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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30. 2023

남아공 온탕 열탕 냉탕 나는 눈치탕

그리운 한국 대중목욕탕 




 집을 떠나야 하던 일에서 손을 다 떼고 쉬고 있을 줄 알았다. 여전히 온라인 각종 모임과 참여 중인 챌린지는 모두 다 진행 중이다. 시기 다르게 쉬고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완전히 손 놓고 쉴 수 없는 일들이 있어서 역시나 마음은 콩당콩당이다. 마감이 있는 챌린지에는 늘 한국 시간에 맞추다 보니 조마조마해도 어쩐지 여유는 있다. 하루 4시간씩 걸리는 코칭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만 해도 자이언트 글쓰기 무료 특강 줌이 하나 있었는데 여유 있게 들으려고 들어갔지만 여러 번 들었던 강의인데도 온통 마음을 뺏겼다. 빨리 수영하러 나가자는 막내 조름에 '어 미안, 잠깐만 2분만'을 외치다 20분을 넘겨 원망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아무튼 오늘 아이들을 원 없이 수영을 했고, 나는 그 틈을 타서 책 한 권을 완독 했다. 최리나 작가의 <나는 왜 남의 눈치만 보고 살았을까?>를 읽으면서 입에서 자꾸 욕이 튀어나와서 혼났다. 읽어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는 쌍욕파트가 절반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봄이 오기까지의 이야기는 내 감정선도 계절을 함께 이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운 관계이고 자주 이야기를 나눠서 인지 뭔가 책 속에 담긴 리나 작가의 지난 시간에 관한 기록과 아픔, 시련들이 더 진하게 다가왔다. 이 모든 시간이 지금의 탄탄하고 멋진 리나 작가를 만들어줬겠구나 생각했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엔 너무 아픈 시간을 보낸 것이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한 권을 완독 하는 동안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책을 내려놨다가 다시 집어 들기를 반복했다. 한국에 갔을 때 사인본 받아와 놓고 일에 파묻혀서 매번 읽을 생각만 하고 못 읽었는데 이번 여행을 오면서 가방에 찔러 넣길 잘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리스트 하나를 달성했다. 책 한 권 완독 그리고 두 번째 전자책 완성인데 아직 멀었다. 아무래도 전자책 완성은 다 못하고 갈 것 같긴 하다. 



 

낮시간은 나름대로 아이들의 파라다이스를 보면서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을  보냈다. 좀처럼 여행을 잘 오지도 못하고 여행 와서도 최소한으로 쓰고 가는 편이다. 이번에는 좀 둘러보다가 뭔가 부대시설에서 이용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알차게 해 보자고 했다. 그러다 실내 스파(SPA)가 있는 걸 발견했고 유료라는 걸 보게 됐다. 그래서 어제 미리 예약을 해뒀다. 한 시간에 성인 80 란드, 어린이 50 란드. 그러니까 한화로 합이 3만 원이 못 되는 가격이다. 실내를 보지도 않고 무조건 예약했다. 굳게 믿었던 믿음은 분명 바깥 수영장 물보다는 따뜻할 거라는 근본 없는 믿음 탓이었다. 오후 5시 예약시간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되어 실내에 들어가서 깜짝 놀랐다. 파란 불빛이 내리쬐고, 탕 속에서 얕은 마사지 폭포수가 딱 3군데 떨어지는 기다랗고 좁은 탕이 있었고 아저씨들이 군데군데 서 있었다. 


"실망스럽다. 역시 기대를 왜 했나 몰라. 이게 다야? 이렇게 여기서 한 시간 있으라고?" 


기대보다 물이 따뜻하지도 않았고 상상했던 모양도 아니었다. 그렇게 뚤래뚤래 쳐다보면서 같은 기대이하로 실망해서 시끄러워진 아이들에게 조금 조용히 하라고 타일렀다. 그 사이 흑인 남녀 커플이 자꾸 우리 쪽으로 눈길을 줬다. 나는 시끄러워서 그런가 싶어서 아이들에게 더 주의를 줬다. 그렇게 약 15분간 물속에서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물속에서 까치발을 들고 턱을 쳐든 체 걸어 다녔다. 탕에 있던 커플이 가고 새로운 커플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어디서 나왔지? 싶을 정도로 갑자기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이 탕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걸 보게 됐다. 어딜 가든 처음 가는 곳이나 처음 접하는 문화는 잘 관찰하면 절반은 간다. 그리고 손해보지 않을 수 있는 확률 역시 50%는 족히 넘는다. 잘하면 90%의 혜택을 누릴 수도 있다. 무튼 어딜 가나 눈치는 챙겨야 떡 하나도 더 얻어먹는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아이들과 남편을 정탐 보냈다. 


