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서 직접 숙소를 구해야되는 이유
발리의 첫 인상
길고도 길었던 발리의 새벽이 지나고 아침도 지났다. 호스트에게 아침밥을 먹지 않겠다고 미리 말해뒀기 때문에, 아침잠을 방해받지 않고 충분히 잠을 잘 수 있었다. 10시 반쯤 됐으려나, 온갖 자연의 소리가 내 귀를 먼저 깨웠다. 새 지저귀는 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짓는 소리, 꼭 시골 할머니 집에 온 것만 같은 설래는 기분.
설래는 건 설래는 거고, 아직 전날의 피곤함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 햇살을 피해 조금이라도 더 자보려고, 베개로 얼굴을 틀어막았다. 읍! 그 때 나의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베개의 꿉꿉한 냄새!
"아, 나 진짜 발리에 왔구나"
베개 냄새 공격에 잠이 확 달아난 나는 밍기적 밍기적 커튼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 반쯤 감긴 눈으로 아침 일기를 끄적인다.
2019.08.19(월) 11AM
와 나 여기 어떻게 들어왔지?
정말 클룩 신청할 때 USIM 같이 안 샀으면 큰일날 뻔.
사실 거기에다 USIM 빼는 pin까지 가져왔음 완벽했을텐데...
다음부터 새벽 도착일 때는 24시간 리셉션 제공하는 호텔로 예약해야지 꼭...
오늘 아침밥은 시원하게 스킵하고 11시까지 늦잠.
그나저나 베개에서 냄새가 난다. 이 꿉꿉한 냄새...
방 안에 모기 한마리가 날라다닌다. 모기장 없었으면 어쩔.
이 숙소는 이틀만 예약하길 참 잘했다.
그래도 개인테라스는 좀 좋다. 다른 숙소는 더 좋길 바라며...
'숙소는 반드시 현지에서 구한다'
여러번의 동남아 배낭여행을 통해 생긴 나의 철칙이다. (이 원칙은 도심이 아닌 곳의 배낭여행에만 해당한다. 도심 여행지로 3~4일 여행갈 때는 꼭 미리 꼼꼼히 알아보고 예약하시길)
예약 사이트에 올라온 고오오오급스러운 사진만 보고 절대 예약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숙소가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숙소가 위치한 동네 분위기는 현지에 도착하기 전에는 절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주 생활권이 될 동네에서부터 걸리는 거리나, 보통은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가게 될텐데 너무 외지진 않은지 미리 확인해보는게 좋다. 특히 일주일 가량 장기로 머물 숙소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현지에서의 첫날을 대개 동네 산책 겸 숙소를 찾는 일에 할애한다.
이번처럼 새벽에 도착하는 경우는 이틀 정도 미리 숙소를 예약해두는데, 최대한 번화가에서 완전 가깝고 가성비가 좋은 곳을 선택한다. 그리고 숙소를 찾으러 가기 전에 구글 지도를 켜고, 어떤 경로로 걸어다닐지를 결정한다. 구글 지도에는 미리 찾아 핀(pin)해둔 숙소, 음식점, 요가원, 은행, 마트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어서 경로 짜기에 매우 용이하다.
우붓에서는 주로 요가를 하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미리 찾아둔 요가원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을 위주로 돌아다니기로 하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역시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첫날 묵었던 숙소의 왼편에 위치한 메인도로 쪽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는데, 에어비엔비에서 뭔가 휴양지 느낌이 물씬나는 숙소가 많았던 거 같아 기대가 컸다. 그런데 뭔가 첫 입구부터 공사판 느낌. 이제 막 새로 개발되는 구역인 것 같았다. 메인로드의 관광객 수요를 받기 위해 옆 동네로 추가 개발이 들어가기 시작한 느낌이랄까. 요가원에서도 가깝지 않았고, 시내까지 가는 길이 조금 외지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서 결국 이 거리에 있는 숙소들은 모두 후보지에서 지워버렸다. 그 중 한 곳은 그래도 번화가에서 가까운 초입에 위치하고 객실 상태도 괜찮은 편이라 마음에 들었지만, 공용으로 사용하는 바와 수영장이 바로 앞에 있고, 바에서는 여기가 이비자(Ibiza)인지 발리인지 알 수 없을만큼 시끄럽고 펑키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세상에... 얼른 그 곳을 나와버렸다. 역시 직접 확인해보길 잘했다 싶다.
스타벅스와 우붓시장이 있는 번잡한 동네를 지나 이번엔 첫날 묵었던 숙소의 오른편에 위치한 메인도로 쪽으로 이동했다. 이 쪽 길은 쭉 내려가면 우붓에서 가장 큰 요가원인 'Yoga Barn'으로 바로 갈 수 있어서 처음부터 눈여겨 봤던 곳인데, 온라인에서는 괜찮아 보이는 숙소를 찾지 못해 직접 발품을 팔며 한곳한곳 들어가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곳이었다. 한 집 걸러 한 집, 정말 숙소가 많았다. 하지만 길가에 있는 숙소들은 대부분 숙소의 질이 너무 떨어졌다. 원래 계획했던 경로의 막바지까지 왔을 때는 이러다 숙소를 못 찾으려나 조금 위기감을 느꼈다.
좋은 숙소는 역시 발품이 국룰
그러던 중 우연히 좁지만 깔끔해보이는 골목을 하나 발견했는데, 입구에 '00방갈로, xx방갈로' 같은 팻말이 엄청 많아 마지막 기대를 안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방금까지 큰길에 있었다는 게 믿겨지지 않을만큼 아늑했다. 구멍가게 하나, 빨래방 하나, 오토바이 대여소 하나를 지나가니 여러 숙소들이 보였는데, 왠지 기운이 좋았다. 골목 내 몇 군데를 돌아본 끝에, 실내가 매우 깨끗하고 정갈한 숙소 한 곳을 발견했다. 가격도 꽤 합리적이었고, 아침밥도 나온다고 한다.
어렵게 찾은 곳이니만큼 최대한 머물 생각으로, 다음날부터 묵을 수 있냐고 물어봤는데, 안타깝게도 첫날은 어렵다고 해서, 하루만 다른 방에서 머물기로 하고 냉큼 예약을 했다. 주인과 "씨유투모로우~"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정말 마지막까지 숙소 못 구할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싶고, 적어도 앞으로 6일은 숙소 걱정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하루 종일 걸어다녀 고생한 다리가 아프다고 난리다. 숙소 들어가는 길 마사지샵을 검색해본다. 역시 하루의 마무리는 마사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