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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Feb 29. 2024

신생아를 둔 엄마의 설날

생후 75일

2024.02.10(토)


오늘은 설날이야 톤톤아. 네가 아직 100일이 되지 않은 관계로 이번 명절엔 아무 데도 가지 않기로 했단다. 대신 엄마의 친구와 가족들이 차례로 집을 찾아줬어.


그래도 설날이니까 예쁜 한복을 입고 가족들에게 영상통화를 하고 오후에 올 손님들을 맞이하려고 했는데 당근으로 구매한 생활 한복의 안쪽 봉제선의 거친 촉감이 맘에 들지 않는지 대성통곡을 하더구나. 겨우겨우 달래가며 영상통화를 했다만 그걸 끝으로 그 옷은 벗어줘야만 했어. 새 옷으로 안 사고 당근으로 구매하길 정말 잘했지 뭐니. 이 옷을 이렇게 싫어할 줄이야. 결국 한복 원피스는 벗기고 개량한복 조끼랑 노리개 그리고 나비 머리핀만 써서 설 기분을 내보았다.


오늘 찾아온 손님들 중 첫 번째 손님은 엄마의 15년 지기 친구(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모라 칭할게)야. 이모는 지금 미국에 살고 있고 5년 만에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한국에 들어왔단다. 외출이 어려운 엄마를 위해 우리 집까지 놀러 와줬지 뭐니. 이모는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직장 생활을 하는 워킹맘으로 살고 있어. 처음에는 미국에 자리 잡느라 한국에 오기가 힘들었고 그다음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한국에 오기가 어려웠지.


그러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엄마가 재작년에 1년 뒤 비행기 표를 끊어두고 휴가 계획도 다 세워뒀었거든. 그런데 작년 4월에 너를 가진 걸 알게 되면서 미국행 비행기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단다. 너무 아쉽고 미안했는데 다행히 올해 이모의 딸 아멜리가 두 돌이 지나서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한국을 들어와서 이렇게 우리 집까지 와줬어.


너 그거 아니? 정말 친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도 마치 어제 만난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거. 이모랑 엄마는 그런 사이야. 오두방정 떠는 거 하나 없이 대화를 나누는데 예전 대학 시절로 돌아간 듯 편안했어. 마음만은 15년 전 대학 기숙사에 앉아있는 학생 때 같은데 이제 엄마와 이모 옆에 각자의 배우자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하더구나. 그간의 세월이 느껴지는 그림이었어.


아멜리 언니는 톤톤이가 신기한지 계속 주변을 맴도는구나. 톤톤이를 가리키며 "baby"라고 수줍게 이야기하길래 엄마가 이리 와서 쓰담쓰담해달라고 하니 톤톤이의 머리, 얼굴, 팔을 만지며 신기해한다. 톤톤이는 언니가 쓰다듬어주는지도 모르고 푹 잠들었네.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는데 나중에 톤톤이가 아멜리 언니만큼 커서 그때 너희 둘에게 이 사진을 보여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아멜리 언니는 이번에 30개월이 됐다고 하는데 어른과 '대화'를 나누더구나. 그리고 얼마나 호기심이 많은지 이리저리 천방지축 뛰어다니고 넘어지는 통에 이모와 이모부가 연신 "stop", "be careful"을 외치더라고.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조만간 톤톤이와 대화하고 톤톤이 뒤를 쫓아다니며 "안돼", "조심해"를 외칠 모습을 그려봤단다. 조금은 피곤하겠지만 너와 대화를 나누며 꺄르르 웃을 날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해지더구나.


저녁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이모(여기는 엄마의 친동생)가 왔어. 깜짝 선물로 엄마가 어릴 때 좋아하던 포천 이동 순두부를 사 오셨네. 엄마는 그 순두부를 좋아했다는 것만 기억하지 맛은 가물가물했거든.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어릴 적 먹었던 익숙한 '그 맛'과 이 순두부를 먹을 때의 '추억'이 확 떠오르더라고. 어릴 때 가족들과 포천에 있는 온천을 자주 갔었는데 그곳을 다녀올 때마다 이 순두부를 사가지고 와 먹었었거든.


의정부로 이사오길 정말 잘한 거 같아.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 어릴 적 추억을 돌이키는 일도 잦아지네. 행복하다. 톤톤이에게도 어릴 적을 추억할 수 있는 일들을 많이 만들어줘야겠다. 나중에 네가 커서 '엄마아빠 우리 이런 일 있었던 거 기억나?'하고 미주알고주알 할 수 있게 말이야.


밖에 나가지는 못했지만 우리 집에 찾아와 주신 손님들 덕분에 행복한 기운을 잔뜩 받은 하루다.


결국 한복 원피스는 내팽겨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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