"저기 안으로 사람들이 지금 들어갔거든? 거기 뭔가 있는 거 같으니까 한번 다녀와봐 봐. 분명 이게 다는 아닐 거야. 아니길 바라야지!!" 


마사지 샵이랑 같이 하는 건물이라서 처음에는 마사지를 받으러 들어가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안쪽에는 또 다른 탕이 있었고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다른 모양이었지만 기대를 약 60% 정도 채워주는 곳이 있었다. 이름하여 열탕 온탕 냉탕. 한국의 대중목욕탕을 연상케 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남아공 열탕 냉탕 온탕 


다른 곳에도 많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나는 남아공에 산 6년 동안 이런 곳은 처음 봤다. 다른 수영장 있는 롯지에도 수영장에 온수풀이 있는 걸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냉탕 온탕 열탕이 나누어서 같이 되어 있는 곳은 여기가 처음이다. 딱 보는 순간 한국 대중목욕탕이 떠올랐고 급 그리워졌다.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사람이 바글바글 했다. 흑인 백인 현지인들로 절반은 차 있었고, 젊은 청년부터 중년까지 군데군데 앉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들어가려고 하는 찰나 현지인 중 두세 명이 조금 민망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외국에서는 눈 마주치면 보통 가볍게 인사도 하고 몇 가지 스몰 토크도 나누는 데 눈빛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그래서 조용히 한쪽으로 앉았고 몇 분 지나자 사람들이 바뀌면서 우리만 남게 됐다. 얼씨구나 열탕이 그리웠던 나는 벌겋게 생긴 게 당연히 열탕이려니 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얼른 들어갔다. 기대했던 따뜻한 탕이라서 매우 좋았다. 들어가서 앉아있으니 몸이 노곤해지면서 릴랙스 됐다. 


"보통 외국인들은 동양인이 더럽다고 생각하잖아. 여기는 중국인도 많고 보통 다들 우리를 중국인으로 아니까,  그래서 다 나갔나? 우리가 와서? 자기네가 한국을 모르는 거지 한국도 한국 사람도 얼마나 깨끗하고 멋진지 여기 사람들은 모르니까......" 


갑자기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솔직하게 나도 약간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누릴 권리를 누리는 거라며 입 밖으로 말을 안 꺼내고 있었다. 공교롭게 그렇게 약 20분간 세 가지 탕이 섞여 있는 공간으로 아무도 오지 않았고 우리 가족만 호사를 누렸다. 너무 오래 있던 것 같아서 나오려는 찰나 다음 타임 예약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남편에게 제발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말라고 괜히 우리가 그런 거 까지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단지 타이밍이 그랬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종종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있는 현실에서는 나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사실이다. 차별을 당하는 눈빛이라고나 할까, 그런 애매모호한 눈빛이 아주 가끔 있다. 


 사실, 이런 인종차별 및 논란거리가 될만한 대화는 가끔 한 번씩 나눈다. 그런 상황도 많이 있고 말이다. 이에 관한 에피소드도 나의 첫 에세이 <삼 남매와 남아공 서바이벌>에 실었는데, 우리를 중국인으로 보는 게 매우 억울해서 입 밖으로 "암 낫 차이니즈!!!!!"를 크게 외치고 싶을 때가 많다.  남의 나라에 살면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눈칫밥이다. 


글을 쓰다 보니 길어졌다. 

오늘 하루는 공교롭게도 리나작가의 책 제목에 들어가는 <눈치>와 탕에서 느꼈던 눈칫밥으로 눈치탕에 들어가서 반나절 지낸 듯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 살다 보면 무뎌지고 덤덤해지기도 한다. 

그래야 살아내 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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