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내 동화
오늘은 그림책으로 작업할 저의 동화 <찌걱찌걱 아빠장화>의 내용을 들려드릴까 합니다. 아빠 장화의 내용에 걸맞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매우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찌걱찌걱 아빠장화 1을 읽어 보면 이 동화의 숨겨진 이야기를 아실 수 있습니다. 원문을 그대로 적어봅니다.
남효정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입니다.
모두들 아직 남은 잠을 자느라 사방은 조용합니다.
그때 부스스 일어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 아빠 나오시겠네."
댓돌 위의 커다란 까만 장화가 말했습니다.
"찌걱아, 안녕?"
"달 아줌마 나오셨어요?"
"어린것이 고생하는구나. 오늘은 무척 더울 텐데... 저수지 언덕 위엔 벌써 물안개가 뿌옇단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대답 대신 방긋 웃었어요.
키가 큰 아빠는 마루에 걸터앉아 장화를 신으며 크게 하품을 합니다.
커다란 아빠 장화는 성큼성큼 걸어 외양간으로 갑니다. 일찍 일어난 송아지가 음매음매 울어대는 걸 보니 배가 무척 고픈 모양입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가 다가가자 송아지는 울음을 뚝 그칩니다. 송아지는 눈으로 싱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안녕? 오늘은 어디로 가니?"
"저수지 언덕"
"나는 칡넝쿨이 제일 맛있더라."
"걱정 마. 저수지 언덕엔 칡넝쿨이 무성하게 엉켜 있어."
"그래? 억새도 있어?"
"억새는 할아버지 산소 옆에 있어."
"그럼... 쑥은 있니?"
"응. 향긋한 쑥이 많아."
"찌걱아, 잘 다녀와. 맛있는 풀도 많이 해오고 알았지?"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마당에서 지게를 메는 아빠를 기다렸다가 저수지 둑으로 난 오솔길로 걸어갑니다.
길섶 풀밭엔 이슬이 촉촉이 내렸습니다. 장화의 얼굴에 아침 이슬이 떨어졌습니다.
'아이 차가워.'
그래도 기분은 아주 좋습니다.
논과 밭엔 부지런한 아저씨, 아주머니가 나와 배추, 무, 벼들을 살펴줍니다.
아빠는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인사하며 저수지 둑으로 갑니다. 허허허 웃음소리가 새벽하늘에 울려 퍼집니다.
지게를 벗어 세워 놓고 아빠는 열심히 칡넝쿨도 걷고, 쑥도 벱니다. 아빠 장화는 무성하게 자란 쑥대 사이에서 누가 끙끙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거기 누구니?"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돌아서려는데 또 누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냅니다. 굵은 쑥대 사이에 잠자리가 걸려 있었습니다.
"어? 날개가 거미줄에 걸렸구나. 저런...... 잠깐 기다려. 내가 걷어 줄게."
아빠 장화는 이슬 맺힌 거미줄을 걷어주었습니다.
"어서 다른 곳으로 날아가."
잠자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고마워. 하지만 지금은 날 수가 없어. 날개가 이슬에 흠씬 젖어버렸는걸......"
아빠 장화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러고 있다가는 잠자리가 풀과 함께 소먹이가 될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빠 장화는 눈을 크게 뜨고 잠자리를 바라보았습니다.
"좋은 수가 있어. 해가 돋아 날개가 마를 때까지 내가 안아 줄게."
잠자리는 날개를 접고서 장화에 기대니 꼭 엄마 품에 안긴 기분이었습니다.
"잠자리야. 꼭 잡아, 송아지가 기다리겠다."
아빠 장화는 아까보다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서둘러 집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아빠의 발이 뜨거워지고 땀이 흘러 장화에 고였습니다. 아빠 장화는 찌걱찌걱 노래하며 걸어갑니다.
"안녕? 찌걱찌걱 아빠 장화야."
집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에 질경이가 눈을 가늘게 뜨고 인사했습니다.
