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갔던 수많은 결혼식을 돌아보며
지인의 소개로 만난 우리 부부는 연애를 길게 하진 않았다. 신랑은 안산의 회사 근처에서 사택 생활을, 나는 잠실에서 자취를 하며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던 시절이어서, 주중엔 거의 보기 어려웠고 주말마다 내내 붙어지냈다. 그러다보니 그냥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그냥 살림을 확 합쳐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양가 부모님께 각자의 연인과 함께 살겠다는 말씀은 드려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부모님을 만나게 됐고, 또 너무나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버버 하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단순히 같이 살고 싶다에서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신부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부부는 "결혼을 꼭 하고 싶다" 혹은 "결혼은 절대 안한다."에 대한 주관이 딱히 없었다보니, 결혼은 물론 결혼식에 대한 '생각' 자체를 깊게 해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행 하나 가는 데에도 컨셉과 의미를 기획해야 마음이 편한 천상 기획쟁이다. 그렇다보니 기왕하는 결혼이라면, 이번에도 제대로 의미를 담아 하고 싶어졌다. (신랑도 처음부터 같은 마음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쿨럭)
일단 신랑과 나는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라는 걸 해보기로 했다.
우리의 결혼식이 어땠으면 좋겠는지 청사진부터 만들어 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무작정 생각하려니 좀 어려워서, 먼저 그동안 우리가 봐왔던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객으로서 느꼈던 감정,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는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신부입장
나: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사위에게 넘겨주는 건 무슨 의미일까?"
신랑: "음... 이제 내 책임을 너에게 넘기노라 같은 느낌이긴 하지?"
나: "응. 꼭 팔려가는 느낌이야... 싫다"
#신랑신부의뒷통수
신랑: "결혼식가면 항상 신랑신부 뒷통수만 보다 오는 거 같아 ㅋㅋㅋ"
나: "그러네! 일생에 두 사람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에 하나일텐데!"
신랑: "게다가 메이크업도 새벽같이 가서 받고 올 걸? 그런데 예식 내내 두 사람은 앞만 바라보니..."
나: "드레스도 마찬가지 아니야? 너무 멀어서 사실 잘 보이지도 않아 ㅠㅠ"
#신부대기실
나: "개인적으로 나는 신부대기실 잘 안 가. 줄서서 사진찍고 나오는 거 뭔가 이상해"
신랑: "남자들은 신부대기실 잘 안가지."
나: "그러니까!! 내 손님들 중에 분명히 남자들도 많은텐데, 얼굴도 못보고 결혼식장에 들어가는거잖아!"
신랑: "그건 그렇네. 신부 측 하객으로 갈 때, 나도 좀 아쉽고 그랬던 거 같다."
나: "나도 부모님 옆에서 내 손님 맞이하고, 부모님한테 소개도 드리면 좋잖아. 반대로 부모님 손님께도 직접 감사인사 드릴 수 있고."
신랑: "근데 드레스 때문에 이모님 대동 안하면 움직이기 어려워 보이긴 하더라"
나: "맞아맞아. 그럼 혼자서도 움직이기 편한 드레스를 고르면 되겠네. 이모님 없이도 되게."
신랑: "막 뛰어다니고 그럴 건 아니...지?"
나: "뭐 어때 ㅋㅋㅋ 근데 볼 만하겠다 ㅋㅋㅋ"
#결혼식은보지않는하객들
신랑: "가끔 보면, 축의금 내자마자 식은 보지도 않고 바로 식사하러 내려가는 하객도 많더라"
나: "아 진짜? 음...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특히 집안 어르신들?"
신랑: "왜 그럴까? 식이 다 거기서 거기라서? 재미없어서?"
나: "신랑신부 축하보다는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만나는 게 더 중요하신 것 같기도 하고..."
신랑: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지만, 그래도 아쉽겠다. 그분들도 흥미롭게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나: "뭔가 같은 예식장인데,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느낌이긴 해. 그걸 허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신랑신부는꿀먹은벙어리
나: "결혼식이 신랑신부가 감사합니다 하는 자리라는데, 왜 신랑신부는 한마디도 안할까?"
신랑: "왜~ 가끔씩 사회자가 결혼식 다 끝나고 신랑 신부님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이런거 물어보면 하늘땅만큼 사랑합니다. 그러잖아~"
나: "아니, 그게 뭐야 ㅋㅋㅋ"
신랑: "왜 자기가 마이크 잡고 사회도 같이 보려고?"
나: "어! 그럴까? 괜찮은데?"
신랑: "......."
