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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5. 2023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냐

 살아 본 적 없는 삶 

  




저는 10년간 한국에서 보육교사를 했었고, 남아프리카에 선교사로 왔습니다. 6년 전 처음 땅을 밟았을 때, 부푼 기대를 안고 왔었죠. 남아공에서 유치원을 세우고 교사교육과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 있거든요. 그러나 그 계획은 철저히 사람의 계획이었으며 생각이었습니다. 전부 다 어그러졌어요. 예상치 못했던 문제들을 만났습니다. 순조롭게 될 리가 없었어요. 남아공에 온 목적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거든요. 하지만 이 먼 땅에 보내신 데는 다 뜻과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적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남아공에서 적응하고 비자해결하는데만 쏟은 시간이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근근이 살아가게 하심에 놀라울 뿐이었어요. 그러다 코로나가 터졌고,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 때가 떠오릅니다. 흑인 마을도 교회도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에 남편도 저도 무척 힘들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계발에 몰두했고 책을 쓰고,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버텼습니다. 힘들었지만 이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제게는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시간입니다. 



  매주 화요일에는 흑인 마을로 키즈 특별 프로그램을 하러 갑니다. 보육원 정도의 건물을 생각하고 준비 중입니다. 흑인 마을 안에 작게나마 유치원을 가지 못하고 무료하게 집에서 보내는 미취학 아동 대상으로 교육을 계획 중입니다. 시범 프로그램으로 현재 주 1회만 방문하여 교사 교육 및 아이들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영어로 교육을 시키려니 어려움이 조금 있습니다. 말은 통하지만 그들은 부족언어와 영어를 같이 쓰고, 저는 한국어와 영어를 같이 쓰니 서로 유창하지 못한 영어로 시원시원한 의사소통이 안되기도 합니다. 콩글리시로 말해야 더 잘 알아듣기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자주 연출됩니다.  오늘 글을 설명하기 위한 서론이 길었네요. 배경이 있어야 해서 말입니다. 


  아무튼 매주 화요일에 프로그램을 하고, 매주 교사 교재와 아이들 교구, 활동지 재료 그리고 간식을 준비합니다. 오늘은 내일 활동 준비물이 마카로니와 모루를 준비했어요. 마카로니의 작은 구멍으로 줄을 넣어서 소근육 활동을 하는 동시에 예쁜 목걸이를 만들어 목에 걸고 집에 돌려보낼 생각입니다. 사실, 마카로니가 치킨집이나 호프집에서 잘 주는 한국 뻥튀기 과자 마카로니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이곳에서는 팔지 않아요. 가끔 한국 상점에 들어오지만 항상 있지 않습니다. 보일 때 사둬야 하는 상황인데 미처 확인을 못한 거죠. 아이들이 활동하면서 손도 입도 즐거우려면 먹을 수 있는 걸로 해야 하는데 몹시 아쉽습니다.  짱구 같은 과자면 또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비싸요. 많이 사기에는 재료적인 측면에서도 꽤 들어갑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파스타용 마카로니였죠. 오늘 마트에서 적절한 것을 찾다가 먹을 음식이 아니라 저렴한 것으로 사서 왔습니다. 


 재료를 사러 가기 전 남편과 준비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어디로 갈지 고민을 했죠. 이곳은 한국처럼 마트 한 곳에 전부 다 재료가 있지 않아서 각 마트별로 여러 번 다녀야 합니다. 이왕이면 살 물건이 전부 있는 곳을 찾아가는 게 현명하죠. 


"나 내일 마카로니 사야 해. 한국 과자가 딱인데, 아 없네. 그냥 마트 가서 마카로니 사야겠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편이 소리칩디다.


"안돼!! 먹는 거 가지고 그러는 거 아니야!" 


엥? 뭐가 안된다는 걸까요? 순간 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 반응은 뭐냐는 듯한 따가운 눈초리로 쏘아봤죠. 


"안되긴 뭐가 안된다는 거야? 그거 교구야. 먹는 거 가지고 아이들이 다 오감 활동하고 그러는 거야. 음식 재료라 아까울 수도 있지만 교구로 쓰고 그래.  원래 목적은 음식 거부하는 아이들한테도 친화적 교구로 쓰는 것도 있지!"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차 안에 조용해졌어요. 그러다 남편이 입을 열었습니다. 


"얘네들한테는 그게 귀한 음식인데 그걸로 놀이를 해도 되는 건지 몰라서 그래서 그렇지." 


 지난번에는 밀가루로 점토 만든다고 그렇게 잔소리를 하더니 이번에는 파스타면으로 한다고 잔소리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더라고요. 


 저희가 가는 지역이 흑인 지역 중에서도 빈민 촌이고, 불법 지역이라서 생활수준이 힘든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의 정확한 소득과 생활수준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가난합니다. 차비 5000원이 없어서 시내에 못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매일매일 어떻게 먹고사는지도 신기하기도 합니다. 다들 어떻게든 살아내긴 하겠지만 남편 말도 일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최대로 저렴한 2000 원남짓 하는 마카로니로 골라서 딱 놀이에만 쓰기로 했지요. 




정말 그렇게까지 힘든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래요. 삶이 힘듭니다. 전기도 잘 안 들어와 불법으로 끌어다 씁니다. 물이 모자라 썼던 물 가족 다 돌려쓰며, 빗물에 세탁하고 세탁기 없어서 손빨래하고, 샤워는 며칠씩 하지도 못해도 그냥 그들의 삶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매주 그곳을 가면서 보는 풍경과 그들의 삶을 보면 음악, 술, 음식, 춤만 있으면 신나 보입니다. 과일 하나 먹으면서 행복해하고, 포옹한 명 해주면 열명이 와서 안겨요. 장난감 하나 없어도 흙이랑 돌멩이, 나뭇가지 주워 놀이하고요.  


지난주 주일에 한 아이가 저희 남편에게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집에 살아요? 어떤 집에 사는지 궁금해요. 돈은 어떻게 버나요? 뭐 먹고살아요?" 


이런 질문 속에서 우리는 부자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수준의 삶을 사는데, 

어떻게 보면 이곳에서 잘 사는 사람들의 축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삶을 사는데,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도 본 적도 없는 그곳 사람들과 아이들은 다른 인종인데 이곳에 와서 사는 우리가 얼마나 궁금할까. 도대체 어느 정도로 살길래 와서 우리를 도와줄까 생각하겠죠. 

저는 저보다 잘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내가 살아본 적 없는 집, 누려보지 못한 삶을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기분이 어떨까 말이죠. 그들이 고작 우리 삶을 궁금해하고 부러워하는 것처럼요.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습니다. 물론 삶의 질은 차이가 나요. 날 때부터 금수저인 사람들 보면 부러워요. 나는 왜 못 그랬을까, 나는 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주지 못했을까, 그런 것에 집중하다 보면 끝도 없이 땅 파고 들어갑니다. 그렇지만 가진 것에 집중하다 보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의 척도는 많이 가졌는지 적게 가졌는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것이 팩트입니다. 많이 가진 사람도 문제없지 않거든요. 사람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늘 더 나은 삶을 추구하죠. 


돈이 많아서 도와주는 게 아닙니다. 부자가 아니에요. 때마다 부어주시는 은혜 아니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저 오늘에 감사하고, 주신 것에 만족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꺼이 도울 수 있는 마음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있는 것에 집중하면 됩니다. 

무엇이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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