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의 육아를 배우세요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는 방법

by 날찌

4주간의 산후도우미 서비스가 오늘로 끝이 난다. 뉴스에 흉흉한 사건 사고가 많이 올라오다 보니 서비스를 신청하기도 전부터 걱정이 한 바가지였다. 다행히 우리 집에 오신 도우미 선생님은 업무 시간 내내 바삐 움직이시며 핸드폰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으시는 분이셨다. 하루 업무를 마무리하는 5시가 가까워질 때 아가가 잠만 잘 자준다면 여유롭게 아이 옆에서 커피를 드시며 책을 읽으셨다. 가끔은 그 시간에 나도 낮잠을 자고 일어나 선생님과 수다를 떨곤 했는데 어쩌다 선생님이 이 일을 시작하시게 된 스토리를 여쭤보게 됐다.


"딸이 첫째를 가졌을 때 내가 아이 보는 걸 도와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순간 무서워지더라고요. 아이를 키운 게 벌써 30년도 더 된 일인데 그 갓난쟁이를 어떻게 키우지? 하면서.

그러던 중 산후도우미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강습료를 내면 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주변 사람의 소개로 실장님(산후도우미 업체)을 알게 됐는데, 사무실로 한 번 오라고 하셔서 갔다가 얼떨결에 교육까지 받게 됐어요.

이 일을 할 생각보다는 순전히 손주 키우려고 배운 거예요 이게. 딸이 복직하면서부터는 평일에는 아예 우리 집에서 아이를 키웠어요."


옛날에 키웠던 기억이 희미해져서, 무서워져서라고 지나가듯 말씀하셨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는 걸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변한 것들(새롭게 밝혀진 올바른 정보, 신박한 육아템 등)을 돈을 주고 배우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하셨다는 데 경의를 표했다. 내가 30여 년 전에 경험한 희미하게 알고 있는 기억들이 정답인 것 마냥 잔소리하지 않는 멋진 어른. 이렇게 늙어가야지.


그 이후 본격적으로 산후도우미 일을 시작하시게 된 이야기도 들려주셨다.


"그러다 딸이 둘째를 가지면서 일을 그만두고 아이 둘을 모두 자기가 키운다고 데려갔는데 아이들을 뺏기는 느낌이 들던 거 있죠. 그래서 손주 보려고 별 핑계를 다 대면서 딸 내 집을 들락 거렸지. 그런데 어느 순간 딸과 미묘한 감정의 골이 생기는 게 느껴졌어요.

제가 아주 사소한 것들에 개입해 잔소리를 하고 있더라고요. 딸아이 휴직 때 손주를 봤던 경험이 있으니까 어느 순간 내 방식을 은근슬쩍 들이밀며 아이가 이걸 더 좋아하더라 하면서 간섭을 하고 있는 거죠. 딸이 경고하듯 ‘엄마’라고 넌지시 말하는 걸 못 듣고 계속 잔소리를 하면 한 번 더 ‘엄마’ 이렇게 말을 끊는데 아차 싶었어요.

제가 아이들을 키우던 가치관과 딸의 가치관에 미묘한 차이가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더라고요. 사실 손주들의 엄마는 내 딸이니까 제가 간섭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실제로 간섭을 멈추는 건 또 잘 안되데요.

그즈음 마침 실장님께 계속 연락이 왔었거든요. 일을 배웠으니 써먹으시려고 ㅎㅎ. 저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했어요. 시작하고 보니 잘했다 싶어요. 몸은 힘들긴 해도 금전적으로 풍요로워지니까 주기적으로 우리 바깥양반이랑 여행도 다니고 아이들 선물도 큼직큼직하게 쏘기도 하고 아주 만족해요. 여행 간다고 아들딸에게 돈 받는 것도 일절 없고 얘들도 여행 다닐 만큼 다닌 아이들이라 선물 필요 없다 그러고.

이번 5월에는 튀르키예도 가기로 했어요. 한 11일 정도 길게 다녀올 건데 아주 기대돼요."


윗사람이라면 보통 본인이 잘 알고 있는 걸 아랫사람에게 알려주는 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만족에 빠지기 쉽다. 그런데 선생님은 결국 손주들의 부모는 딸네임을, 본인의 조언이 결국 잔소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이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은연중에 자꾸 간섭이 튀어나오는 걸 막을 수 없어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어 심리적으로도 손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셨다. 금전적 여유가 생긴 건 보너스고.


산후도우미 선생님뿐만 아니라 얼마 전 단유하며 만난 가슴관리사 선생님도 젊은 산모를 만나는 일을 10여 년 하시면서 요즘 세대의 육아를 배우고 있다고 하시는데 너무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 엄마들의 육아 가치관, 요즘 엄마들이 배우는 최근 육아 지식들, 요즘 엄마들이 사용하는 신박한 육아템까지도 너무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는 그녀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최근에는 임신 출산 이후에도 복직을 고려하는 엄마들이 워낙 많다 보니 일하는 여성으로의 연대감을 느끼며 지금 하고 계신 일을 더 오래 하고 싶다고 하시는데. 임신 출산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멋진 어른들을 만나게 될지 예상하지도 못한터라 너무 감격스러웠다. 세상에는 이렇게 멋진 엄마이자 일하는 여성들이 많구나.


출산 전에도 항상 하던 생각이지만 오늘 다시 한번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부모 세대도 자신만의 일과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이미 모든 걸 통달한 것 같은 완성형 인간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배우고 나아가는 진행형 인간이 되어야 한다.


나도 이런 멋진 어른이 되어보자.


사진: UnsplashRod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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