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의 끝은 과연 있을까요?
한국인이 많은 캐나다이지만, 오기 전엔 몰랐습니다. 캐나다 땅이 이렇게나 넓다는 것을요.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도시는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였습니다.
물론, 한국인 구경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너무나 다행히 아이가 간 학교에는 한국인이 약간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와 성별이 다르기에
아직(현재 등교 3일째)은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아이는 가기 전날 밤,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너무나 두렵다면서요.
그래도 고맙게도 꾹 참고 다음날이 되자 학교는 다녀왔습니다.
원래 학교란 곳을 크게 좋아하는 아이는 아닙니다. 가야 하니까 가는 아주 착한 심성이지요.
첫날 등굣길에 저에게 부탁했습니다.
하교 후, 아무것도 묻지 말아 달라고요.
그 맘이 뭔지 알겠기에, 그 약속을 지키느라, 아이의 첫 하교 후 저는 학교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만 아이와 나누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평소와 같이 아빠와 장난을 치던 아이는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으항항항 ㅠ, 내가 오늘 학교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첫날 아이는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노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너무 여로웠나봅니다.
공부시간은 그냥 앉아있으면 되는데, 친구들에게 섞이지 못한 채 바라만 봐야 하는 운동장에서의 쉬는 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엉엉 우는 아이와 같이 눈물이 났습니다.
할 수 있는 건 위로뿐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맘껏 울라며 달래줄 수밖에요.
오늘 학교에서 잘 버티다 온 것만으로도 너무 장하다며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고 네가 힘들면 엄마랑 언제든 한국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아빠 말에, 아빠도 같이 가냐고 묻는 아이,
아빠는 일 때문에 일단은 같이 못 간다 하자, 아이가 아빠와 살고 싶으니 버텨보겠다고 했습니다.
참 마음 아픈 밤이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아픈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다음 날 그래도 가야 하니 학교에 간 아이가, 하굣길에 차를 타며 자랑을 했습니다.
“엄마, 나 오늘 친구 생겼어.”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같이 놀자고 해서 열심히 술래잡기를 하고 온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 감사합니다.
아이 앞에서는 티는 못 내고 속으로 엄청 울었습니다.
그 친구들의 내밀어준 손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얼마 후, 넷플릭스에서 영화 ‘원더’를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친구들과 다른 모습의 주인공을 학교에 보내는 엄마의 마음을 너무나도 공감했습니다.
이제 학교 간지 2주가 살짝 넘어갑니다.
아이가 아직은 학교에서 말은 트이지 않았습니다.
거의 말없이 학교 생활을 하지만, 그래도 놀고 옵니다.
한국학교에서의 친구들과의 시끌벅적했던 우정이 그립겠지만,
꿋꿋하게 다리가 아프도록 뛰어다니며 말없이 친구들과 놀고 오는 아이가 너무 대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사실 현재 나도 친구가 없습니다.
외롭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저도 시간이 약이겠지요.
이렇게라도 글을 쓰니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집니다.
글똥의 효과를 너무나도 체감하는 요즘입니다.
두 번째, 해외살이,
첫 번째와는 또 다른 외로움이 사무칩니다.
아이도 나도 더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감사하게도 지난 1월에 쓴 글을 11월에 다시 읽어봅니다.
너무나 다행히 아이도 저도 캐나다에 적응을 잘했습니다. 저 위의 글 속의 시기에선 친하지 않았던 한국 누나, 형들과 4계절을 함께하며 많은 추억을 쌓았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 누나, 형들의 엄마는 저의 둘도 없는 캐나다 동지들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는 학교에도 무사히 적응을 완료하여 영어 실력도 부쩍 늘고 학교의 외국 친구들과도 잘 지냅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지난 1월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과연 이 시린 적응의 끝이 있을지 궁금했던 나에게 대답합니다.
다행히도, 적응의 끝은 있다고 말이지요.
-매섭고도 아름다웠던 지난겨울의 캐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