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수영을 하면 밥은 언제?
아침 수영을 하기로 하면서 식사에 대해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과거 아침 수영에 실패했던 전력들을 돌이켜보면 기상시간을 이기지 못한 것이 하나, 공복의 두려움이 또 다른 이유였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에 공복 수영을 하면 기력이 없고 어지러워 20분 이상 운동할 수가 없을까봐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그래도 제대로 알아보고 준비하면 괜찮지 않을까 기대하며 '공복 운동 식사' 등의 키워드로 이런저런 검색을 해봤는데, 역시 여러 가지 팁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무언갈 먹으려면 최소한 30분에서 1시간 전에 일어나야 하는 게 핵심이었다. 1시간 전에 일어날 수 있다면 흡수가 빨리되는 액상 형태의 음료를 섭취하는 게 좋은데 꿀이나 스포츠음료, 유청 단백질, 주스를 마시면 된다고 한다. 음료수 자체를 그리 즐겨하지 않기도 하고 기상 직후 수영가방을 챙겨 나갈 걸 생각하면 수영장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15분 이내라 나에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물 한잔만 먹고 가자
이런 경우 일어나자마자 공복에 물 1잔 마시기만 하는 게 제일 좋다는 글을 보고, 이 방법을 써보기로 했다. 고작(?) 물 한 잔이 뭐라고 별 거 아닌 것 같았는데, 며칠 비교해보니 확실히 한 잔을 다 마시고 갈 때의 컨디션이 더 좋았다. 예전에 『미라클 모닝』이라는 책에서 사람은 6~8시간가량 잠을 자면 약한 탈수 증상을 겪기 때문에, 충분히 잤는데도 피로감을 느낀다면 잠을 더 자는 게 아니라 일단 물 한잔을 먹어 탈수 증상을 완화시켜보라고 했던 구절이 기억이 나는데, 나의 경우에도 탈수 증상을 완화시켜 덜 어지러웠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아침 운동을 막 시작하는 입장이다 보니 공복에 너무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 짧고 굵게 30분 정도 논스톱으로 1000M 정도를 돌고 미련 없이 집으로 돌아온다. 신기하게 집에 도착하면 허기지기 시작하는데 딱 이 때는 내가 평소 싫어하는 걸 먹어도 맛있다고 느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호하는 맛은 아니지만 사과와 단백질 셰이크를 구매해봤다.
수영 후 사과와 단백질 셰이크
아무래도 사과 하나만으로는 부족하겠지 싶어 단백질 셰이크까지 준비한 건데, 내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사과 1개만 먹어도 포만감이 엄청나서, 단백질 셰이크는 반도 못 먹을 정도였다. 물론... 단백질 특유의 비린내를 워낙 싫어하는데 배가 약간 차니까 이 냄새가 더 강하게 올라온 탓도 있었다. (그다음에는 단백질 셰이크부터 먹거나, 얼음을 타서 먹어봤는데 한결 나아지기는 했지만 재주문은 하지 않았...)
이렇게 도합 열흘 정도 아침 수영을 해보니 나의 경우 1) 수영 전에는 물 한잔, 2) 수영 이후 사과 1개, 3) 이른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 4) 저녁 전에 배고프면 단백질 셰이크나 그래놀라와 그릭요거트 조합으로 배를 채우는 게 베스트였다.
의외의 소득 : 커피 섭취량 줄이기
이렇게 식사 패턴이 잡혀가면서 특히 만족스러웠던 건 커피 마시는 시간을 뒤로 보냈다는 거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를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침밥을 안 챙겨 먹은 지 벌써 십여 년이나 됐고 특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출근하자마자 공복에 커피를 들이붓던 게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렸다. 재택을 하는 지금까지도 더치 원액을 사다 두고 아침에 눈이 뜨자마자 커피를 마셔왔기 때문에 내 몸을 혹사시키고 있다는 죄책감이 컸지만, 오랜 습관을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아침 수영이 해낸 거다! 수영 다녀온 뒤 사과 한쪽을 먹으면 출근시간이라 출근 로그를 찍고 바로 온라인 데일리 미팅이 시작하기 때문에 커피를 타러 갈 시간이 없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커피를 마시지 못하고 점심을 먹고 나서야 첫 커피를 먹을 여유가 생긴 것. 아무래도 수분이 필요해 갈증을 느끼는 걸 커피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오해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전에 커피 생각이 나지 않은 게 신기했다.
나는 커피를 물처럼 마시기 때문에 첫 커피를 일찍 마시면 마실수록 하루에 섭취하는 커피가 3잔을 넘어가기 일쑤인데, 이 패턴으로 며칠 지내보니 섭취량도 하루 1~2잔으로 줄일 수 있었다.
마냥 도전적이기만 했던 아침 공복 수영이 아침에 그렇게 좋다는 사과를 꾸준히 먹게 된 것도 모자라, 생각지 못한 카페인 섭취량 감소까지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다. (과연 공복 수영으로 살이 빠질지는 관건이지만) 건강한 아침과 식사 패턴의 변화만으로도 아침 공복 수영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당분간 이 패턴을 유지해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