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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찌 Jun 29. 2022

원하지 않는 관심은 사양합니다

수영장 인싸와 아싸

한 달 정도 자유수영을 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점을 찾았는데, 바로 '명상효과'이다. 수영을 시작하면 음파음파 숨소리, 물살을 가르는 소리와 마치 백색소음 같은 수영장 특유의 울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데, 이렇게 몇 바퀴고 계속 돌다 보면 자연스레 명상하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이런 기분을 위해서라면 앞으로 계속 수영장의 자발적 아싸(아웃사이더의 약자로 뜻은 '혼자 노는 사람', 즉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의 의미로 쓴다)가 되어도 좋겠다 싶었다.


혹시나 사람이 적은 점심시간에 가면 사람이 별로 없으니 더 조용하게 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야무진 꿈을 꾸고 오랜만에 오후 휴가를 내어 느긋하게 수영을 다녀오기로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 인싸(인사이더의 약자다. 자신이 소속된 무리 내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일컫는 콩글리시 표현이다)에게 잘못 걸리면 되려 더 피곤하다는 걸.



scene #1 준비운동


수영을 할 때는 준비운동이 매우 중요한데 자유수영을 하면 수영장 밖이나 안에서 준비운동을 하기가 매우 민망하다 보니 나는 보통 본격적인 수영을 하기 전에 가볍게 킥판을 잡고 발차기로 warm-up을 한다. 몇 바퀴를  돌아 자유형, 평영 발차기로 몸을 풀고 '자 이제 수영을 시작해볼까'하면서 어깨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


- 인싸 : "아가씨 수영한 지 얼마나 됐어?"

- 나 : '음? 나한테 하는 말인가?'
        두 눈을 꿈뻑이며 양 옆을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네 나구나'

        "어... 음... (다시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간단히 대답하고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바로 자유형을 시작했다.



scene #2 자유형 5바퀴 돈 뒤 레인 끝


적당히 예열된 상태로 자유형 5바퀴를 연달아 돌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또 들려오는 목소리.


- 인싸 : "아가씨 잘하네~ 왜 거짓말했어~"

- 나 : '음... 전 수영을 잘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만?'

        "아... 수영 안 한지 거의 20년이 넘어서 잘 못하는 거 맞아요"

        계획한 최저 심박수 밑으로 떨어질까 초조해하며 출발자세를 잡는다.


아주머니가 다시 말을 걸기 전에 다급히 출발해 평영을 시작했다. 사실 중간에 한 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는데 여기서 멈추면 아주머니가 또 말을 걸겠지 싶어 억지로 쉬지 않고 5바퀴를 돌았다.



scene #3 평형 5바퀴 돈 뒤 레인 끝


헉헉 대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어느새 내 옆에 와있는 아주머니. (도대체 어느새)


- 인싸 : "아가씨 자세가 너무 예쁘다 예뻐~"

- 나 : "아 예... 감사합니다" (어색한 웃음)

- 인싸 : "얼른 먼저 가~"

- 나 : "(앗... 쉬고 싶은데...) 하하하 네네"


그렇게 가쁜 숨을 부여잡고 이번엔 배영 5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아주머니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가장 힘들어하는 배영을 단숨에 돌았으니 기적이 아닐 수 없었다. 평소보다 훨씬 빨리 목표한 15바퀴를 다 돌았다. 역시 사람은 궁지에 몰려야 실력이 느는 건가.



scene #4 접영 연습 (1)


이제 목표한 바퀴수를 모두 채우고, 접영 발차기 연습을 할 차례. 그리고 어김없이 들리는 목소리.


- 인싸 : "아가씨 자세가 왜 이렇게 예뻐? 근데~ 접영은 안 배웠어?"

- 나 : "어... 어릴 때 배웠었는데 너무 오래간만이라 연습 중이에요"

        '아놬 난 이 와중에 또 뭘 이렇게 친절히 대답하고 있는 거냐...'

- 인싸 : "그럼 지금처럼 사람 없을 때 연습해~ 지금 해봐 봐~"

- 나 : '마침 연습하려고 한 건 맞는데, 뭔가 시켜서 하는 것 같은 이 느낌 찝찌입하구만'



scene #5 접영 연습 (1)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엄청 부담이 됐다. 분명 접영 연습하는 걸 유심히 보고 한 마디 할 텐데... 그래도 어차피 하려고 했으니까 그냥 평소처럼 출수킥 타이밍 연습을 하면서 한 팔 접영으로 반대편 레인으로 갔다. 어느새 따라오신 아주머니... (이 정도면 공포영화...)


- 인싸 : "어머~ 잘하네~ 근데 양팔 접영은 안 배웠어?"

- 나 : "(하... 제발...) 힘이 딸려서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팔부터 연습하고 있어요."

- 인싸 : "아직 젊은데 무슨 힘이 딸려~"

- 나 : "... 하하하"

        '젊어도 스킬이 부족하면 힘 딸리는 건 똑같은데... 너무 신경 쓰지 말자 x 10'


한 팔, 양팔 번갈아가며 감을 잡아가고 있는데 이제는 아예 멀리에서부터 10년 지기 친구처럼 불러재끼신다.


- 인싸 : "너무 이쁘다~ 근데 엉덩이가 조금 더 나오면 되겠다~ 나는 허리가 아파서 접영은 못하는데 다른 아줌마들 하는 거 보니까 엉덩이가 좀 나오더라고~"


드디어 훈수 멘트가 등장했다. 훈수 멘트를 날리실 때 인싸의 세상 행복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이 말씀을 하시려고 지금까지 그 길고 긴 빌드업을 하신 건가 봐. 세상에.




물론 친목을 통해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공간, 새로운 운동을 낯설 하는 사람들에게 선뜻 다가와 말을 거는 인싸는 고마운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무리를 지어 운동하길 즐겨하는 건 아니라는 걸 제발 알아줬으면 좋겠다. 뭐 나도 문득 누군가와 함께하는 수영이 하고 싶어지는 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었다.


혼자만의 수영을 즐기고 싶어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둬 주세요.



2022년 4월 25일 (월요일)

오늘의 수영

총 시간 : 37분 06초
거리 : 900M (20M * 45랩)
인싸 피해 도망치듯 수영한 결과 - 인싸의 순기능(?)


Photo by Joshua Hoehn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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