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으면서도 속물적인
나는 왜 쓰고 있는 걸까.
도대체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성격인가. 어려서부터 쓰다 말다를 하고 있었으니 왠지 그럴 것 같다. 인터넷을 보다 보면 돈 버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보고 있노라면 어떤 글쓰기 일지 알 것만 같다. 저렇게 쓰면 검색도 잘되고 유입도 늘고 돈을 벌 수 있겠구나. 좋아하는 글쓰기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니 이것 참 일거양득 아닌가.
해볼 만하겠다 싶다 가고 막상 그렇게 속물적인 이유를 앞에 걸고 글을 쓰고 싶지 않다. 그래서 정말이지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들을 보면 나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확신한다. 자기반성을 넘어서는 주제의식이 나에게는 없다. 그리고 하나의 이야기에 농도 짙게 글을 써 내려갈 능력도 없다.
상업적인 이유로도, 문학적인 이유로도 글을 쓸 이유가 없다면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어느 날 인스타에 나오는 신간 광고들 중 문구 하나가 눈에 콕 박혔다.
글쓰기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겨냥한 깊은 응시일 테니,
최선의 글쓰기는
물러서지 않는 자기 성찰에서 나온다
-줌파 라히리, <나와 타인을 번역한다는 것>
내가 글을 왜 쓰는가 항상 궁금했지만 그냥 쓰고 싶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내 생각도 알려주고 싶고, 그냥 수다쟁이여서 주절주절 떠든다고만 생각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을 붙잡아 두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영어를 배울 때 인풋이 쌓여야 아웃풋이 생긴다고 하는데 생각에도 어느 정도 이상이 쌓이면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서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같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떠다녀서 불편하다.
그냥 내가 쓰는 걸 좋아하나 보다 했는데 글쓰기는 돈도, 문학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내가 그때 그 시절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돌아보고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되새김질해보고 앞으론 어떤 걸 하면 좋을까 궁리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새 꺼내보면서 오히려 생각이 더 분명하게 정리되는 경우가 더 많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았구나. 내 마음속 어린아이는 이런 애였구나.
하지만 글을 공개적으로 쓰다 보면 결국 가장 내밀한 속마음은 드러낼 수가 없다. 쉽게 드러낼 수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드러낼 수없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들 영향력도 없고 기대도 없으니 실망도 없겠지만 나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 선에서 내 생각을 보여주면 되겠어. 그래서인지 써 내려가는 글들은 일상생활 속 지인들에게는 절대 알려주고 싶지 않다. 여기에 쓰는 건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생각들이며 지인들에게는 왜지 면구스러워서 꺼내지 않는 생각들이다.
그럴 거면 차라리 일기를 쓰는 게 어때, 싶지만. 이 수다쟁이는 자기 생각을 또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은 마음도 크다. 지인에게 알려주기 싫지만 동네방네 소문은 내고 싶고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싶은 속물적인 근성. 목적이 불분명한 글쓰기. 돈 버는 글쓰기는 쓰고 싶지 않지만 돈도 벌고 싶다. 문학적인 글을 쓰고 싶으나, 아마 쓸 수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정도로 쓰겠다.
이도저도 아닌 목적을 가지고 쓰는 글쓰기는 성공할 수 있을까. 글쓰기에 성공이라는 말을 붙여도 되는 걸까. 글쓰기에서 시작된 상념은 곧 인생 전반으로 뻗어나간다. 그동안 나는 무엇 하나 확실한 목적을 위해 달려왔던가. 이것저것 조금씩만 욕심내고 중구난방 흩트려서 하나로 뾰족해 진적이 없다. 결론은 분무기 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래서 지금 나는 이렇게 백수 한량이 돼버린 걸까.
자기 자신을 겨냥한 깊은 응시.
어쩔 수가 없다. 어떤 글을 쓰던, 어떤 생각을 하던 결국 나와 연관 지어 나를 되짚어 생각하고야 만다. 다른 사람을 향했던 관심도 결구 돌고 돌아 그 끝은 나에게로 온다. 나는 과연 누구일까. 그래서 나는 나를 얼마나 깊이 겨냥할 수 있을까. 좀 더 비공개적인 글쓰기를 하기 시작하면 나의 성찰도 물러서지 않고 더 뾰족해질 수도 있을까.
가끔 표현하지 못했던, 못한 수많은 내밀한 이야기는 내가 기억을 잃으면 같이 사라지고, 나 자체가 사라지면 같이 사라질 텐데. 그러면 아깝지 않을까. 무엇이 아까울까. 내 생각이 아까울 정도의 생각인가. 하지만 남겨두면 나라는 사람의 흔적이 되지 않을까. 그렇기에 이미 이곳저곳에 흔적을 많이 남겼는데 이제 흑역사는 그만 남겨도 되지 않을까. 남겨놓고 남겨놓을 것들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을까.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핑거 프린세스가 되어 손가락으로 하는 유희일까.
평서문으로 끝나는 문장아 아닌 의문형으로 자주 남기는 글들은 과연 의미가 있는가. 질문살인마라고 하던가. 묻기만 하고 대답은 없는. 과연 답은 있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의 생각이란 항상 물음표로 끝날 수밖에 없을지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은 언제 생기는 거지. 그건 그저 성향인가. 점심 메뉴를 고를 때 정확히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고르는 건 뭐든 괜찮다고 말하는 내가 있다.
질문에 답을 하자. 나는 내 머릿속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결론이 나질 않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는 그 끝에 정리된 답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몰라. 아마도.
202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