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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04. 2023

소닉 91번은 남아공 타조 스프링벅스와 함께 산책을

(feat. 뒷산 야생 동물)



오랜만에 산에 갔다.

걷는 걸 무척 좋아하는 나는 종종 산을 찾는다. 이곳은 마치 한국의 뒷산을 연상시키는 곳이라 처음에 이곳을 알았을 때 정서적 안정감을 느꼈다. 다른 게 있다면 야생 동물의 출몰이다.

스프링벅스, 토끼, 타조, 거북이, 얼룩말, 온갖 종류의 새 등 야생에서 초식동물을 어떤 거리낌 없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무척 신기했는데 이제는 바스락 대는 소리에 여깄구나. 할 정도로 지나치기는 한다만, 여전히 동물의 세계는 신비롭고 구경할만하다.


삼 남매는 2주간의 가을 방학 기간이라 이번 주까지는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지난주 운동도 못하고 몸이 매우 찌뿌둥해 아침부터 산에 갈 사람 여기 붙으라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더니 막내 요엘이만 붙었다. 언제나 그렇듯 남편은 선택권 주장을 안한다. 내가 가자면 언제나 오케이다. (고오맙다 남편)

누굴 닮은 건지 막내 녀석은 4-5세 때에도 한 시간 정도 되는 산을 타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고 업어달라고 한 적이 없다. 형 누나는 힘들다고 투덜거리는데 에너지가 남다른가 보다. 크면 운동선수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에너지가 남아돈다. 한 번은 유도 운동하는 백인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요엘을  보더니 좀 더 크면 유도를 시키라고 권했다. 가볍게 목례하고 고맙다고 말했지만 속으로 나도 얘는 운동을 해도 되겠구나 싶었다.



산에 가서 걷는 시간이 참 좋은데 그저 걷기만 해서 좋은 건 아니다. 걸을 때는 항상 옆에 아이들이 붙어서 재잘거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럼 평소에 귀 담아 듣지 못했던 온갖 이야기가 나 튀어나온다. 나도 걸을 땐 여유가 있어서인지 더욱 귀 기울이게 되고 대답도 더 너그러워지는 느낌이다. 스스로 자연에 동화되어 마음이 맑아진다고 해야 할까.

오늘은 막내와 함께 걸으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의 생각은 언제 들어도 상상을 뛰어넘기는 하는데 점점 나이를 먹으며 자라는 아이의 생각과 말에 일리가 있어지는 걸 볼 때마다 놀랍다.

말이 트일 시기에 남아공에 와서 '아빠' 발음도 제대로 못해서 언제 말하나 싶었던 그 꼬맹이가 맞나 싶다. 세월이 정말 빨리 흐른다.

오늘은 내 앞을 저벅저벅 걸어가는 소닉 91번의 뒷모습을 유심히 관찰했다. 사실, 아이의 순간을 다 찍었다. 글을 하나 멋지게 쓰고 싶어서였는데 오늘 그 글은 못쓰겠다. 일단 다른 이야기로 페이지를 메워본다.  


이곳과 비슷한 산이 여러 곳 있는데 내가 사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 이곳 리저브이다. 입장료도 없고 주차도 되고 하이킹하기에도 코스가 참 괜찮다. 아이가 가기에는 돌짝밭이 많은데 이곳에 갈 때마다 가족단위로 참 많은 사람이 하이킹을 온다.



아이랑 이야기를 하며 땅만 보고 가다가 바스락 소리에 놀라서 흠칫 쳐다보니 암스프링벅스가 풀을 뜯고 있었다. 곱기도 하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요엘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준다.


"엄마 조용히 해야 돼요. 안 그럼 쟤 도망가."


오래 관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한참을 쳐다보면서 저게 여자일까 남자일까를 늘어놓더니 풀 먹어야 되니까 그냥 두라고 말한다. 그렇지 밥 먹는 게 참 중요한 일이지. 엘이의 말대로 사진만 얼른 찍고 조용히 사부작거리며 곁을 지나왔다. 뿔이 없는 건 암컷, 뿔이 있는 건 수컷이다.



