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신부 입장에 대한 대안 찾기
결혼식을 통틀어 모든 하객들이 숨죽여 가장 집중하는 순서가 하나 있다. 바로, 신랑신부 입장.
신랑신부의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 담기 위해 손을 높게 뻗기도 하고, 신랑신부가 어떤 사람일지 궁금한 마음에 많은 사람들이 미어캣 마냥 고개를 한껏 꼿꼿이 세운다.
우리의 입장을 고민하기 전에, 그동안 하객으로 경험한 수많은 결혼식의 신랑신부 행진을 떠올려봤다. 일단 신랑은 위풍당당하게 혼자 입장한다. 뒤이어 신부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입장하고, 결국엔 아버지는 딸의 손을 신랑의 손에 건넨다.
나는 지난 10여년간 참석한 많은 결혼식에서 이 모습을 볼 때마다 매번 신부가 팔려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왜 다들 이 방법을 고수하는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신부도 단독으로 입장하거나 신랑신부가 함께 입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는 하는데, 아직 실제로 보지는 못했어요)
사실 이런 방식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생각했던 지난 역사의 잔재물이라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는 물론이거니와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은 경제적인 거래 개념에 가까웠다고 한다. (거봐 팔려가는 거 맞네...) 아버지는 자신의 소유물인 딸을 정치경제적 협력이 필요한 집안의 아들에게 결혼시키면서, 딸에게 재산을 물려준다. 하지만 정작 물려받은 그 재산은 딸의 것이 아니라, 결혼한 아들 집안의 재산으로 귀속되었다고 한다. 즉, 결혼을 빙자한 비즈니스인 셈이다.
'아내의 역사'라는 책을 보니, 놀랍게도 여성이 물려받은 재산과 직접 버는 수입의 소유권을 인정받은 게 겨우 19세기 후반이고, 참정권은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야 인정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쟁터에 나간 남성들의 빈자리를 여성들이 채우기 시작했고, 그 비중이 과거 독립전쟁이나 프랑스혁명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높아지면서 어쩔 수 없이(?) 여성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배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덕분에 1960년대 미국에서 일하는 기혼여성이 30%, 90년대 중반에는 60%를 넘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아내의 역사 책은 이제 절판이라 중고로 구해야 한다)
이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었던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는 이야기이다. 얼핏보면 감동적인 장면으로 보이는 이 신부 입장 방식은 더 이상 이어나갈 필요가 전혀 없다. 아니, 이어가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너희는 어떻게 입장했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각자 서로의 부모님과 함께 입장했다.
우리 부부가 결혼식을 치르기로 한 가장 큰 이유가 '체면치레', 즉 부모님의 손님들분들께 아들딸 자랑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거였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신 분들은 https://brunch.co.kr/@nalzzi/59 를 읽어보시라.) 자랑을 하려면 옆에 아들딸이 옆에 있어야 하고, 결혼식에서 가장 하객들이 집중하는 순서인 신랑신부 입장이 제대로 자랑을 할 최적의 기회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이건 부가적이긴 한데, 개인적으로 신랑 아버지가 하객 앞에 제대로 나설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일반적인 예식을 생각해보면, 양가 어머님이 화촉점화를 위해 하객들 앞에 나서고, 신부 아버지는 신부와 함께 입장한다. 그 가운데 신랑 아버지가 나설 곳은 어디에도 없다. 요즘에는 주례 대신 축사를 신랑 아버지가 하시는 경우를 종종 봤는데, 아마도 같은 안타까움에 만들어진 순서가 아닐까 싶다.
이런 우리의 생각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양가 부모님 모두 흔쾌히 공감해주셨다. 심지어 은근히 좋아하시는 눈치였다. 그렇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함께 입장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났다.
개인적으로 입장 음악이 꽤 고민이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은 힘차고 당찬 음악을, 신부 입장곡으로는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음악을 많이 선정한다. 신랑을 수줍음을 많이 타는지라 무난한 음악을 선택했는데, 나는 왠지 가족이 함께하는 결혼식이라는 걸 잘 보여주고 싶어 '아기상어'를 선택했다. "아기상어 뚜루루뚜루, 엄마상어 뚜루루뚜루, 아빠상어 뚜루루뚜루" 이것만큼 직관적인 가사가 또 없었다. 좀 장난같이 보이지는 않을까 해서 부모님께 은근슬쩍 말씀드려봤는데, 우리보다 더 즐거워하셨던 부모님. 실제 예식 때는 엄숙한 음악이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동요가 나오니까 순간 결혼식장이 웃음바다가 됐었다. 그게 또 즐거우셨는지, 아빠는 내 옆에서 더 신이나 연신 하객분들께 브이(V)를 날리며 입장했다.
정작 골치는 다른 데서 아팠는데, 부모님과 함께 입장하기로 결정하니, 화촉점화가 문제였다. 사실 나는 화촉점화가 굳이 필요한지 모르겠어서 생략하자고도 했지만, 그래도 했으면 하는 부모님의 눈치가 있어서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랑신부의 앞날을 밝게 비추어주고, 빨갛고 파란 초는 세상의 이치인 음양을 의미해서 부부의 건강한 결합과 균형을 의미한다고 한다. (사실 아직도 잘은 이해가 안 가지만 부모님께는 매우 중요한 의미일 수 있으니 존중하기로 했다)
결국 신랑신부 입장 이후, 우리는 단상 뒤로 이동하고, 두 아버님은 자리에 착석, 두 어머님만 앞으로 나와 화촉점화를 하는 순서로 수정하기로 했다. 졸지에 신랑신부와 양가 어머님이 마주한 채로 화촉점화를 하는 모양새가 되어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부모님이 신랑신부의 앞날을 축하하기 위한 퍼포먼스라고 생각하니 신랑신부가 바로 앞에 있는편이 더 의미를 살리는 것 같았다.
벌써 결혼식을 한 지 3년이 다 되어가는데, 결혼식을 찾아왔던 지인들은 아직도 신랑신부 행진이 기억난다며, 아버님은 잘 지내시냐고 안부를 묻곤 한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우리 부모님의 지인들도 같은 이야기를 하시지 않을까? 그 결혼식 참 재미있었다며, 아들딸 잘 지내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