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끈따끈하게 데워진 전기장판과 폭신한 이불 사이에서 개운하게 눈을 떴다. 혹시나 밤중에 공격이라도 당할까 주머니에 칼을 넣고 꼭 쥐고 잤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쌀쌀한 아침 공기에 탄내가 섞여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마을 방송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 마을에 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갤럭시 워치로 일주일간 수면측정을 하면 수면의 질과 습관에 따라 동물을 하나 배정해 준다. 1단계 상어부터 4단계 사자까지 다양하고 귀여운 동물들이 있다. 나는 잠 하나는 잘 자는 편이라 워치를 산 이후로 쭉 사자를 받고 있다. 노숙이 일상인 국토종주 중에도 사자를 지켜내다니 장하다 나 자신.
손이 시려서 아침 세수를 포기하고 짐을 챙겨 나왔다. 근처에 아침 먹을 때가 있나 하고 대충 돌아보았는데 아직 문을 안 연 모양이었다. 어제의 편의점으로 들어가 컵라면과 훈제계란을 사 먹었다. 밀어주는 신제품인지 여기저기서 자주 보이는 라면을 골랐는데 맛이 너무 별로라 다 먹느라 고생했다. 사장님이 계시면 출발 전에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알바생으로 보이는 청년이 계산대를 지키고 있어서 그냥 편의점을 나왔다.
창녕을 떠나며.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하는 국민동요 '산토끼'가 이방면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산토끼의 고장을 찾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길을 마구 잃어버리는 국토종주의 매력.
끔찍하게도 길고 조용했던 경상남도 구간이 끝났다. 드디어 대구 입성! 핸드폰 침수만 안 되었어도 어제 구지면에 도착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다. 아무튼 대구에 들어오니 큰 과업 하나를 마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좁쌀만 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아침. 비를 하도 맞아서 이제 이 정도 보슬비는 그냥 우비도 패딩 모자도 없이 맞고 가게 된다. 독일어 표현을 빌리자면... 나는 설탕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10년 전 무심사 고개를 씩씩하게 올랐던 기억이 있어 재회를 기대했는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불경 소리만 한참 들었을 뿐 무심사도 고개도 만나지 못했다. 경로가 바뀐 것이려나? 무심사로 의심되는 폐허만 몇 개 지나쳤다. 온통 평지였다.
아마도 기러기 떼
대구 첫 번째 표지판. 고령까지 25km 남짓 남았다. 그런데 왜 달성군은 대구라고 안 하고 달성이라고 하는 걸까?
몸이 힘든 건지 내 의지가 부족한 건지, 자꾸 아파서 쉬게 되는 날. 언제나 잡생각이 넘치는 나인데 이 날따라 머릿속이 텅 빈 듯 생각도 잘 들지 않았다.
일상 콘텐츠가 된 도깨비바늘 뜯기. 나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는데 가끔 뜯는 속도가 손톱 자라는 속도를 능가해서 뜯을 손톱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도깨비바늘을 뜯었다. 재미있었다.
홍의장군묘를 지나가게 됐다. 힘드니 굳이 걸음수를 더 추가하지는 않기로 한다.
걸어가는 길에 마침 대구 딸기케이크로 유명한 커피명가가 있길래 방앗간 그냥 못 지나치는 참새마냥 쫄래쫄래 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패스했을 컨디션이었는데 다행히 루트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그나저나 내가 커피명가라는 이름을 언제 들었더라. 어떻게 알게 된 곳인지는 잊어버리고 유명하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다. 산청딸기가 잔뜩 든 딸기케이크는 시트가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맛있었고 딸기라떼는 씹는 맛이 없어서 취향이 아니었다.
멋진 뷰를 즐기며 PT 선생님에게 사진을 보냈다. 도를 넘어갈 때마다 카톡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선생님 포함 다른 직원들도 응원하고 있다고 답장이 와서 힘이 조금 났다.
커플들이 차 가지고 오는 갬성 카페인데 후줄근한 차림으로 걸어 들어가서 분위기가 좀 미스매치였다. 평일 아침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왼쪽이 원래 자전거길이지만 우회로를 적극 활용하며 부상 및 차량 이용 없이 걸어서 완주하는 것을 새로운 목표로 삼은 이상 현풍까지는 마을을 가로질러 가기로 한다.
구지에는 국가산업단지가 있다. 새로 개발한 동네라 그런지 길이 아주 깨끗하다. 막 생긴 신도시처럼 사람도 차도 없고 텅 비어 있었다. 깨끗하게 닦인 보도블록길을 걷는 게 오랜만이라 조금 생소했다.
