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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r 31. 2023

원숭이 출몰하는 집도 괜찮겠니?

도둑 원숭이 관찰에 관한 고찰


 

    오전 6시 반쯤 평소와 같은 시간에 눈을 떴다. 아침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여행 와서 컨디션 난조가 시작되니 매우 아까운 마음이 든다. 즐겨도 모자랄 이 시간에, 휴식 중 강제 휴식이라니.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6시 무렵부터 5분 간격으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네 차례나 걸려왔다. 남아공에서는 모르는 번호는 가능하면 받지 않는다. 여기도 스팸이 기승이다. "Press number 1......"으로 시작하는 전화도 많고 광고회사에서도 전화가 온다. 대출 관련 전화도 온다. 아! 그리고 예전에 누가 내 번호를 썼는지 자꾸 나한테 이상한 이름을 말하면서 헬로도 아닌 사우보나(줄루어) 혹은 두멜랑(소토어)거 린다. 늦잠 한번 자보려고 다시 눈을 질끈 감았지만, 역시 도와주질 않아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그렇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가볍게 산책했다.



     "여기서 매일 살고 싶어!"라고 말하는 막둥이 말처럼 나도 매일 아침 이런 풍경 보며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과 둘이 산책길을 걸어 이런 곳에 별장을 사놓고 시즌마다 오는 사람은 참 여유롭겠다며 우리 노후는 어떤 모습일지 그림을 그려봤다. 보이지 않지만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 좋은 시절 아닌가.


       약 7주 한국 방문 후 돌아왔을 때  몸무게는 변하지 않았는데 체지방이 빠진 건지 홀쭉해져서 왔다. 옷을 입어도 낙낙하니 쏙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런 기분 아는지 모르겠다. 다리를 꼬았을 때 위로 포갠 다리가 반바퀴 돌아 발등이 종아리를 감싸 뒤로 감겨서 무릎 위 허벅지가 날렵해진 느낌말이다. 한마디로 살 빠져서 좋았다. 스스로도 몸이 가벼워진 게 즐거웠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도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여럿 물었다. 나만 아는 그 피둥함에 원하는 만큼 지방을 덜어내면 몸도 맘도 가볍다. 한국에서 바쁘게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러 다니느라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됐다. 게다가 시차 적응이 안 돼서인지 새벽에 일을 하고 2-3시경 자는데 아침 7-8시에는 일어나도 또 일정을 소화했다. 피곤하긴 해도 죽을 맛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해발 2500미터 고산지대인 남아공에서 체력이 단련되어 한국 갔을 때 날아다녔던 것 같다.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을 만나는 게 신났었다. 즐겁고 반갑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매일 하루에 두세 사람 혹은 두세 팀을 만나면 하루가 저물었다. 거리를 활보하며 낮이고 밤이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한국이 너무 그립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빠졌던 살이 스멀스멀 다시 피둥피둥해지고 있다. 글 쓰고 코칭하고 수업 듣고 훈련하며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늘어나다 보니 불가피하게 지방축적은 모두 중심부로 모이는 느낌이다. 왜 나의 배움의 시간과 중량이 내 몸의 중량과 비례해야만 하는지는 도무지 인정해주고 싶지 않은 부분이다. 서서 일해야 되나.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남아공에서는 일부러 운동하지 않으면 걸을 일이 없다. 오래 습관이 되면 몸도 마음도 무겁다. 오랜만에 가진 오전 산책은 매우 상쾌할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오래 돌지 못했다. 약 30분의 가벼운 산책에 그래도 마음은 좀 가벼웠다.


 

    산책을 하면서 보니 햇볕샤워를 하러 나왔는지 소풍을 나왔는지 대가족 원숭이들이 떼로 자리를 잡았다. 아들 손자며느리 이모 삼촌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다 모였는지 새끼 원숭이들도 무척 많고 긴 꼬리 원숭이도 보였다. 암튼 무척 날쌔게 이 나무 저 나무 이 길 저 길로 가까이에서 걸어 다니며 눈까지 마주쳐 흠칫거릴 찰나를 찍었다. 잔디밭에 있는 원숭이들이야 그런가 보다 했다. 원숭이 천지다.



