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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07. 2023

뭐든 처음만 무서운 거야

인생도 글쓰기도 처음만 그런 거지 




방학이라 집에서 한 발자국도 밖에 안 나가는 날도 있다. 

삼 남매여서 좋은 건 셋이 함께 있어서 심심할 틈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 안 좋은 건 셋이서 자주 투닥거린다는 거다. 웃는 소리는 듣기 좋은데 누구 하나 신경질을 내고 목소리가 커지면 내 목소리가 더 커질까 스트레스가 쌓인다. 싸우지도 웃지도 않는 고요한 순간이 있는데 그 시간은 게임시간이다. 아마도 초집중을 하지 않을까 싶다. 다행히도 동네 친구들이 집 앞에 와서 이름을 불러대는 통에 집에서 게임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나의 염원이 이루어진다. 그래 제발 나가 놀아라. 어린이는 뛰어놀아야 하는 거야. 


오늘은 부르는 친구도 없고 오전 내내 각자 방에 틀어박혀 찍소리도 안 내고 조용하다. 방학인데 그래도 뭔가 아이들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까 싶어 인터넷을 뒤졌다. 그리고 적당히 할만한 것을 찾았다. 짚라인 체험장인데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처음에는 몰랐다. 생각보다 꽤 많은 곳이 곳곳에 있다. 주변 친구들 엄마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개인적으로 방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몇 년간 볼 때마다 언제 한번 아이들 데리고 가야지 했는데 그 언제가 오늘 이었다. 급하게 이야기가 나왔고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남편을 서치를 시작했다. 


"짚라인 타러 갈 사람?" 


 말이 나온 후로 30분도 못 견딘 막내 요엘이가 언제 가냐며 독촉을 했다. 이래서 보통 약속이 있거나 계획이 있을 때 미리 말하지 않는다. 분명 미리 말하면 나는 그 기한이 될 때까지 온갖 질문과 독촉을 받으며 피곤해질게 뻔한 탓이다. 지난번 한국 방문했을 때 삼촌가족과 갔던 대형 키즈 카페에서 짚라인을 경험했다. 다양한 놀이기구에 눈이 휘둥그레져 또 가고 싶다고 했다. 그 기억에 짚라인이란 글자가 있었나 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막내는 집에 가만히 있질 못한다. 당장 결정을 하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20분 거리. 생각보다 가깝다. 운동화를 신고 바지를 입고, 장갑은 가면 줄 거고 가족 4인 패키지 할인 가격으로 끊을 수 있다고 했다. 나를 제외하고 삼 남매와 아빠가 같이 체험하기로 했다. 나는 어차피 그 시간에 문장 특강을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기로 했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지도 모르고, 3G가 뜰 거란 생각은 전혀 못한 채 결국 문장 특강을 못 들어갔다. 흑흑) 문장 특강이 진행되고 있는 한 시간 동안 로그인 시도를 열 번은 더 했다. 인터넷 통신사를 바꾸던지 해야지 성질 나서 못살겠다. 남아공에서 적응하고 싶어도 적응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정전과 No 인터넷이다. 아무튼 나는 아래에서 오늘 일어나는 광경을 보면서 또 여러 생각을 했고 글감을 찾았다. 

 


키 120센티미터 조금 넘는 8세 꼬마 곁에는 12세 형, 13세 누나 그리고 아빠가 있으니 뭐가 걱정이겠냐 싶었지만 같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해도 떨리는 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기대감을 가지고 신나는 마음으로 장비를 착용하던 요엘이가 안전요원이 클립을 끼우는 방법을 설명해 주자 잔뜩 겁을 먹고 얼음이 됐다. 옆에 붙어서 한국어로 설명을 차근차근해주는데 주변에 시선을 뺏겨 두리번거리느라 정신없고 안전클립을 꽉 쥔 손에 보이지 않는 땀이 흘렀다. 


"엄마 저거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나는 너무 무서운데, 나는 저기 올라가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


시작하기도 전에 어려워 보이기만 한 클립 사용방법과 아래서 올려다보니 높은 징검다리가 당연히 무섭게 보였을 거다. 어른이 봐도 높은데 어린아이시선에서는 얼마나 높아 보일까, 

그렇게 차근히 형, 누나 뒤를 따라, 그리고 아빠가 그의 뒤를 따르며 코스가 시작 됐다. 

