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게 뭐 어때서?
그간 봐왔던 많은 결혼식을 곱씹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식의 모습에 대해 고민을 하다보니, 문득 이런 건 어떻게(how) 결혼식을 할 것인가 밖에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결혼이 가족이 된다는 의미라면 혼인신고하고 살림을 합치고 서로의 가족에게 인사하면 그만인데, '결혼식'이라는 절차는 도대체 왜 있는걸까? 심지어 주변을 살펴보면 결혼식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지기 전까지는 혼인신고도 안 하는 커플이 태반인데... 시간과 돈과 노력을 들여가며, 가끔은 싸움까지 유발하는 결혼식을 왜 하려고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싶었다.
결혼식을 하려는 이유가 명확해지면, 그 방식도 명확해질 것이고, 중간에 방식에 대해 이견이 생기더라도 미리 생각해둔 '이유'에 조금 더 부합하는 쪽으로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며, 우리는 다시 고민을 시작했다. (신랑이 "직업병이 도졌다고 쯧쯧쯧" 거렸고, 나는 "어쨌든 생각해보면 좋잖아!"라고 버럭했으니, 우리라기보다는 내가 강요했다에 가깝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대체 우리 결혼식은 왜(why) 하는거야?
결혼식이 어떤 자리였으면 하는거야?
#1. 우리 정말 잘 살겠다고 선언하는 자리이다.
이건 굳이 결혼식이 아니어도 가능한 것 같다. 패스.
#2. 우리 두 사람이 서로의 친지 및 지인에게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소개하는 자리이다.
보통 결혼식을 겪어본 커플이 어른들의 간섭에 힘들어하며, '도대체 이건 누구의 결혼식이냐'라고 말하는데, 대개 '이건 우리의 결혼식이다'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마도 우리 손님에게 서로를 소개하는 자리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그런데 정말 결혼식이 우리만을 위한 자리일까?
#3. 우리 부모님도 내 자녀 이렇게 잘 키웠다고 자랑하고, 칭찬받는 자리이다.
갓난아이였을 때부터, 한창 친구들을 만들며 천방지축 뛰어다니던 시절, 반항기 넘치는 사춘기 시절을 거쳐, 어느새 대학생이되고,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자그마치 30년 넘게 우리 옆에서 부모라는 버팀목이 되어주신 분들이다. 몸과 마음 건강하게 키운 내 자녀가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자와 가족을 이루려고 하는 상황이 부모 입장에서 벅차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 아닐까? 부모님의 노고는 분명히 자랑하고,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4. 우리의 지인들을 부모님께 소개해드리며, 제가 이렇게 잘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는 자리이다.
사실 이건 결혼식 전은 아니고, 이후에 부모님이 "그래도 이제 네 사회생활은 걱정 안 한다"라고 하신 말을 듣고 좀 더 생각하게 된 내용이다. 부모님은 성인이 된 자녀가 집 밖에서 어떤 모습으로 사회생활을 하는지 알기가 어렵겠구나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집에서 워낙 미주알고주알 한시도 멈추지 않고 말을 많이 하다보니까, 부모님은 '얘가 오히려 밖에 나가서 자기밖에 모르고, 눈치도 없다고 욕먹고 다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결혼식 때 부모님 바로 옆에서 내 하객들을 맞이했던 모습과, 내 하객을 부모님께 소개하는 과정을 보시고 나서야 꽤 안심이 되셨던 모양이다.
바로 위의 두 가지가 부모님의 손님과 내 손님을 나누어 받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부모님이 잘 키운 자녀 자랑을 하시려면 자랑할 대상이 옆에 있어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나도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내 손님을 소개해드리고 '나 이렇게 잘 크고 있어요'라고 안심시켜드리려면 같은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5. 더불어 '소개'와 '자랑'을 받으러 기꺼이 결혼식에 참석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결혼식이 필요한 선행적 이유로 보긴 어렵지만, 완성도 측면에서 하객도 결혼식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하객에 대한 편의를 고민하고, 하객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느끼지 않도록 소통을 절대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고민을 마친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부모님도 하객도 결혼식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우리와 부모님 그리고 하객이
서로 '소개'하고, '자랑'하고, '감사'함을 주고받는 자리이다.
막상 결론을 내보니 결혼식은 '결혼' 자체를 축하하는 것보다, 기왕 결혼했으니 이 기회로 그간 못했던 '표현'들을 하는 자리를 만드는데 더 의의가 있어보였다. 다시 말해, 결혼식을 그냥 우리 두 사람이 축하받는 자리로만 생각한다면 사실 '결혼식'이라는 걸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렇다. 결혼식은 체면 차리기가 맞았다.
근데 그게 뭐 어때서?
체면(體面)을 한자말로 풀어보면 몸(體)과 얼굴(面)이고, 사전을 찾아보니 '남을 대하기에 떳떳한 도리나 얼굴'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체면은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의 모습'을 의미한다. 그런데 '안', 즉 내면의 반대말처럼 느껴져서인지, 이 단어는 주로 부정적인 표현을 할 때 자주 쓰인다. 그런데 사실 겉모습이라는 건 내면을 어느 정도 포함할 수밖에 없다. 동화 속 팥쥐나 놀부를 표현할 때 '심술 가득한 얼굴'이라고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아무리 감추려해도 내면은 어느 정도 겉모습, 체면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체면관리는 문명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옵션이 아니라 필수다. 없는 체면을 만들자는 건 아니다. 그거야말로 체면치레니까.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겉과 속을 잘 가꾸는 체면관리가 한 번쯤은 필요하다는 거다.
우리는 모두 인생을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과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관계를 맺는다. 나의 인연들, 신랑의 인연들, 양가 부모님의 인연들, 이 수많은 인연들과 한날한시에 만나 인사와 안부를 나누고 내 인연이 네 인연으로 넓어지는, 서로의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가 살면서 얼마나 많이 올까? 기왕하는 결혼이라면, 결혼식으로 이런 자리를 만들 수 있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개', '자랑' 그리고 '감사'의 공통점은,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를 나눌 때 그 의미와 행복이 배가되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결혼식이 필요한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