지난번 한국행을 했을 때 남편과 둘째 다엘이는 알레르기 검사를 했었는데, 가장 심하게 나온 결과가 우산잔디, 갈대류였다. 그러니까, 풀 알레르기라는 건데 이 풀 많은 남아공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정도였다. 평소에도 재채기 돌림노래가 집안에서 울려 퍼지는지라 풀이 많은 산은 쥐약이다. 평소 생활할 때뿐 아니라 갈대 충만한 이 산을 다녀올 때 어떤 때는 괜찮고 다른 때에는 비염이 시작되어 훌쩍거리기 바쁘다. 가끔은 미리 알레르기 약을 먹고 가기도 한다. 오늘은 약은 미처 챙기질 못했다. 아이러니하고 감사하게도 오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도 비염 알레르기가 있기 때문에 풀에 가끔 반응을 하는데 오늘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곳곳에 핀 예쁜 꽃들을 보니 남아공은 사시사철 꽃이 보이기는 하는 거 같다. 지금은 가을, 가을볕이 더 뜨겁다고 남아공의 가을 대낮은 Extremely Hot이다. 정말 뜨겁다. 다행히 바람이 좀 불어 그런데도 선선했다.  오늘은 어제 비가 와서 인지 땅도 촉촉하고 볕도 그리 뜨겁게 안 느껴졌다. 자연을 관찰할 수 있는 여유가 매우 소중한 순간이다. 내가 카메라를 들고 꽃을 어떻게 하면 잘 찍을까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소한 행복인지. 앙증맞게 오밀조밀 다닥다닥 모인 저 노랗고 빨간 꽃 이름이 뭔지도 모른다. 그냥 꽃은 가만히 있어도 예뻐서 그저 부럽다. 너는 좋겠다. 가만히 있어도 예뻐서.



계속 걷다 보면 곳곳에서 스프링벅스 떼를 만난다. 오늘도 어김없이 풀을 뜯고 길목을 지나가고 풀 속에 무리 지어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요엘은 조용히 하라며 당부했다. 사실 오늘 요엘과의 대화의 1/3은 동물 똥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왜 초식동물은 똥이 염소똥, 토끼똥 같냐는 이야기였다. 풀만 먹었다고 하더라도 왜 그런 똥을 싸는지 궁금한 요엘이는 온갖 동물을 다 끌어와서 질문을 해댔다. 만나는 똥마다 누구 똥이냐며 묻기 바빴다. 그래도 하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의 말 한마디가 흥미롭고 사랑스러웠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타조였는데 이곳 야생에서 사는 타조라서 항상 비슷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항상 보여주는 모습도 같다. 갑자기 요엘이 당부했다.


"엄마, 타조는 찍지 말아요. 그리고 빨리 핸드폰 숨겨요."


여덟 살짜리 꼬맹이는 타조가 엄마 휴대폰을 쪼아 가져갈까 봐 걱정 중이었다. 가끔 타조는 사람을 향해 달려들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던 탓이다. 그래서 한쪽으로 조용히 지나가 멀리서 줌인으로 사진을 찍었다. 걱정하는 아이에게 내가 너의 말을 듣고 있다고 보여줄 수 있는 건 즉각적이고도 은밀한 태도다.



약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8000걸음을 걷고 멋진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 타조 덕에 멋진 샷 하나 건졌다. 파란 하늘에 손 뻗으면 닿을 듯 한 둥둥 구름, 푸른 산과 나무 아래 길게 뻗은 황톳길, 그리고 그 길을 가로지르는 우아한 타조의 자태로 글을 마무리한다.


"엄마, 형아 누나는 안 왔고 나만 왔으니까 나만 아이스크림 사줘요!"


대단하다. 아이스크림을 위해 1시간 하이킹을 하다니.

따라나선 이유가 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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