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대왕암 공원
겨울바다가 좋다.
세차게 부는 차가운 바람, 철썩이고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이것은 탁트임이고 생명의 에너지이고 호기로움이다.
찬비를 맞고도 피어나는 털머위꽃 그 샛노란 웃음을 보며 걷노라니 기암괴석이 아름다운 바다가 나온다. 여기는 울산 대왕암 공원이다. 태어나서 처음 와 보는 울산에서 야생의 바다와 마주한다. 뼛속까지 씻어주는 찬바람과 거센 파도소리. 한 해의 마지막을 신비로운 바다의 연주를 들으며 쉼표를 찍어본다.
비바람이 세게 부는 겨울바다에 가면 나는 베토벤의 운명이 들린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바람과 찬 빗방울. 그 안에 서 있는 나도 자연의 일부가 되어 그 리듬의 하나로 자리한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답고 장엄한 소리와 풍경, 리듬이 우리를 압도한다.
으르렁 거리는 2025년의 바다를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다. 모두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마구 헝클어진 채 그대로 담겼지만 모두 밝은 얼굴이다. 빗방울까지 떨어지자 롱코트에 멋진 차림으로 걷던 큰아이는 자신은 이만하면 겨울바다를 모두 경험하였으니 차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겠노라고 말하고 유유히 우산을 꼿꼿하게 쓰고 왔던 길을 걸어간다.
작은 아이는 거센 바다를 보며 활짝 웃는다. 나도 왠지 이 거친 바다가 좋아서 찬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걷는다. 바위 사이사이 보랏빛 야생화가 피어있고 억새가 바람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난다. 혼자 힘으로 첫 앨범을 내고 공연을 앞두고 있는 작은아이. 그동안 혼자서 끙끙거리며 걸어온 길이 힘들고 외롭기도 했을 것이다. 작은 아이는 장엄한 겨울 바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우리에게 이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쉼표를 찍고 나를 압도하는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
"이번 여행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어?"
"대왕암 공원에서 바다 볼 때, 무언가 해방감이 느껴졌어."
작은 아이는 휴학을 하고 1년 자신의 생각으로 살아보겠다고 했고 그렇게 살아냈다. 이제부터 독립이니 생활비며 일체의 모든 비용을 자신이 일하여 벌어서 사용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다. 그리고 일 년. 아이는 계획대로 첫 앨범을 스스로의 힘으로 내고 공연도 기획하여 1월 공연도 앞두고 있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성향의 아이는 기존 제도권 교육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아이는 아니었으나, 교우 관계가 돈독하고 또래 사이에서 음악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독특한 아이로 인정받았다. 나는 남편과 함께 아이들의 상담기간에는 꼭 같이 가서 담임 선생님께 작은 아이의 특성과 좋아하는 것, 요즘 읽는 책들과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이의 강점을 바라봐 주시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었다.
나도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제도권 교육에서 '성적'에 따라 아이들을 나누고 아이마다 가진 '강점'을 잘 인정하지 않은 부분이 늘 안타까웠다. 아이들은 얼굴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흥미와 관심, 강점이 다 다르다. 그것을 제대로 인정해주어야 한다.
이 글을 쓰며 나는 손민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을 듣고 있다. 행복하다. 직접 연주회장에 가지 않아도 유튜브를 통해 이런 생생한 연주곡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생각한다. 마음으로 늘 응원하는 연주자이다. 그는 매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2017~2019),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2022), 라흐마니노프의 회화적 연습곡(2023),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2024), 베토벤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 30·31·32번 (2025) 등 특정 작곡가의 전곡 프로젝트에 몰두하며 음악적인 깊이를 넓혀하고 있다.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연주는 힘들고 지칠 때 이따금씩 듣고 그 음악 안에서 휴식하고 위로받는다. 우리 아이들도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담은 음악으로 세상을 밝히고 사람들을 위로하기를 소망한다.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대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그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기를, 그 순수한 마음으로 그 길을 밝히고 그들의 음악에 깊은 울림을 담아내기를 바란다. 인생의 의미를 많은 돈을 벌고 잘 먹고 잘 사는 데 두지 않고 자신만의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포부를 가진 아이들이 멋지다. 그 젊음과 패기가 좋다.
'네가 든 등불이 너의 길을 밝혀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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