      멀리서 보니 남의 집 지붕에 올라가 다른 원숭이가 도둑질하는 동안 망을 보는 건지 손오공이 지붕에 올라갔나 창덕궁의 처마 끝에 앉은 잡상이 떠올랐다. 삼장법사, 저팔계, 사오정 친구들은 어디 갔니 원숭아.

그 아래로 원숭이들은 창문 열린 집에 들어가 빨간 사과를 훔쳐다가 기둥 뒤에 숨어 먹고 있었다. 그 집에 머무르는 객원들은 미처 닫지 못한 채 외출하고 없는 듯 보였다. 이를 어쩌나, 순간 나도 방 발코니 창문을 열어 두고 나온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얼른 첫째 별에게 전화를 했고 그렇잖아도 원숭이가 방으로 들어오려고 해서 얼른 창문을 닫았단다. 아니었으면 방안에 있는 물건 다 없어졌을지도 모를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원숭이는 음식만 가져가는 게 아니다. 집 안이든 차 안이든 열려 있으면 뭐라도 집어간다. 심지어 팬티를 집어다가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한다. 그게 모자겠니 원숭아.


     남편과 나의 대화는 동물들의 지능과 행동관찰양식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요새 티브이나 유튜브 혹은 주변에서 동물 기르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물들의 지능적인 행동에 적잖게 놀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개가 방문을 닫고 불 끄고 선풍기 들고 각도에 맞춰 누워 쉰다던지, 고양이가 주인 침대 이불을 구긴 아이 고양이를 나무라고 손과 입을 이용해 이부자리 정리를 한다던지 하는 모습말이다. 동물이 지능이 높아서일까 관찰을 잘해서일까? 남편과의 이야기는 분명 주인의 행동을 관찰한 뒤  주인에게 칭찬을 받았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게 아니냐는 결론이 나왔다. 뭐 찾아보면 행동주의학에서 적절한 예와 결론이 나오겠지만 우리끼리 이야기다. 심오하거나 무거운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 짧은 시간도 꽤 즐겁다. 사이사이 빈 틈은 웃음이 메워준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 간단하게 먹자며 다 꺼내 놓고 보니 한상 거하게 차려졌다.   

토마토 브로콜리 수프, 우유, 커피, 달걀프라이, 베이컨, 귤, 포도, 자두, 삶은 달걀, 토마토소스빈, 호밀빵, 치즈.  상차림은 거해 보이지만 여행 와서나 먹을 법한 가벼운 Beakfast다. 집에서는 같은 상차림을 차려도 왜 이런 분위기가 안 나올까.



오붓이 이야기 나누며 먹는 아침식사자리가 조용하면서도 도란거려서 좋다. 아침 식사의 주제는 <집>이다. 요새 꿈이 자꾸 바뀐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건축가가 꿈이라고 말하는 둘째 다엘에게 간청하는 막내의 말이다.


"형, 나 이런 집 지어줘!"

     수영장도 있고 레저활동 할 수 있는 부대시설 있는 골프 이스테이스 같은 집은 일반 주택가에도 있다. 단지 우리가 그곳에서 살지 못할 뿐,

이야기의 끝은 이런 집 만들고 싶다거나 돈 벌어서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로 여운이 남는다. 이때 꼭 빼먹지 말아야 하는 건 돈을 많이 벌어야만 부자가 아니라는 것과 돈만 벌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즐기면서 하다 보면 돈을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마무리 지어본다.


글을 쓸 때 자아성찰적인 글을 쓰려고 한다. 그러나 항상 자아성찰만 하고 있을 순 없진 않겠는가,  

그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거리낌 없이 쏟아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좋다.


그나저나,

요엘아, 원숭이 나오는 집도 괜찮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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