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첫 주 비 내리는 주말 아침. 7시 4분.
낡은 운동화를 챙겨 신고 혼자 집을 나선다. 나뭇가지 사이로 투명한 아침햇살이 살짝 얼굴을 내민다. 짧은 옷에 닿는 달라진 바람의 온도에 기분이 새롭다. 아침부터 벤치 그네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앉아 큰 소리로 통화하는 육십 대 중반의 아주머니를 지나 놀이터 앞을 걸어가는데 누군가의 가방이 등받이 없는 긴 의자 위에 놓여 있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아이들은 종종 가방을 의자 위에 던져놓고 놀다가 그냥 두고 혼자 집으로 가곤 한다.
횡단보도를 피해 일부터 육교계단을 오른다. 이제 제법 컨디션이 괜찮은지 가볍게 뛰다가 걷는 것은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몇 해전 식목일에 학생들이 심은 무궁화나무는 이제 성인의 키보다 훌쩍 자라 분홍색, 흰색 이국적인 얼굴을 한 꽃을 피우고 있다. 무궁화를 보면 이상하게도 나는 하와이의 꽃들이 생각난다.
전 국민의 달리기 열풍.
7시 10분쯤인데 벌써 운동을 마치고 땀에 젖은 몸으로 동네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모두 가볍고 땀 흡수가 잘되는 운동복을 갖추어 입고 러닝용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청년들은 물론 중장년 노년까지 달린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달리는 걸까?"
사람들은 코노나 19를 겪으며 닫힌 공간에서 하는 운동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고 탁 트인 공간에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달리기는 제대로 장비를 갖추려면 많은 비용이 발생하지만 특별한 장비 없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요즘 무슨 운동해요? 아주 건강해 보여요."
"저 요즘 한강에서 사람들이랑 함께 달려요. 날마다요."
가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물으면 러닝크루에서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요즘 사람들은 타인에게 인식되는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이 많다. 더 날씬하게 더 건강하게 보이려는 눈물겨운 노력들이 더 달리게 한다. SNS로 어느 정도 달렸는지 인증하고 날마다 보여주기도 한다.
중장년, 노년의 달리기는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아프지 않고 살아가려는 발버둥 같아 보인다. 서울시의 ‘러너스테이션’ 같은 공간 지원, 기업들의 러닝 크루 후원 등으로 러닝이 더 쉽게 접근 가능한 활동이 되었다. 사람들의 달리기 열풍으로 러닝화 시장은 1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가능성을 입증한 산업이 되었다.
"나는 왜 달리고 싶은가?"
나는 연애를 할 때도 당산철교 아래서 달리기를 즐기던 사람이다. 어릴 적에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자유롭게 신체의 유능함을 실험하곤 했다. 첫 아이를 낳고 100일도 되기 전에 나는 달리기를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의 몸은 달리는 방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한 발자국도 달려지지 않았다. 옆 집에 사는 동네 언니가 왜 그렇게 성급하냐며 몸이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몸조리 하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100일이 지나자 정말 신기하게 달리기가 가능해졌고 인라인도 탈 수 있게 되었었다.
달리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에 집중하는 행위이다. 과하게 가동되는 뇌의 사용량을 조절하고 긴장감을 내려놓으며 속도를 높여 내달리던 삶의 속도를 조율하는 시간이다.
"달리면 잡념이 없어지고 새로운 방향의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좋아."
날마다 10km 이상 달리기를 하는 작은 아이의 말이다.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고 담담하고 고요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도 하였다. 주말엔 달릴 때 입을 티셔츠가 한 장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여 러닝용품을 파는 매장에 함께 가서 사주었다.
나는 9월의 상쾌한 아침을 뛰다가 걷다가 반복한다.
가을이 오는 호숫가는 연꽃이 연밥을 만들어 갈색의 샤워꼭지를 많이도 달고 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그냥 걷는다. 모자를 써서 눈으로 들어오지는 않으니 괜찮다. 바람이 분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는 느낌이다.
러닝크루 사람들은 흔들림 없이 호수를 한 바퀴 돈다. 비쯤이야 이들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은 우산을 펴고 걷기도 하고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서둘러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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