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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Jul 13. 2024

감이 주렁주렁 열린 카페에서

달콤한 창작의 공간 완결

건물 내부에 감나무 한그루가 있는  아름다운 카페에 간 적이 있어요. 한옥이었는데 아마 마당이었던 공간 전체가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배치된 거 같아요. 그 카페에는 많은 자리가 있지만  사람들이 가장 앉고 싶은 자리는 그 감나무 바로 옆자리입니다.


감나무 가지가 테이블 위로 드리워져있어 늦은 봄에는 감꽃이 툭, 찻잔 안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지금처럼 무더위가 지속될 때는 커피를 마시다가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다보면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초록감을 볼 수 있습니다.


삶에 지쳐 어깨가 아래로 아래로 축 처지던 어느 가을날 우연히 이 카페를 지나게 되었어요. 무엇에 이끌리듯 안으로 들어간 저는 주렁주렁 열린 감이 달린 감나무가 손님으로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정다우면서도 이색적인 이 공간에 매료되었습니다.


감이 주렁주렁 열린 카페에서 글을 쓰는 저자, 2019년 가을




커피 한 잔과 스콘 하나를 주문하고 자리가 나길 기다리던 그 순간 기적처럼 감나무 테이블의 손님이 일어납니다.


저는 운명처럼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래된 마당에서 싸리나무 가지를 엮어만든 빗자루로 비질을 하는 소리, 빗방울이 감나무 이파리에 떨어지는 소리, 고요한 달밤에 감이 달빛에 익어가는 소리……이런 소리가 생생하게 들리는 듯 느껴졌어요. 감나무의 이야기, 감나무가 살아온 수많은 경험 말입니다. 맘이 잘 통하는 친구는 몇 년 만에 만나도 편안하고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 담고 있는 이야기를 읽어내듯이 그 카페의 감나무가 그렇게 여겨졌습니다. 신기한 경험입니다.


그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라는 누군가가 저에게 애착 노트북이라고 부르는 저의 노트북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저의 생각과 감정을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글을 쓸수록 무언가 자유롭고 깊고 안온한 분위기가 감이 익어가는 카페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어요. 삶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도 샘솟았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않도록 빠르게 적고 나니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고 비로소 평온한 마음이 찾아옵니다.


숨을 내 쉬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연인들,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들, 수다 삼매경인 아주머니들, 혼자서 멍 때리거나 책을 보는 사람, 노트북으로 화상회의 하는 사람 등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커피와 갓 구운 빵을 함께 즐기며 이 공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너 자신을 돌보라’는 마음의 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에는 이 카페의 감나무가 유독 생각납니다. 지붕 밖 마당에 살다가 카페 안에 살게 된 그 감나무는 지금도 비 내리고 달빛 쏟아지던 마당을 가슴에 품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초록 감들을 키우며 잘 살고 있을까요? 궁금한 여름입니다.

무럭무럭 자라는 감 2024..7.11



2024년 4월 1일에 주 2회 연재를 시작한 <달콤한 창작의 공간>은 2024 7월 13일 30화로 마무리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과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꼬박꼬박 마감시간에 맞춰 연재한 제 자신에게 토닥토닥해 주는 밤입니다.


새로운 연재로 뵙겠습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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