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트리드 린드그렌과 크로커스
용감한 너에게
남효정
캄캄한 밤은
차갑고 두려워요
덜컹거리는 창문 뒤에
괴물이 숨어 나를 보네요
괜찮아 아들아
너는 용감한 아이란다
아침이 올 때까지
너는 한 번도
괴물에게 진 적이 없잖니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지는 꿈을 꾸고
슬픔의 바위에 눌린 체
소리 없이 울곤 해요
괜찮아 아들아
저기 하얗게 쌓인 눈을 보렴
저 눈은 어떻게 될까?
햇살에 녹아서 사라지지요
그때 내 마음도 눈물을 흘려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는 울지 않아요
봄이 올 때마다 그 작은 손을 잡고
너와 함께 보고 싶었단다
향그러운 이 꽃을.
크로커스가 활짝 피어나면
나도 기분이 좋아요
들판을 겅중겅중 뛰어요
까만 양처럼
아들아 생각해 보렴
꽃은 나중에 어떻게 될까?
향긋한 향기는 어디로 갈까?
꽃은 어느새 지고
향기는 공중으로 흩어질 때
꽃 진 자리마다 씨가 생겨요
그래 아들아
꽃이 지면 슬픔이 밀려오지만
씨앗을 보면서 봄날의 희망을
꿈꾸며 웃게 된단다
이 세상에 사는 괴물들이
두려워 나는 자꾸만 숨어요
괴물이 달려와
나를 잡아먹을 거예요
너는 용감한 아이야
버티고 서서 싸워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있단다
마음의 목소리를 들어
그러면 용기가 솟을 거야
가슴이 하는 말을 들어라
너를 가두는 새장에서 나오렴
네 안에는 씨앗이 있어
흙과 물과 태양이 만나
마침내 싹틀 거대한 나무
어쩌면 찬란한 꽃
용감한 너와 함께
이 향기로운 꽃을 보는 오늘을
꼭 기억해 주렴
언젠가 엄마가 눈처럼 녹아도
해마다 엄마는 이 꽃으로
다시 올 거야
엄마 나는 도망가지 않을게요
갇히지도 않을게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동생 손을 잡고 갈게요
친구 손을 잡고 갈게요
언 땅을 밀고 솟아나는
이 꽃의 새싹처럼요
이번 시는 <삐삐 롱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 등을 쓴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쓰다 보니 저와 제 아이의 말도 함께 버무려져 긴 시가 되었네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글은 정말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어요^^
크로커스는 스웨덴의 봄에 생명력이 가득한 모습으로 피어나는 야생화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구근을 구할 수 있네요^^ 올봄에 키워보고 싶습니다. 크로커스의 생명력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삶과 닮아 제가 임의로 둘을 연결하여 썼음을 밝힙니다.
너무나 추운 날 화사하고 향기로운 꽃에 대한 이야기, 멋진 작가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2025.2.5.10:41 겨울밤 손을 호호 불며
#아스트리드 린드그랜 #크로커스 #스웨덴 #야생화 #삐삐 롱스타킹 #사자왕 형제의 모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