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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28. 2023

벚꽃과 닮은 자카란다

꽃 향기를 타고 추억 향수  



자카란다.

자카란다는 꽃 이름이다. 남아공에 처음 방문했던 16년 전, 온 가로수 길을 덮은 보라색 자카란다를 보는 순간 황홀감에 휩싸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었다. 보라색은 나의 최애 색깔이다. 옛말에 보라색 좋아하면 미친년이란 말이 있던데,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보라색이 좋다. 평생에 보라색 꽃을 본 경험이라곤 할미꽃 한 두 송이,  작은 다발에 묶인 튤립이 전부였다. 그런데 온 가수길이 보라색 꽃이라니!

마치 동화 속 세상에 잠시 온 느낌이었다. 당시 잠시 머물렀던 지인 집은 파란색 대문이었는데, 그 조차도 내 기억에 무척이나 신비로웠다. 아직까지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남아공에 살고 있는 지금은 그때 그 집이 어디었는지 가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 얘기인즉, 이제 너무 익숙한 풍경이 돼버린 탓이다.

신혼 1년 차, 뱃속에 첫 아이를 품고 다녀간 남아공에서 남편과 함께 자카란다 가로수 길 아래에 앉아 카메라를 들고 서로 모습을 찍어대기 바빴던 풋풋함이 떠오른다.




매년 11월이 되면 자카란다는 만개한다.

빠르면 9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서 10월에는 전부 다 피고, 봄 비가 촉촉이 내려 꽃이 지면 가로수길 바닥엔 보라색 꽃길이 된다. 남아공살이 6년이 되니 매년 이 시기를 기다리면서도 점점 익숙해져 간다. 뭐든 처음이 신기하지 그다음에는 익숙해지듯 말이다. 익숙해지는 것과 별개로 언제 봐도 아름답다. 주변 나라에서는 부러 꽃을 보러 여행도 많이 오곤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는 한 동안 꽃구경 가는 것도 겁이 났고 락다운이 한참 지속되었으니 손님이라곤 없었다.


지금은 3월이니까, 여기는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날이 쌀쌀해졌고 비라도 올 때면 으슬으슬 추워 수면 잠옷을 꺼내 입는다.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추운 건 도저히 못 참겠다. 뼛속까지 시리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 난다. 믿기 어렵겠지만 아프리카의 가을밤과 겨울은 상상초월이다.

 



자카란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바야흐로 20년 전쯤.  와, 나 나이 많이 먹었구나.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 전 시간이 남아돌았다. 단짝 친구와 여의도에 벚꽃 구경을 가로 했었다. 남자는 아니다. 여의도 벚꽃놀이 타령을 하다가 한번 출사표 던져보자며 과감하게 약속을 잡았는데, 그날 친구 할머니가 갑자기 앓아누우셔서 꽃구경이 취소됐다. 할머니는 대학 병원에 입원하셨고 우울해하는 친구와 함께 하기 위해 병원에서 반나절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병원 주차장과 벤치 주변은 벚꽃이 우산을 만들었고 친구는 그날 그 우산 아래서 눈물을 훔쳤다. 곧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무척 우울해했다. 어찌 위로할지 모르겠던 그때  그저 옆에 앉아 등을 쓸어내려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1년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그날 이후로 한 동안 벚꽃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떠올랐다.  친구와 함께 앉아 이야기하고 눈물 훔치던 그 장면도 함께 말이다.  결혼을 하고 지방으로 이사하게 되었고 친구와 서로의 집이 멀어지고 직장 생활이 바빠 자주 만나지도 못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지는 법이라는데, 믿고 싶지 않았지만 어떤 계기로 점점 몸도 마음도 거리가 생겼다. 처음에는 전화도 받지 않고 부재중 보고 전화가 걸려오더니, 점점 카톡을 보고 못 봤다는 메시지만 날아왔다. 다른 친구나 지인 보러는 더 먼 거리도 가더니, 나보라는 오지도 않는 그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 가득이었다. 어디 사람인연이 마음대로 될까,

그 이후로 벚꽃이 필 무렵이면 나의 기억에 저장된 그 순간은 반자동으로 폴폴 올라왔다. 그렇게 꽃을 봐도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무뎌진 마음으로 잘 지내온 지 4년이다. 그러다, 오늘 봄이라는 단어를 보고 문득 다시 그때가 떠올랐다.  지금 다 써 내려갈 수는 없지만, 지금은 아예 연락 조차 하고 지내는 친구가 아직도 궁금하긴 하다. 왜 그렇게 멀어졌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다.




사람인연에도 유효기한이 있나 보다. 그러니까 수명. 인간관계 수명말이다.

그저 그런 인연이 하나 둘 생길 때마다 그 사람과 나와의 인간관계 수명은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해진다. 그냥 그 시절 그 장소에 딱 관계의 열쇠를 내려놓고 뒤돌아서 다시는 안 집어 들고 안 열면 그만이다. 일부러 내가 다시 열어봤자 좋은 게 나올 리 없다.


오늘은 봄에서 벚꽃으로 벚꽃에서 자카란다로, 자카란다에서 다시 벚꽃과 친구, 친구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글을 쓰면 잠시 내가 과거로 돌아갔다 오는 일이 많아진다. 그 기억이 좋든 나쁘든 모두 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점들이다. 잘 이어 보면 괜찮은 선도 나오고 그런다.

오늘은 여기까지 접어두고 어서 자러 가야겠다.

그나저나, 예쁜 자카란다를 보려면 아직도 반년은 남았구나.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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