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보면서 일합니다 2
이 글은 2020년 9월, 2주간 주문진으로 원격근무를 다녀왔을 때 끄적였던 기록의 모음입니다.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날씨 흐림 비가 오락가락함
캐리어에 짐 싸기
9시반 택시 호출
10시반 라면 먹기
11시 버스 출발
1시 평창 등 3곳의 지역 버스정류장 경유하기 시작 (휴게소 안 들름)
2시 주문진 도착
2시반 택시 타고 숙소 도착
3시 재택 중 먹을 찬거리 사러 시내로
열흘 전부터 고민하던 원격근무를 해보려고 주문진에 왔다.
사실 나는 고민을 길게 하지 않고 일단 실행하고 보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숙소 찾는데만 열흘씩(?)이나 걸렸다.
완벽한 바다뷰를 찾아서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 같을 줄 알았던 재택은 금방 다시 시작되었고, 업무하기에 매우 부적합한 공간인 방구석에서 갇혔다. 그렇게 답답한 벽뷰에 극단적으로 예민해있던 감정상태를 어르고 달래주기 위해,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 고개만 돌려도 바다고 보이는 그런 ‘완벽한 바다뷰’가 있는 숙소가 아니면 안 됐기 때문이다.
강릉/주문진/속초/부산 지역은 크게 상관없었다. 에어비앤비, 인스타그램, 구글, 한달살기 앱 등 몇 날 며칠 이 잡듯 뒤졌고, 각 지역마다 매력적인 숙소를 여럿 찾았는데, 그중에서도 찐 바다뷰를 발견했다!
2주를 먼저 머물고 마음에 들면 추가로 예약하겠다고 말씀드리고 하루에 5만원으로 가격 조정까지 마쳤다. 완벽하다.
아! 아직 하나 남았다.
회사에 알리기
나는 아무리 전면 재택이라도 자택이 아닌 다른 곳에서, 특히 근무지에서 2시간 이상 떨어진 곳으로 이동해 상주하는 경우라면 회사에 알리고 양해를 구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회사에서는 필요 시 직원에게 언제든 출근 요청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면 출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최소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반나절 안에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앞서 바다가 있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는 했지만, 나는 처음부터 제주도는 옵션에서 제외했었다.
사실 이직을 한 지 3달 밖에 안된 상태라 조심스럽긴 했지만 다행히 현재 팀장님이 이전 직정에서 허물없이 지냈던 동료여서 그나마 수월했다. (뭐 물론 다른 곳이었어도 시간의 문제지 결국엔 원격근무를 어떻게든 하긴 했을 거다)
동네 마실
첫날은 깔끔하게 휴가를 내고 동네를 알아보려고 좀 걸어다녔다.
재택 중에 챙겨 먹을 찬거리를 사러 주문진 시장에 나갔는데, 서울의 재래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반찬가게를 찾아볼 수가 없다. 사실 “여기가 시장이 있던 자리구나”라는 것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시장 자체가 휑하다.
아무리 관광객이 없는 평일 낮이라지만, 주문진도 사람 사는 곳인데 재래시장에 현지 주민들을 위해 장이 열리기는 하는 건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무것도 없다. 시장이라면 꼭 있는 주전부리 맛집도 하나 없이.
수산시장 쪽은 안 돌아봤는데 주말에 다시 가봐야겠다. 일단은 내일모레까지는 꼼짝없이 숙소에서 일을 해야 할 테니 넉넉한 식량과 커피 원액을 준비한다. 동네 마트지만 배달도 해주신다고 한다. 차가 없어 택시를 불러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이다.
간단히 커피 한잔을 들고 해안길을 따라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평온하다.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 바다에, 문만 열어도 들릴 파도소리에 업무마저 즐거워질 거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