"날마다 내가 밟고 다니는데도 너는 참 잘 자라는구나."
"그래. 네가 밟아도 나는 얼른 다시 일어나거든. 그냥 누워 있다간 말라비틀어져 버려. 넘어진 그 순간에 힘을 내서 일어나야 해. 어? 잠자리도 함께 왔구나."
잠자리는 아빠 장화 위에서 날개를 조금 움직였습니다.
해님이 살며시 떠오르자 논밭의 곡식들과 풀밭의 풀들은 우- 함성을 지으며 해님에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빠 장화는 더 크게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걸어갑니다.
늦잠꾸러기 오동나무와 풀벌레들이 그제야 눈을 비비며 일어납니다.
집에 다 왔을 때 아빠 장화는 외양간 옆에 노오란 민들레가 피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소똥을 한 덩이나 머리에 뒤집어쓰고도 용케 그 위로 줄기를 내밀고 예쁜 꽃 한 송이를 피운 것입니다.
"민들레야, 안녕? 지금 일어났니?"
"아니, 너 나갈 때 일어났었어. 잠자리는 어디 아프니?"
"날개가 젖어서 날 수가 없어."
민들레는 얼굴을 찌푸렸어요.
"어디? 지금은 다 말랐는 걸!"
아빠 장화도 그제야 잠자리를 자세히 쳐다봤습니다. 잠자리는 날개를 팔락여 보았습니다. 바스락 소리가 날 만큼은 아니지만 날개는 다 말랐습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잠자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침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아빠 장화는 외양간에 가서 송아지와 어미 소가 저수지 언덕의 풀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휴-'하고 마음을 놓았습니다.
아빠 장화는 샘터로 갔습니다. 아빠의 큰 손이 아빠 발에서 장화를 벗겨 거꾸로 들었습니다.
'주루루룩-죽'
장화 속에서 아빠의 땀이 한참을 흘러나왔습니다.
차가운 샘물로 목욕을 한 아빠 장화는 댓돌에 거꾸로 기대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목덜미를 간질이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왔습니다.
아빠 장화는 졸음이 밀려왔습니다.
"아 잘 먹었다."
우리 아빠 목소리가 들립니다. 아빠 장화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깼습니다. 아침을 먹고 난 아빠는 논으로 갑니다.
논에는 모들이 장화 키보다 높게 자랐습니다. 질척한 흙들이 아빠 장화를 잡아당깁니다. 한 걸음 걷기가 무척 힘듭니다. 발을 빼려고 잔뜩 힘을 주고 있는데 거머리란 놈이 아빠 장화에 달라붙습니다.
"에이, 퉤! 맛없어."
거머리는 금세 떨어집니다.
아빠 장화는 깔깔 웃으며 거머리를 따라갑니다.
"우리 아빠 발을 물으려고? 어디 물어봐?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을껄!"
거머리는 계속 침을 뱉으며 저쪽으로 도망갑니다.
논에서 돌아온 아빠는 양파밭으로 가서 동그란 공 모양의 꽃이 핀 양파를 뽑아냅니다.
아빠 장화는 마늘처럼 매운 냄새가 나는 양파가 참 좋습니다. 동글동글 자라는 양파뿌리도 참 좋습니다. 아빠 장화가 다시 외양간에 가는 시간은 해 질 녘입니다.
처음에 소똥을 밟았을 때는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수하게 느껴집니다. 차가운 샘물에 몸을 씻고 나니 개운합니다. 힘든 하루 일을 마친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댓돌 위에 기대어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오늘은 아빠가 결혼식에 가셨습니다. 아빠 장화는 하루종일 댓돌에 기대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갔다 온 식이가 아빠 장화를 신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디로 가는 걸까?'
