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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18. 2023

아이 따라 떠난 엄마

나도 엄마라 쉽게 들리지 않는 소식



작년 말, 슬프고 무서운 소식이 연달아 들렸었다. (쓰다가 묻어뒀던 글을 꺼내서 마무리하자니 벌써 지난해말이다.) 

현지 3인조 권총강도가 한인에게 총기를 들이대고 차량과 지갑, 휴대폰을 강탈해 간 사건이 있었다. 이어서 매주 가는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났고 다음 날 아침까지도 경찰 출동도 없었다. 시체를 해결하지도 않고 있다는 소식 또한 들었다. 며칠 뒤, 아직 돌도 안 된 아이가 밤 사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렸다. 침통했다. 아는 사람도 아닌데 마치 물속에 잠긴 듯한 먹먹한 느낌이 오랫동안 지속했다. 그리곤 또 건너 건너 아는 20대 청년이 뒤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뇌사에 빠졌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리고 1주일 정도쯤 지났을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돌도 안되어 세상을 떠난 아이의 엄마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날 오후께나 되어서야 건너 건너 듣게 되었다.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고 말 한번 섞어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멀리서 실루엣을 본 적 있다. 차에서 아이를 내리고 유모차에 태워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잔상에 남았다. 몇 차례 멀리서나마 봤던 모습이 그 모습뿐이어서였을까 그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남겨진 남편과 첫째 아이를 향한 걱정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가도 그래도 살았어야지. 남편과 첫째 아이는 어떻게 살라는 걸까, 

그 당시 엄마가 세상 다른 사람 생각할 정신도 없었을게 분명할 테지만, 

남편은 뭐 하고 왜! 그 애엄마를 혼자 뒀을까

혹시 산후 우울증이 지속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내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사정과 시간이 있었겠지. 

그런 선택할 거라 아무도 생각 못했겠지. 

내 머릿속에서는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이사? 이민? 최후엔 이혼? 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추측했지만 그 추측이 무색하게 너무나도 허망한 소식이었다. 


"장례식에서도 너무 멀쩡해서 깜짝 놀랐는데, 그다음 날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임에도 왔고요. 무척 단정한 모습이었어요. 너무 덤덤해 보여서 이 엄마가 제정신인가 정말 괜찮은 건가 생각보다 너무 괜찮네라고 생각했다니까요." 


지인의 말을 들으며 얼굴도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해 봤다. 상상되지도 않는...... 


"무슨 정신이 있었겠어요. 실감이 났겠어요? 믿기지도 않으셨을 텐데, 아마 아무 생각도 없었을 거예요. 멍한 상태로 현실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죠. 너무 허망하네요 정말..."


부모나 어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장례식장과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장례식장을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부모를 보내드린 것도 쉽지 않은데,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은 오죽할까, 뉴스나 드라마에서 보고 들을 법한 이야기가 너무 가까이에서 들리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그 엄마가 그런 선택을 한 거에 대해서 참 슬프지만, 오죽했으면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싶어. 다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 아픈 아이를 다른 방에 재웠다는데, 토사물이 기도를 막을지 그 엄마가 알았다면 그렇게 했을까? 그러니 자기가 그렇게 안 했다면. 내가 그날 아이 옆에라도 있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자책을 했을 거야. 생각만 해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에효......" 


 아이들이 들을까 염려가 되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편에게 말했다.  


"아니, 나는 이해가 안 가. 왜 혼자 뒀지?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 있는 친정에서라도 달려와서 같이 있어줘야 되는 거 아니야? 그 사이 며칠이 있었는데. 주변에서 사람들은 뭐 했대? 이럴 때 주변 사람들이 들여다보면서 좀 챙겨주고 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리고, 세상에 그렇게 자기 자식을 떠나보내고도 죽기 살기로 다른 자식 남편 가족 보면서 버티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았어야지! 그렇게 '나 때문'이라는 자책을 가지고도 살았어야지 그렇게 하면 안 됐지 살려고 생각을 바꿨어야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안 되는 상황이 있는 거야. 그럼 그런 상황에 대해서도 껴안고 살아내야지. 아휴. 그거 어쩌냐." 


남편의 말에 덜컥 화가 났다. 막으려고 해도 일어날 상황에 대해서는 더 미련을 갖지 말고 털어내야 한다는 말이 너무 쉽게 들린 탓이었다. 이럴 때면 가끔 지나치게 이성적인 남편 태도에 화가 난다. 남의 이야기를 나누다가 싸울 것 같아 말을 멈췄다. 둘 다 걱정되는 마음은 같았지만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얼마나 이성적이냐를 따지는 것도 아닐 테고 말이다. 


"나는 가끔 그런 생각하거든? 정말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나라도 정말 미칠 것 같을 텐데. 내가 그런 선택을 한다고 하면 그래도 자기는 그렇게 초연하게 살 수 있어? 그게 돼? 말도 안 되는 거야. 힘들어 죽을걸?" 


뾰족하게 날 선 대꾸를 하는 내 말에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잠시 침묵했다. 그리곤, 

"아, 미안. 내가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안 됐다. 어쩌냐 이러고 끝냈어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소식을 듣고 걱정하며 애도하는 마음은 같았다. 아이들이 식탁으로 모였고, 그렇게 이야기는 마무리지었다.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았다. 그저 그 가족이 걱정되는 마음만 불쑥불쑥 올라왔다. 뒤이어 들리는 소문엔 이미 애 엄마는 며칠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주변 정리를 했다고 했다. 

미리 영정사진을 찍었다. 매일 집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에게 그날만은 할 일이 많아 혼자 정리하고 싶다고 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곤 그날 먼저 간 아기에게로 향했다. 들리는 소문에는 우울증이 있었고 상황이 버틸 수 없다 보니 그렇게 됐을 거라고 했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옮기는 게 아니다.  헤아릴 수 없는 감정과 일 속에서 느꼈을 마음을 잠시 묵상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바라보는 생각차이도 곰곰이 생각했다. 그날의 저녁 식탁은 고요했다. 달각거리며 그릇과 부딪히는 젓가락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저 조용히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나중에 들은 소식으론 아빠는 남겨진 아이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예기치 못했든 예견했든 남겨진다는 것, 떠나보내다는 것은 언제나 힘겹고 오래도록 시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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