 걸 글이라고 하기엔 너무 부끄럽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제멋대로 떠들고 있는 걸 글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이건 글이 아니라 거의 말이라고 봐도 무방한데. 게다가 나만 신나게 떠들고 있는 혼잣말 대잔치. 피드백은 받지 않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주욱 끄집어내고 나열해서 정리를 한다. 이토록 하찮은 걸 글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만일 이걸 글이라고 부른다면. 


 글을 쓴 걸까. 지어낸 걸까. 쓰기와 짓기.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묘하게 다른 느낌. 구분되어 있는 단어 일까. 아니면 그냥 혼용해서 쓰는 말일까. 검색해 보면 그다지 마음에 드는 답변이 나오질 않는다. 내가 알아서 정리해서 써야 하는 단어일까. 단어의 뉘앙스나 세심한 구분에 대해서는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전문적으로 어디선가 배움을 얻는다면 그곳에서 배울 수 있는 부분일까. 나는 글을 쓰는 걸까. 짓는 걸까.


 두 단어를 노려본다. 짓기와 쓰기. 오랜 생각 끝에 쓰기보다는 짓기가 좀 더 어려운 작업이라는 인상이 든다. '짓기'는 모아놓은 요소들을 구조적으로 좀 더 아름답게 쌓아 올리는 느낌의 동사이다. 집을 짓고, 밥을 짓고, 이름을 짓고, 매듭을 짓고 , 농사를 짓는다. 쓰다는 말은 글과 문장에 붙여서만 쓸 수 있는 단어라면 짓는 건 다른 무언 가를 만들어내는 대상에 두루 쓸 수 있다. 지어지는 것들은 만들기 재료들로 뭔가 부가적인 가치가 붙어서 생산이 된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 먹을 수 있는 밥, 꽃이 될 수 있는 이름. 물론 글을 짓는 과정에도 쓰기라는 행위가 포함되어야지. 


그러고 보니 글짓기라는 전체 집합 안에 글쓰기가 부분 집합으로 포함되는 건가. 물론 요즘엔 글쓰기라는 말을 더 많이 쓰고 이런 구분 짓기는 그냥 나의 심심풀이 일뿐이지만. 이렇게 나눠놓고 보니 내가 치고 있는 이 타자가 글짓기인지 글쓰기인지 고민해 본다. 글쓰기는 쓰고 싶은 대로 편하게 써내려 갈 수 있는 부분이라면 글짓기는 짓기 위한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면 글쓰기보다는 글짓기를 목표로 써 내려가야 하는 걸까. 


그런데 이렇게 글쓰기와 글짓기 차이에 고민한 사람이 없나 싶어서 다시 검색해 본다. 아, 그래. 없을 리가 없지.

'글짓기'와 '글쓰기' 어느 쪽이 바른말이고 어느 쪽이 틀린 말인가는 저절로 환하다. 그리고 이제는 삶을 떠나 거짓스런 글을 머리로 꾸며 만드는 흉내내기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글짓기'고, 참된 삶을 가꾸는 정직한 자기표현의 글을 쓰게 하는 교육이 '글쓰기'가 되어 버렸다. 

- 이오덕의 글쓰기. 2장 아이들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단호하다. 글짓기는 꾸며내기 때문에 삶을 담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내가 생각했던 느낌과 비슷하지만 다르다. 아무래도 '이오덕의 글쓰기' 책은 어린이 글쓰기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순수함이 마냥 예쁠 나이인데 글에 기교를 부리고 꾸미면 아무래도 어른의 눈에는 서툴고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어린 나이에도 예쁘고 자연스럽게 화장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그래도 그 나이는 맨얼굴의 화장 안 한 뽀얀 얼굴이 더 생기 넘치고 예쁘지 않은가. 서툰 화장처럼 어린이의 글쓰기도 순수함을 잃을까 걱정한 선생님의 안타까움을 저리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다. 


 정직한 자기표현의 글을 쓰지만 그러면서도 어른스럽게 자연스러운 화장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때에 맞게 생얼로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필요한 장소에 맞게 꾸며서 입고 나갈 줄 알아야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글짓기가 비난받아야 할 일일까. 글쓰기가 숨 쉬듯 편해졌다면 이제는 글짓기를 배워야 하는 게 아닐까. 좀 더 살을 붙이고 기교를 붙여서 약간의 꾸미기도 할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혹은 불필요한 문장을 쳐내려 가는 식의 생략도 짓기의 한 과정이 아닐까.


 글쓰기에 관한 글들을 보면 글짓기를 가르쳐 주는 글들이 더 많이 보인다. 글쓰기가 안되어 있는데 글짓기를 하는 건 어린이가 글짓기하는 것과 비슷해진다. 생각과 내용이 없는 글짓기는 쉽게 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글쓰기는 더 어렵지 않은가. 동어반복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글쓰기도 가르쳐서 될 것인가. 이쯤 되니 조금 혼란하다. 글짓기를 해야 하는지 글쓰기를 해야 하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의 끄적거림은 글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이제는 글쓰기가 편해졌는지. 글짓기를 배워도 되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글짓기가 되고 있는 건지. 항상 확신 없이 우선은 글쓰기로 계속해본다.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꾸며낸 글짓기를 하기 위해.


2024.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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