아빠 장화는 조그만 발이 움직일 때마다 쓰러질 것처럼 흔들렸지만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질질 바닥에 끌리며 도착한 곳은 시냇가였습니다. 식이는 아빠 장화에 시냇물을 반쯤 넣고 모래랑 돌멩이, 물풀도 넣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갈돌을 하나하나 들추어 가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식이는 가재를 잡을 때마다 '야호! 잡았다'하며 시냇가에 자갈로 사방을 막아 만든 임시 어항에 그것을 넣어두었습니다. 가재들은 그것도 모르고 좁은 시냇물 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헤엄을 쳤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던 아빠 장화는 히죽히죽 웃음이 났습니다.
식이가 열 마리나 되는 가재를 아빠 장화 속에 넣어주었습니다. 가재들이 집게로 장화 속을 긁고 자잘한 발로 살살 기어 다니는 통에 아빠 장화는 간지러워서 혼이 났습니다. 그날 저녁 아빠 장화는 댓돌에 기대지 않고 바르게 서서 밤새 가재들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날마다 바쁘고 재미있게 지낸 아빠 장화는 이제 여기저기 갈라지고 빛깔도 흐릿하게 변했습니다. 장화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컴컴한 헛간에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뒹굴던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이 빠진 낫, 구멍 난 고무 대야, 자루 부러진 호미들 말입니다.
'나도 언제 저 헛간으로 쫓겨갈지 몰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심심하게 앉아 있는 친구들을 생각만 해도 아빠 장화는 시무룩해졌습니다. 특히 밑 빠진 절구통의 말이 가슴에 또렷하게 남아 아빠 장화를 괴롭혔습니다.
"겁내지 마. 너도 곧 헛간 신세 지게 될 텐데 얼굴이나 익혀두자고... 시간이 지나면 모두 쓸모 없어지지. 뭐든 다 그래."
아빠 장화는 가슴이 꽁닥꽁닥 뛰었습니다.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누가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깜짝깜짝 놀라곤 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빠는 새 장화를 신고 논에 나가십니다. 또 찌걱찌걱 아빠 장화를 '물이 새는 장화'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
아빠 장화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습니다. 그때 전깃줄 위에 앉아 있던 참새가 포르르 날아와 말을 걸었습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야, 너무 걱정하지 마. 아빠가 널 쉽게 버리지는 않을 거야. 발이 편하다고 늘 네 칭찬만 하던 거 너도 기억하지?"
장화는 작은 목소리로 '응'하고 대답했지만 마음속으로 더욱 조바심이 났습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새 장화를 신은 아빠가 커다란 무쇠 가위를 들고 다가왔습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그만 눈을 꼭 감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입니다.
까치들이 감나무 잎새 사이에 삐죽 얼굴을 내밀고 크게 노래합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그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오랫동안 잠을 잤나 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몸이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장화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우와! 멋진데. 언제 이렇게 변했어?"
어제 아빠 장화를 걱정하던 참새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습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자기가 슬리퍼모양으로 잘라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내가 슬리퍼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아이 가벼워! 참새야, 나도 날 수 있을 것 같아."
장화는 자꾸만 자기를 둘러보았습니다. 꼭 다시 태어난 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저녁밥을 드시고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할 때, 가게에 시원한 막걸리를 한 잔 하러 갈 때면 꼭 찌걱찌걱 아빠 장화를 신고 갑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빠 장화를 보고 활짝 웃습니다. 아마 멋진 모습을 축하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에도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온 아빠는 발을 씻고 눕자마자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주무십니다.
찌걱찌걱 아빠 장화는 샘물로 깨끗이 목욕하고 댓돌 위에 기대어 코 잠을 잡니다.
끝.
'처음처럼'
제 동화를 다시 베껴 써 보면서 동화를 배우던 설레던 처음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썼는데 제가 재미있는 건 왜일까요^^
그림책으로 엮어 어여쁜 모습으로 다시 뵙겠습니다.
샘물에 목욕하고 댓돌 위에 기대어 잠이든 찌걱찌걱 아빠 장화처럼
여러분도 편안한 잠 주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