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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인생의 잔을 높이 들어요

카모마일

by 남효정

그대 인생의 잔을 높이 들어요


남효정


그대 괜찮은가요

어떤 날은

달구어진 자갈밭을

맨발로 걸어가네요


뜨거운 줄도 모르고

무엇을 향하여

그대는 그리 바쁜가요


생각해 봐요

신이 슬픔과 그리움을

각각 다른 종이에 싸서

그 작은 손에 쥐어 주셨다면

그대는 슬픔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왔을까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처럼

신은 슬픔과 그리움을 고밀도로

섞어서 나의 컵에 담아 주었기에

나는 작은 숟가락을 들어

한 숟가락씩 떠먹으며

내 길을 걸어갑니다


길에는 작은 꽃이 피어요

가끔 바람도 불고

햇살도 비추지요


비바람이 치는 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날도

나는 묵묵히 갑니다


나는 이제

제법 잘 걸어요

비옷을 입고

장갑을 끼고

장화도 신었어요


달콤 쌉싸름한

나의 인생에 축배를

한송이 붉은 장미를


떫고 신 나의 인생이

향기롭게 익어 갈 때,

나를 위해

당심을 위해

맑고 찬 와인을 높이 들어요


꽃잎이 날리고 바람이 불고

햇살이 비치고 물결이 반짝여요

그대 인생의 잔을 높이 들어요


해 질 녘 호숫가의 겨울 오리처럼

그대 호수 위에 한바탕 멋진 물질로

신나는 하루 물결처럼 펼쳐질 때

작고 위대한 하루

또 하루를 위해

그대 인생의 잔을 높이 들어요


카모마일 한 다발

꽂아 놓은 창가에

나의 오늘이

햇살처럼 쏟아집니다

꽃집앞에 내 놓은 카모마일 2025년 1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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