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도 각자의 사정이란 게 있다
한 달 휴직 기간 동안 발리에 다녀올 예정이라고 말하면, 돌아오는 단골 질문이 몇 개 있었다.
"그럼 신랑은 어떻게 하고?!"
"어머 좋겠다. 신랑이랑 같이가?"
결국 궁금한 건 '설마 싱글도 아닌 유부녀가 혼자 한 달이나 여행을 가겠어' 이겠지?
사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같이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한 달 전에 새로운 분야로 전직을 목표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이제 막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같이 가자고 떼를 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해서 그와 같이 갈 수 없다고 나의 발리행 티켓을 포기하는 건 더더욱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부부라서 같이? 부부라서 더욱 따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영화를 보면 "누군가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큰 여주인공이 나오는데, 올해 내가 비슷했던 것 같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분명 나만 좋아하는 거, 그만 좋아하는 거, 우리 두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게 있을 수 밖에 없는데, 신혼 초에는 서로를 애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좋아하는 것이나 상대가 더 좋아하는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이 남자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분명 너무 행복한데, 나만 좋아하는 걸 하는 나만의 시간이 부족해질수록 나를 잃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각자가 건강하지 않으면 부부 간의 관계도 건강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는 결혼 전과 같이 외부활동을 많이 늘렸다. 독서모임, 외부 컨퍼런스, 요가, 친구와의 술자리 시간을 조금씩 마련하고, 신랑과 함께 보내는 시간과 적절히 시간을 분배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여행도 그 일환으로 결정한 일이기 때문에, 잠시지만 그는 그의 길을, 나는 나의 길을 따로 걷고 돌아오기로 했다.
발리가는 환승 공항에서
출국 전날부터 곧 떠나는구나 실감이 나면서 조금씩 무섭고 떨려왔다. 그간 장기 여행도 꽤 다녀온 편이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는 혼자 다녀온 여행도 여러번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왜 이런 감정이 드는건지. (심지어 눈물도 찔끔 났다 세상에...)
신랑과 둘이 함께한 시간이 한 2년 정도 되었을까? 혼자 있어도 외로움은 잘 안 타고, 힘든 상황에 직면해도 강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혼자 이겨내던 나였는데, 그를 만나면서 많이 바뀌었나보다. 재미난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카톡으로 보내서 각종 이모티콘으로 박장대소를 표현하고, 머리 끝가지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1도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 핏대를 세우며 하소연도 하고, 무거운 짐은 언제나 그의 손에 넘어가 있고, 이제 그가 없는 내 일상은 잘 상상이 안 간다. 어느새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 되어버린건가.
어찌저찌 출국장에서 신랑과 인사를 하고, 환승을 위해 도착한 공항 카페에 앉아있는 지금 이 곳은 분명 매우 소란스러운데, 나만 적적한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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