지나가다 마주친 식당에 들어가서 칼국수와 부추해물전을 주문했다. 점심 먹을 시간이긴 했지만 케이크를 먹은 덕분에 배가 그리 고프진 않았는데 몸이 너무 지치고 아파서 걷기를 회피하고 싶었다. 평소에도 스트레스받으면 딴짓하며 회피하고, 음식을 욱여넣으며 폭식하곤 하는데 국토종주 중이라고 그 버릇이 어디 가진 않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라 그런데 이거 왜 이렇게 맛있어. 뜻밖에 맛집 발견. 메밀로 직접 뽑는다는 면이 정말이지 쫄깃하고 맛있었다. 들깨 맛이 진하게 나는 걸쭉한 국물 역시 별미. 미역줄기가 들어간 건 좀 특이했다. 부추해물전도 바삭한 게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배부른 상태에서 먹었는데도 거의 안 남기고 그릇을 비웠다.
옆자리에서 언성이 높아지길래 싸우는 줄 알고 귀를 기울여 보았다. 내용은 그냥 일상 대화였는데, 억양이 세서 그렇게 느껴졌던 듯. 대구에 오니 사투리가 또 다르게 들린다.
어제 편의점 사장님을 통해 현풍이 축구 명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곳에서 미래의 축구선수들이 자라고 있는 건가.
용흥지에서 고니와 넙적부리를 처음으로 봤다. 넙적부리는 만났을 때는 그냥 오리인 줄 알고 대충 찍었는데 나중에 확대해 보니 무슨 공룡처럼 생겨서 깜짝 놀랐다.
반영 때문에 기하학적 무늬가 표면을 가득 덮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용흥지. 멋지다!
저 멀리서 패러글라이더를 목격했다. 혼자서 날아다닐 수 있다니, 참 멋진 취미라고 생각한다.
태우는 냄새를 맡으면 시골인가 한다.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서도 탄내를 자주 맡았지. 아파트로 가득한 도시로 이사한 뒤로는 맡을 일이 없다가 인도 여행을 하며 오랜만에 맡아보고 또 국토종주를 하며 자주 맡게 된다.
현풍에 도착했다. 터미널도 있고 하여 큰 동네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조용하다. 밥 때도 아니고 잘 곳을 찾기엔 너무 일러서 그냥 걸어서 지나치기로 했다.
여기에서도 축구 꿈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요. 축구가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축구는 풋살과 달리 아마추어도 선수 등록을 해서 대회에 참가한다. 남자축구의 경우 팀이 넘칠 정도로 많아서 2030대/4050대/60대와 같이 나이대별로 나눠서 대회를 하는데, 여자축구는 모수가 많지 않아서 팀마다 출전할 수 있는 연령대 선수의 수가 정해져 있다.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는데 20대 2명, 30대 6명, 40대 3명 하는 식이다.
축구 초보 20대였던 나는 반박의 여지도 없이 매번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체대 다니는 친구들도 많은 판국에 2명밖에 못 들어가는 20대 엔트리에 나를 넣어줄 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나는 서른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30대는 잘 못 해서 한 번씩 뛰게 해 주니까. 나에게 서른은 축구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나이였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입장으로서 가져다가 우리 동네에 걸어놓고 싶은 플래카드를 보았다. 보행자 여러분 제발 인도로 걸어 주세요. 굳이 자전거 도로로 걸으시려거든 자전거가 알아서 피해 갈 수라도 있게 한쪽으로 붙어서 걸어주세요. 그것도 싫고 꼭 한가운데를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하며 걸으시려거든 뒤에서 지나간다고 신호라도 할 수 있게 이어폰 좀 빼고 걸어주세요 제발요.
힘든데 벤치가 안 나와서 그냥 길가 바위에 앉아 신발 벗고 파스 뿌리고 쉬었다. 언제는 안 힘들었냐마는, 유독 힘든 날이다. 왼쪽 발목이 너무 아파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큰맘 먹고 산 비싼 젤리를 깠는데 별로 맛이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슬슬 어디에서 잘 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하는 시간. 지도를 켜서 모텔을 검색하니 어마어마하게 많은 숙박업소들이 뜬다. '검색결과가 없습니다' 팝업만 맨날 보다가 이렇게 잘 데가 많은 동네에 오다니, 황송할 따름이다. 광역시 만세 대구 만세.
달성보 도착. 10년 전에 달성보에 왔을 때는 비가 많이 와서 힘들었던 모양이다. 컨디션이 안 좋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비가 안 오는 게 다행 아니냐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10년 전 국토종주를 하며 남긴 달성보에서의 기록
그때의 따뜻한 아주머니를 다시 만나 뵐 수 있을까 하여 편의점에 들렀는데, 내 또래이거나 좀 더 나이가 많거나 할 정도의 여성분이 카운터에 앉아 계셨다 아주머니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정도로 젊었다면 아주머니 대신 언니라고 기록했을 것 같아서 '그분은 안 계시는구나' 하고 과자와 젤리를 사서 나왔다. 10년은 정말이지 많은 게 바뀔 수 있는 시간이구나.