#폐백이뭐야
나: "가끔 폐백하는 예식을 보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하객들이 밥 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리다 신랑신부 얼굴도 못보고 돌아가는 경우를 봤어. 근데 폐백이 정확히 뭐야?"
신랑: "신랑 가족들? 친척들까지 돌아가며 인사드리는 거였던가. 그럴걸?"
나: "응? 신랑 가족들만? 신부 가족들한테는 아니고?"
신랑: "아마도...?"
나: "음... 할많하않..."
#울긴왜울어
나: "난 남의 결혼식 가면 그렇게 울어 ㅠㅠ 왜 그럴까? 내 결혼식에서도 울까봐 걱정이야..."
신랑: "음악이나 분위기가 좀 그런 거 같아. 근데 그거랑 상관없이 부모님이 자식에게 남기는 말 같은 건 좀 울컥하긴 해"
나: "음악이나 분위기는 무조건 즐겁게 가야겠다. 부모님 멘트에 울면... 그건 어쩔 수 없겠다. 자기가 잘 닦아줘 ㅠㅠ"
신랑: "알았어 나만 믿어. 꼬집어줄께. 음... 난 안 울겠지? ㅋㅋㅋ"
#30분마다부부가탄생하는_결혼공장
신랑: "예전에 결혼식장에 일찍 도착한 적이 있었는데, 앞타임 식이 늦게 끝나서 남의 결혼식장에 들어가서 앉아있었던 적 있어 ㅋㅋㅋ"
나: "결혼식이 30분 마다 교체되던가? 정말 정신없어 ㅠㅠ 하객 구분도 잘 안되고 ㅠㅠ"
#예물
나: "왜 예식 때 예물로 결혼반지 주고 받잖아. 결혼반지가 얼만지 알아?"
신랑: "글쎄 얼마나 하는데?"
나: "박람회? 이런데서는 몇백하고, 종로 이런데서도 결혼반지라고 말 안하고 커플링 같은 거 보면 50만원 안팍이더라고?"
(참고로 우리는 이전의 연인들과 커플링은 한 번도 맞춰본 적이 없고, 처음으로 맞춘 반지도 길거리 팬시점에서 만원씩 주고 산 써지컬 링에 각인만 새겨서 끼고 다녀서 반지 단가에 대한 개념이 없다.)
신랑: "헐... 너무 비싸!"
나: "그치? 잃어버릴까 무서워서 어떻게 끼고 다녀. 만약에 새로 사면 지금 반지는 어쩌고!"
그리고 그간 주변의 결혼 선배들에게 들었던 조언(?)들도 곱씹어봤다.
#폐물
신랑: "폐물을 준비해서 결혼식 이후 꺼내봤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거 같아. 보여주기 식이라면 더 실용적으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나: "맞아. 아까워"
#뿌린돈회수하는장사
나: "결국에 결혼식은 부모님 장사라고. 그동안 뿌린 돈 거둬들이는 거라잖아. 어떻게 생각해?"
신랑: "난 그 말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맞다 틀리다의 영역은 아닌 거 같아. 다만 표현이 너무 과격해서 '돈'에 너무 집중해서 해석하면 안되는게 아닐까 싶어."
나: "음, 부모님이 자식 잘 키운 거 자랑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결혼식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하고 싶은거지?"
신랑: "응 맞아"
#식장위치
신랑: "왜 시골에서 오시는 분들 생각해서 역이나 터미널 근처로 잡아라. 이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 "사실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지인들을 위해서도 필요하지. 축하하러 와주시는 분들이 쉽게 찾아오실 수 있게 준비하는 건 꼭 필요하지"
#결혼식의주인공
신랑: "결혼식에 주인공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 누가 주인공일까?"
나: "우리와 우리 부모님이 호스트인거지, 주인공은 또 아닌 거 같아. 호스트와 하객 모두가 주인공 아닐까?"
정말 결혼식 직전까지도 이런 대화를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놀라웠던 건, 의외로 이미 우리가 결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접하고 있었고, 굳이 끄집어내지 않아서 그랬지 은연중에 '생각'도 많이 하고 있었다는 거다. 게다가 결혼준비를 시작한 새해에 서른을 맞이한 우리는 엄청난 양의 청첩장을 받기 시작했고, 3월이 지나가자 거의 매주 결혼식이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덕분에 결혼식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우리의 토론은 더 깊어져갈 수 밖에 없었다. 가끔 이견이 발생하기도 했고, 정말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고 좁혀나갔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 결혼식의 청사진이 윤곽을 나타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