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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5. 2022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오늘의 느낀 점

 



"어? 이거 무슨 냄새야?" 


하루 종일 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아이고 두야. 





토요일 아침이다.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한국 시간에 맞춰 줌 모임이 있었다. 내게 중요한 모임이라 빠질 수가 없다. 

끝나자마자 잠들었으면 좋으련만 여러 가지 생각으로 정신이 번쩍 들어 눈이 말똥거려 혼났다. 결국 30분을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을 스크롤하다 잠에 들었다.  

맙소사. 빠듯하다. 토요일 아침 9시까지는 한글학교에 가야 하는데 일어나 보니 8시다. 밥 차리고 애들 밥 먹이고, 옷 입고 대충 짐을 정리해서 나가려면 시간이 빠듯한데 이불속에 누워있고만 싶은 주말이다. 몸뚱이만큼이나 무거운 눈꺼풀을 게스름츠레 올려 뜨고 눈곱도 안 뗀 채 주방으로 향했다. 밥 준비하고 밥 먹으면서 정리했다.  밥상 앞에서 생각하는 로뎅이 된 막내 입에 음식을 넣어 주고 돌아서서 설거지했다.  그러다 어제저녁 먹고 남은 조개 두부탕 냄비 뚜껑을 한번 열어보곤 혹여나 쉴까 전기스토브의 레버를 올렸다. 한번 데워둘 생각이었다. 


차로 10분 거리의 장소까지 가려면 적어도 8시 50분에는 나가야 하는데 시계의 긴 바늘은 55분을 향하고 있었다. 얼른 마저 짐을 꾸려서 애들을 밀어내듯 내보내고 신발을 신고 문을 닫았다. 한글학교에 도착해 일정대로 바쁘게 움직이고 마무리 후 집으로 향했다. 


"KFC 가고 싶지? 징거 윙 먹고 싶지 않아?" 

"집에 냉장고에 윙 어제 마트에서 내가 고른 거 있는데 그거 얼른 먹어야지." 


남편과 서로 뒤 바뀐 역할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 배가 고팠다. 바로 옆 건물에 가까운 KFC에 가서 점심을 징거 윙으로 뗴우고 싶은 마음이었다.  10분이면 집에 가는데 그새를 못 참고 사 먹자고 할 정도로 허기는 좀 있었다. 집에 들어와 차에서 내려 문 앞으로 걸어가는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이거 무슨 냄새지? 뭐가 타나....... 봐?????? 어머 어머 어머." 

그때 생각났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다.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머 미쳤나 봐. 나 까맣게 잊었네 세상에 어떻게 해!" 

얼른 문을 열고 가방을 팽개치고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켰다. 어두워서 안보였던 실내에 회색 연기가 둥둥 떠있었다. 



"어머! 웬일이야. 진짜 미쳤네. 정신 나갔네. 치매야? 왜 이래 진짜.
나 진짜 생각도 못했어. 나 안 껐나 봐." 
 

솔직히 좀 민망하기도 했다. 너무 큰 실수를 한 거다. 혼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에 불이 안나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불났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은 아찔함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만약에 남편이나 아이가 그랬다면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나무랐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도 남편도 나에게 큰소리치지 않았다. 그저 일사불란하게 온 사방의 창문과 문을 다 열고 선풍기와 환풍기를 틀었다. 열리지도 않을 정도로 딱 굳어 붙은 뚜껑을 열어보기가 겁났다. 냄비를 밖으로 옮겨놓고 주방 단속을 시작했다. 장장 4시간 동안 가장 센 불로 팔팔 끓다가 타버린 내용물과 냄비를 보니 내 속도 같이 타들어갔다. 냄비야 버리면 그만인데 우리 집도 아니고 남의 집 살면서 이 집 불났으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주방 전기스토브 위의 찬장은 전부 나무 문인데 벽 타고 그을음이 올라가기 직전이었다. 

지금 이 시간까지 온 집안 곳곳에 베인 냄새가 빠지질 않는다. 그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정리를 마치고 열기가 식고 나서 냄비를 열었다. 연탄도 아니고 정말 새카맣게 타버린 조개껍질과 형체 모를 저 건더기는 뭔지 궁금했다. 분명히 두부, 달걀, 바지락, 파 말고는 없었는데 저건 뭘까.




하루 종일 손바닥을 코에 대고, 입은 옷을 코에 대본다. 코를 벽에 대고 냄새를 맡고 커튼이며 문까지 냄새를 맡아봤다. 찬장을 열자 매캐한 냄새가 난다. 이미 연기가 곳곳에 베었다. 

소방관들은 이보다 더한 화재 현장에서 살다시피 할 텐데 몸에서 냄새가 빠질 날이 있을까 싶다. 약 4시간가량 뜨겁게 달궈지다 못해 까맣게 타버린 저 작은 냄비에서도 이렇게 냄새가 심한데 말이다. 좀 진정이 되고 나니 소방관들에 대한 경외심과 측은함이 올라온다. 








오늘의 느낀 점. 



꺼진 불도 다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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