날씨 때문인지 유독 더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길을 걸었다. 외진 곳에서 바지를 내리고 개천에 오줌을 싸는 추레한 차림의 외국인을 발견했다. 낡아서 다 떨어진 배낭을 세 개나 가지고 있었다. 차도 없는데 저 많은 배낭을 가지고 여기까지 왜 온 거지? 혹시 도망자 신세인가? 괜히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뛰다시피 걸었다. 다행히 그는 위쪽 국도를 향해 걸어갔다. 논길 두고 차 쌩쌩 다니는 국도라니 더욱 수상하다.
송전탑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긴 처음이다. 항상 차 타고 가면서 저 멀리 있는 것만 봤는데. 지금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기지국'이 곧 송전탑인 줄 알았다. 실제 기지국은 이것보다 훨씬 작다.
힘들어서 넋이 나갔다. 버스정류장에 앉아 쉬는데 버스가 와서 서길래 당황스러웠다. 시골길에서는 정류장에 하루종일 앉아 있어도 버스 한 대 보기가 어려웠는데 여기가 광역시는 광역시구나. 정류장에 앉아 쉴 때마다 버스가 오는지 안 오는지 눈치를 봐야 했다. 버스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라 내가 안 타니 기사님들도 당황하시는 것 같았다.
해맑은 토마토. 넌 뭐가 그리 좋니
달성군청까지 갈지 옥포까지 갈지 고민이 됐다. 몸이 아프긴 했지만 그나마 가로등이 있는 동네에 왔으니 좀 늦게까지 걸어서 진도를 빼둬야 할 것 같았다. 좋아, 달성군청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옥포까지 걸어 보자. 그나마 숙박의 옵션이 많은 동네라서 어찌나 다행이었던지. 오늘은 따뜻한 물에 샤워 좀 해보자며 의지를 다졌다. 대구인데도 왜 이렇게 쌀쌀하던지, 장갑을 벗을 생각이 안 들었다.
단언컨대 조명이란 인류가 이룩해 낸 최고의 문명이요 발명품이다. 해가 다 졌는데 이렇게 밝을 수 있다니. 그저께, 어제 산속에서 막막함을 느끼던 때와 같은 시각에 이렇게 밝은 길을 걸을 수 있다니. 감사해서 가슴이 벅찰 정도였다.
주유소 편의점에 들러서 젤리를 두 개 더 샀다. 달성보 편의점에서 간식을 충전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냥 뭐라도 고통을 잊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사투리를 쓰는 남자 중학생들과 한국어가 어눌한 외국인 알바를 뒤로 하고 가게를 나와서 젤리를 먹으며 걸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주저앉고 싶었다.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너무 일찍 끊어가면 숙소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어 괴로울 것 같아서 이를 악물고 마지막 식당까지 걸었다.
주문한 시락국밥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시바아아아아아아알... 마음속으로 욕을 하며 의자에 녹아내렸다. 오른손과 아래턱만을 움직이며 겨우 밥을 먹었다. 다른 부위를 움직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뜨끈한 밥을 먹으니 위로가 되었다. 피로는 전혀 회복되지 않았지만.
옥포까지는 4km, 한 시간가량이 남아 있었다. 정말이지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너무나도 괴로워서 모르핀을 맞듯이 웹툰 같은 도파민 콘텐츠를 들여다보며 고통을 애써 잊고 걸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뭐라도 내 눈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면 되었다. 어두운 시골길이었다면 이 짓도 할 수 없었을 텐데, 그나마 사방이 트여 있고 밝은 데다가 여기저기 CCTV도 있어 한눈 팔고도 걸을 수 있었다. 아아한 시간이 이렇게나 길었던가.
미리 사진을 보고 찾아 둔 깨끗한 모텔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의 안도감이란. 사장님이 여자분이셔서 더욱 마음이 놓였다. 키를 받아 들고 엘리베이터를 잡아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엎어져서 한참을 누워 있었다. 발이 너무 아파서 마사지고 뭐고 건드릴 수조차 없었다. 얼얼함이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엎어져서 안도감을 만끽했다.
전기장판 사랑 ❤️
욕조가 없어 뜨거운 물에 목욕하는 사치를 누릴 수는 없었지만 뭘 더 바라리오. 나만 있는 방에서 옷 다 벗고 온수에 비누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유포리아. 작은 생수통을 기울여 얼굴에 물방울을 찍어 바르고 양칫물을 헹궈내지 않아도 된다. 수도꼭지를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뜨신물이 있으니까. 뽀송하게 씻고 나와 바디로션을 발라준 다음 전기장판으로 덥혀 놓은 침구 속에 몸을 집어넣으니 황홀하기까지 했다. 아 이게 문명이지.
열악한 환경에 역치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늦은 시간까지 밝은 거리와 세탁된 침구그리고 온수까지 당연하다는 듯 누려온 것들이 모르는 새 많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