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출발한지 약 14시간 만에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 비행은 늘 그렇듯, 낯선 나라에 도착했다는 실감이 잘 안 난다. 곳곳에 보이는 낯선 언어로 쓰여있는 간판 정도가 유일하게 여긴 한국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정도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제시간에 공항에 도착한데다 입국심사도 생각보다 빠르게 마치고 나와서일까, 아니면 그냥 새벽의 몽롱함 때문일까, 약간 긴장이 필려있는 상태였다. (출발하기 전부터 새벽비행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몇 번이나 떠올렸던 사람 맞냐고)
이제 미리 예약해둔 클룩(Klook) 기사님의 차를 타고 편안히 우붓까지 가서 포근한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은 다음 꿀잠을 자면 되겠다고 행복한 상상을 하며 짐을 기다렸다.
내 짐은 어디에
짐을 기다리기 시작한지 10분쯤 됐을 때였나? 다른 승객 한 명이 캐리어를 분실했는지 엉엉 울면서 직원과 손짓 발짓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설마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나겠어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대기시간이 30분이 넘어가면서, 대부분의 승객들이 하나 둘 짐을 찾아 밖으로 나가고 심지어 기내 승무원들까지 짐을 찾아 나가기 시작하니, 급격히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나가는 승무원을 붙잡고 도움을 요청했다.
"아니 제가요, 30분 전부터 기다리는데 아직까지 가방이 안 나왔어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요? 이제 어떻게 해야해요?"
"(전광판과 항공권을 이리저리 비교하더니) 저... 이 항공편은 5번 레인으로 가셔야 하는데..."
"네?! 그럴리가요. 쿠알라룸푸르에서 출발한 말레이시아 항공, 여기 4번 맞아요!"
"여기 잘 보시면 항공편 번호가 달라요."
"아... (부끄부끄) 감....감사합니다"
뭔가 잘 풀리는 느낌에 수화물 수취대 번호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항공사 마크랑 출발지가 맞는지만 훑어보고 4번에 앉아 있었던 건데, 비슷한 시간대에 같은 출발지에서 온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가 2대였고 우연히도 수화물 수취대로 4번, 5번 레인을 나란히 사용했던 것이다. 시뻘게진 얼굴로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고는 얼른 5번 레인으로 향했다. 혼자 몇 바퀴 째 처량하게 돌고 있었을 내 캐리어를 집어들었고 드디어 출국장을 나섰다.
택시 드라이버는 어디에
출국장 밖을 나섰으니 이제 미리 예약해둔 클룩 드라이버를 찾아 나선다.
한국에서 미리 출력해간 픽업 장소가 그려진 약도를 한 손에 쥐고, 오랜지색 티셔츠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이때 사람들이 하나 둘 접근하며 "딱시? 딱시? 꾸따? 우붓?" 외친다. 그들의 티셔츠는 오렌지색이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그들과 말을 섞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재빠르게 "벌써 택시 예약했어요"로 화답하고 계속 피해 다니기 바빴다. 같은 길만 여러차례 오가며 얼굴이 사색이 되어간지 10분째. 아까 호객 행위를 하던 사람들이 다시 접근한다. 또 귀찮게 구려나 싶어 선수를 쳤다.
"벌써 예약했다고요, 택시!"
"응 그러니까. 내가 도와줄게. 뭘로 예약했어?"
아차, 내가 계속 같은 길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는 걸 보다 못해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어버렸다. 또 다시 얼굴이 시뻘게졌다. 다행히 너무 고맙게도 그는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약도와는 전혀 다른 위치에...) 한데 모여있는 클룩 기사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줬다.
도와준 그에게는 너무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그렇게 찾던 드라이버를 만났다는 안도감에 거의 흐느끼다시피 "Bye"인지 "Thank you"인지 알 수 없는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는 쏘 쿨하게 뒤돌아가 가고, 내가 예약한 드라이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내 짐을 트렁크에 싣는다.
그래, 이제 안심하고 우붓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