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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Mar 22. 2024

아빠가 백일 간의 육아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생후 101일

2024.03.07(목)


아빠가 문득 엄마에게 지난 백일간 경험한 출산과 육아에 대한 소회를 물었다. 조금 당황했던 게 네 아빠는 현재 자신이 보내는 시간에 열중하고 딱히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라서 보통 이런 건 엄마의 단골 질문이었거든. 그런데 오늘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은 거야.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엄마와 함께한 7년이 아빠를 이렇게 변화시킨 걸까? 덕분에 오랜만에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백일을 돌아보니 글쎄 엄마는 '장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거 같아. 막달에는 출산에 대한 걱정이 한가득이었고 너를 출산한 직후 병원에서는 생각보다 조그마한 너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모르겠어서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거든. 특히 백일도 안 된 너를 데리고 장거리 이사라는 큰 이벤트를 앞두고 그 걱정이 배가 됐던 것 같아. 하지만 백일이 지난 지금은 이사도 잘 해냈고 누구의 도움 없이 너와 엄마 둘만 있어도 너를 돌볼 수 있는 진짜 ‘엄마’가 된 것 같거든. 그래서 그냥 ‘나 녀석 장하다’ 이 생각밖에 안 든다고 대답했단다.


아빠는 어땠는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완전 T답게 다시 이때로 돌아간다면 다르게 하고 싶은 아쉬웠던 것들을 줄줄이 나열하는구나. “스튜디오 촬영 대신 홈 스냅을 하겠어”, “브레짜 단위가 너무 정밀하지 않아서 버리는 분유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리원에서 자기가 너무 푹 못 쉰 거 같아”. 이 말에 엄마 눈시울이 붉…어지지는 않았고 (엄마도 극강의 T거든) 아이가 최고로 이뻐 죽겠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엄마 걱정을 먼저 하는 이 남자. 이 남자와 결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준비하던 때던가 언젠가 “우리에게 혹시 아이가 생겨도 아이가 전부인 삶이 아니라 아이만큼이나 서로를 1순위로 생각하며 살자”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어. 물론 엄마 아빠는 너를 우리에게 온 아주 귀한 손님이라고 생각하고 극진히 돌보고 네가 스스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야. 하지만 언젠가 너는 우리를 떠나 너만의 가족을 일구며 살아갈 거고 그때가 되면 엄마 아빠 둘만 남을 테니 네가 떠나기 전에도 엄마 아빠는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거란다.


혹시라도 엄마 아빠에게 네가 1순위가 아니라고 느껴져 서운한 순간이 오면 읽어보라고 조금 오글거리지만 이 글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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