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54일
2024.01.20(토)
네가 태어나고 7주가 되는 기간 동안 목욕을 시켜본 적이 없단다. 아차차 목욕을 아예 안 했다는 건 아니고. 엄마가 직접 한 적이 없다는 뜻이야. 1주의 병원 생활, 2주의 조리원 생활 그리고 산후도우미님과의 4주. 이렇게 7주 내내 신생아 다루기가 직업이신 전문가 선생님들이 너의 목욕을 담당해 주셨거든.
그리고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잠시 여행으로 자리를 비우신 이번주. 엄마의 가장 큰 고민은 너를 깨끗하게 씻기는 일이었단다. 산후도우미 선생님이 계시는 동안 여러 날 네가 목욕하는 모습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은 수없이 했고 이제 선생님이 앞에 안 계셔도 목욕 시뮬레이션 돌리는 솜씨만큼은 이미 마스터의 경지까지 올라간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며칠 전 첫 목욕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됐어. 선생님이 목욕시킬 때에도 세수나 머리 감는 건 워낙 싫어했기 때문에 네가 울먹이기 전부터 하이톤으로 이런저런 말을 랩처럼 내뱉으며 너의 정신을 쏙 빼놔버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세수랑 머리 샴푸는 싫어해도 물에 몸을 담그고 노는 건 워낙 좋아하니 더 걱정할 일이 없었지. 신나게 목욕을 하고 나와서도 네가 유독 팔다리, 발바닥 마사지를 좋아해서 생글생글 웃으며 옷까지 입혔단다.
그래서 오늘 목욕도 문제없을 거라 생각하고 자신 있게 목욕을 시작했는데……. 웬걸 시작부터 울기 시작하더니 마사지를 할 즈음에는 얼굴이 검붉어질 정도로 악을 쓰며 (정말 말 그대로 공포영화에 나오는 악 수준이었어) 우는 거 있지. 원래라면 좀 울더라도 감기 들기 전에 얼른 옷부터 입혀야 하는데, 이건 너무 심하게 악을 쓰니 일단 끌어안고 달래 진정시키는 걸 먼저 할 정도였다.
엄마 혼이 쏙 빠져서는 어떻게 머리를 감겼고 어디까지 로션을 발랐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구나. 겨우겨우 옷까지 입혀 마무리하고 보니 세수한 보람도 없게 네 눈가는 눈물범벅이고 눈은 그새 퉁퉁 부었더라. 게다가 오돌토돌한 태열까지 잔뜩 올라온 거 있지. 얼굴이 이러면 분명 몸에도 태열이 올라왔을 텐데 엄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자지러지게 울었을까 곰곰이 고민하다 시계를 보고 그 답을 찾고 '아차차' 했다. 밥때가 다 됐던 거야. 배가 고파서 우는데 달라는 밥은 안 주고 싫어하는 세수에 샴푸까지 하니 화가 날대로 나서 좋아하는 목욕도 마사지도 다 싫어져 바락바락 악을 질렀던 거지. 아고고.
이제 다시는 배고플 때 목욕 시키지 않을게. 다음번에는 기분 좋게 목욕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