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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n 14. 2022

아찔했던 그날의 기억.  포기에 더한 기쁨

 집에 못 돌아 올 뻔했던 그날. 




집에 가려고 가방을 열고 안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없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차키가 없었다.

분명히 아이들 태권도 들여보내고 가방 안에 넣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등줄기를 따라 머리가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가방 안에 물건을 탈탈 다 쏟아냈다. 차키는 없었다. 차에서 내려서 아이들을 체육관 안으로 들여보냈던 길을 따라 기억을 더듬으며 거꾸로 걸었다가 똑바로 걸었다를 반복했다. 어디에서도 열쇠를 찾을 수 없었다. 




2019년 아이들이 이곳 대학 tucks 체육관에서 태권도를 배울 때 일이다.  

아이 둘과 남편이 함께 태권도를 배우러 들어가고 4살 배기 막내를 데리고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급하게 들어간 후 차에서 내리면서 남편은 나에게 차키를 건네줬다. 다른 손에는 쓰레기를 들고 있었고 나는 쓰레기 통에 쓰레기를 버렸다. 분명 나는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차키를 가방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은 바람이 약간 쌀쌀할 날씨였던 걸로 기억난다. 외투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방지축 온 사방을 체력 좋게 뛰어다니던 요엘을 챙기느라 정신없었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뛰어다니고 나는 뒤를 쫓아다녔다. 


1시간이 지나 태권도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차 앞에 섰다. 가방 주머니 안에 손을 넣었는데 차키가 없었다. 가방을 샅샅이 뒤지다가 도저히 안 되겠어서 가방을 바닥에 엎었다. 어둑어둑해지고 바람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갔던 길을 전부 돌아다녔지만 차키는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내가 쓰레기랑 착각하고 버린 건 아닐까? 혹시 몰라 온 사방의 쓰레기통의 비닐을 엎어서 차키를 찾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점점 더 어두워지고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 진짜 미쳤나 봐. 나 분명히 차키 가방에 잘 넣었거든. 

변명해도 소용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데 차 안에 넣어둔 집 키가 생각났다. 한숨이 두배로 쉬어질 때쯤, 천만다행으로 가방에 있는 서브 집 키가 떠올랐다. 일단 집에만 들어가면 서브 차키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 문제는 거리, 30분 거리를 다시 가야 하는데 대중교통이 없는 이곳에서는 어둑한 저녁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지 않고는 집에 갈 수가 없다. 마침 일행들이 모두 다 떠나기 전이이었고, 우리 동네 살던 가족이 막 자리를 뜨려던 참이었다. 감사하게도 도움을 받아 아이들과 나는 먼저 집으로 왔다.


분명 내가 갔던 길은 샅샅이 다 봤는데 왜 없었을까, 


그 사이 누가 주워 갔을까? 

혹시 누가 주워서 차를 끌고 갈까 봐 걱정이 됐다. 

남편은 홀로 그곳에 남아 차를 지켜보고, 좀 더 열쇠를 찾아본다고 했다. 체육관 경비에게 혹~~~ 시 키를 찾으면 연락 달라고 연락처를 알려줬다. 집에 도착한 나는 차키를 지인에게 주고, 지인은 우리 때문에 다시 30분 거리를 운전해서 남편에게로 갔다. 

키를 받아 차를 끌고 집으로 온 남편은 들어오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잃어버린 키.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키를 다시 맞추려면 적어도 몇 십만 원이 들어갈 것도 예상에 없는 지출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게다가 서브 키는 상태가 약간 불안정했고,  서브 키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안 맞출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다 필요 없고 내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밤 사이 잠이 오질 않았다. 뒤척이다가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아침이 됐다. 아침이 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자마자 남편과 어제 갔던 TUCKS를 다시 찾았다. 정말 마지막으로 찾아보겠단 심정으로 갔고, 잔디를 깎는 차가 지나다니다가 혹시 키를 망가뜨리거나 누군가 주울까 싶어서 발길을 재촉했다. 

TUCKS에 도착했을 무렵 잔디 차가 대기 중이었다. 나는 남편과 두 갈래로 나누어서 키를 찾기 시작했다. 밤사이 들었던 오만 잡다한 생각에 꼬리를 물어 아침에 꼭 실수를 만회하겠다는 다짐을 굳게 했다. 남편과 길을 나누어 찾고 뒤 돌아 나오면서 한숨지었다. 


에효 없나 봐. 누가 주워갔나 보다. 내 정신 좀 봐. 미안해.....
나 어제 진짜 잘 챙겼는데 흘렸나 봐. 


변명도 소용 없이 그냥 계속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하던 무렵 잔디 한쪽 길 멀리에 검은 물체가 보였다. 설마 그게 키일까 싶은 마음에 반신 반의, 아니 거의 포기 상태로 점점 다가갔는데 세상에 심봤다! 


어머!! 나 찾았어! 어머! 여기 여기 여깄어. 나 키 찾았어, 꺅~~!!! 


열쇠다. 차키!!

세상에 얼마나 기쁘고 신기한지, 아침에 오길 잘했다며 난리부르스를 췄다. 내 모습을 본 남편이 한마디 했다. 

와... 나 당신 만난 이후로 오늘 같이 환하게 웃는 모습 처음 봤어.  
대박.. 
잘했어. 잘 찾았네!!!


나는 만회했다. 그리고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갔다. 눈이 썩 좋은 것도 아닌데 운전할 때와 영화 볼 때 빼고는 안경도 안 쓰는 나다. 불편한 게 싫어서다. 그런데 그 키를 멀리서 발견하고 다가갔다니! 나도 믿을 수가 없다.  포기하고 터덜터덜 걸어 나오던 찰나였다. 우리는 집에 오는 길에 기분 좋게 차키 찾은 기념으로 스타벅스에 들러서 커피를 사들고 시원하게 한잔씩 들이키며 왔다. 


남편의 마지막 말이 한 동안 계속 맴돌았다. 차키를 찾았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도 모르게 폴짝 거리며 기쁨을 맘껏 표출하던 모습이 그에게도 낯설었을 수 있다. 워낙 감정표현이 격하지 않기 때문일 게다. 나이가 들면서 때론 감정표현이 좀 더 자유롭게 나오는 것 같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표현을 제대로 하는 게 상대방에게도 나에게도 좋을 때가 더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매일 네이버 블로그에 질문 챌린지로 글을 쓰고 있다. 

오늘 글쓰기 질문을 받아 들고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자 몇 년 전 차키 소동이 기억났다. 이 당시 티스토리 블로그에 기록했던 기억도 난다. 일부러 이 글을 쓰기 전에 찾아보지도 않았다. 단순히 내 기억에 의지해서 글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날의 인생 경험은 나에게 다음번 좀 더 조심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때론, 인생에 실수가 반복되고, 생각지 못한 실수로 얼룩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포기하고 뒤돌아서서 터벅터벅 걸어 나오다 해답을 찾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럼 그 기쁨이 배가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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