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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Jul 22. 2021

새벽 비행기의 유혹

왜 우린 매번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발리까지의 직항 항공편은 80~100만원 선이다. 그러나 한 달이나 무급휴직을 하기로 한 나에겐 너무 호사스러웠다. 지갑은 얇아진 대신 시간은 넉넉해졌으니, 조금 고생스럽더라도 직항의 반값 정도인 경유 비행기를 선택하기로 했다. 게다가 새벽에 도착하는 건 30만원까지도 내려갔다. 눈이 번뜩였다. 슬슬 새벽 비행기의 유혹이 시작됐다.


새벽 비행기의 추억


사실 나는 지금껏 새벽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타고 순탄하게 여행을 시작했던 기억이 없다.


8년 전 방콕에선 내가 제시하는 금액을 모든 택시 기사님들이 거부하는 사태가 있었는데, 나도 한 고집한다며 1시간 가량을 버티다 결국은 애초에 생각한 예산의 2배를 주고서야 탑승했었다.


그리고 4년 전인가? 세부에의 숙소에서는 전상상으로 내 예약내역 확인이 안돼 체크인을 못했던 경우가 있었는데, 새벽이라 한국의 고객센터는 운영을 하지 않았고, 결국 1박 비용만큼의 보증금을 내고서야 객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날 프런트 직원이 한국 업체에서 예약내역의 일부를 누락했었다며 (알게 뭐람) 어제 결제한 보증금은 1~2주 내에 환불처리된다고 안심시켜줬지만 다음부턴 절대로 새벽 도착 항공권은 구매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었는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얇은 주머니 사정은 나의 악몽을 추억으로 둔갑시켜 나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다. "그런 경험이 여행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거라고. 이미 겪어봤으니, 또 그런 일이 있겠냐고. 이번엔 준비만 잘 하면 된다고."


그래 어디 준비를 한 번 해볼까? 미리 클룩으로
 픽업 서비스를 예약하고, 현지에서 구매하는 것보다 많이 비싸지만 유심도 미리 신청했다. 유심 수령도 클룩 픽업 기사님에게 직접 받은 옵션이어서 나름 공항에서 우왕좌왕할 경우의 수를 확 줄였다고 생각하니 조금 덜 무서웠다. 

공항에서 노숙을 할까도 했지만, 20대 때처럼 작정하고 고생을 하러 온 배낭여행객도 아니고 조금 아깝긴 하지만 그냥 
저렴한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에어비앤비는 호텔처럼 24시간 프론트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조금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가격적 메리트가 있었다. 대신 사전에 호스트에게 비행기 시간 때문에 새벽 3시쯤 도착할 것 같은데 괜찮냐고 물어봤고, 딱 그 시간에 기다리고 있겠다는 확신에 찬 호스트의 대답에 "와우 나 숙소 너무 잘 찾은 거 같아" 자화자찬까지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참 믿음직스럽던 호스트


이번엔 여러모로 준비를 많이 했으니, 정말 다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이번에도 새벽 비행기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다.


Photo by Josue Isai Ramos Figuero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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