부푼 가슴으로 도착한 체험장에서의 시작은 손에 땀을 잔뜩 쥐고 온몸을 뻣뻣하게 만들었다. 그냥 모습만 봐도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보일 정도였다. 저러면 내일 몸살 나겠다 싶을 정도였으니까. 

아래서 위를 올려다보며 잘한다. 잘했다. 대단하다. 용감하다. 어쩜 그렇게 잘하냐의 칭찬과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는 모든 말을 다 쏟아내며 지켜봤다. 클립이 줄에 매달려 있으니 안 떨어질 거라고 해도 직접 느끼는 긴장감과 떨어질까 봐 두려운 공포심은 무슨 말을 해도 없어지지는 않을 거란 걸 잘 안다. 육감과 체감이 주는 기운이 있으니까. 나도 안다 그 쉬 마려운 기분, 

그래도 일단 올라갔으니 해내야 한다는 마음이 나에게도 요엘이에게도 있었다. 


흔들거리는 징검다리에 발을 하나씩 딛고, 휘청거리는 그네 손잡이를 잡고 조금만 잘 못 딛여도 떨어질 듯 겁이 나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요엘의 모습이 진심으로 대견했다. 위험한 상황에 되면 아빠의 도움을 받고, 안전요원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전진했다. 


아빠! 나 진짜 너무 무서워. 나 진짜 무섭단 말이야!



양쪽 줄을 꽉 쥐고 휘청이는 몸을 가누질 못해서 상공에서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선 무섭다는 말을 하면서도 계속 지속했다. 코스가 바뀔 때마다 마음을 조금 놓았다가 다시 긴장했다가를 반복하면서 아빠를 부르기도 하고 혼잣말을 하기도 하면서 발을 옮긴다. 그렇게 한 코스를 해내고 나면 언제 무서웠냐는 듯하게 웃음 지으며 뿌듯해하는 얼굴을 보니 나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무려 한 시간 반을 위에 매달려 걸었다. 코스를 다 돌고 내려오기까지 후퇴도 없었고 포기도 없었다.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의 저 정도 집념과 지구력이면 너는 앞으로도 다 하겠다 싶었다. 

무섭다고 포기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했을 거다. 그렇게 중간에 내려달라고 했으면 나는 얼른 아이를 받아 안았을 거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고 마지막 코스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자! 이제 Big zip 타러 가자!" 


이 정도를 해냈으니 그다음 코스로 갈 용기를 얻은 거다. 

더 높은 곳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는 그 희열과 쾌감을 느낄 준비를 마친 거다. 

배짱 한번 좋구나 녀석. 


집에 돌아오는 길, 집에 돌아와서 잠들까지 자신감 +100은 된것 같은 모습으로 시종일관 기분이 좋았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뿌듯했다. 




뭐든 처음은 다 어렵다. 

글쓰기도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싶고 걱정부터 한다. (쓰고나 말해라)

영어도 시작할 때는 내가 훈련하는 방법에 효과가 있을지 의심부터 한다. (시작하고 말해라)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손 놓은 지 몇 십 년이 되어서 다시 할 수 있을지 걱정이란다. 

그 말을 듣는데 자신 있게 말했다. 


"일단 그리세요! 글도 무조건 그냥 써야 되는 것처럼 그림도 그냥 그리면 됩니다." 


나도 그랬다.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결과물을 얻어내기 전까지의 아이디어를 짜내고 그려내는 과정에서 

망치면 어쩌나 초조해했다.(일단 그려라) 


우리는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한다. 

일단 시작하고 보면 뭐든 해낼 수 없는 것보다 해낼 수 있는 게 많다. 

걱정을 하는 이유는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이다. 

시작하고 나면 그 걱정하나는 사라진다.  

해본 사람이 말할 수 있고, 해본 사람이 도울 수 있다. 

먼저 해본 사람이 가장 유력한 조력자다. 

나는 가장 유력한 조력자다. 




인생도 글쓰기도 그 어떤 분야의 일도 처음에만 어렵다.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 

먼저 하고 나중 하고만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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