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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0. 2021

섭섭심리

마음의 거리는 관계의 거리

누군가 다른 사람의 반쪽이 되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완전한 인격체이다. -앤드류 매튜스-




"미안해. 나도 가고 싶은데, 거기 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 보고 싶은데~" 


내가 살았던 지역보다 더 먼 곳으로 여행은 가면서, 내가 있는 곳은 멀어서 못 온다 했던 말은 진짜였을까 가짜였을까? 마음이 있는 곳에 보물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보물은 내가 아니었나보다. 가끔씩 그 때가 떠오른다. 혼자 지방으로 떨어져나와 첫 아이를 낳고 오도가도 못하며 버거운 삶을 살았을때, 반쪽이었던 친구는 한 동안 같은 말을 했다. 기억력이 쓸데없이 좋았던 나도 나이가 드나 보다. 가끔 깜빡깜빡한다.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 기억들은 딱 그자리에 박혀 자리잡고 쉬 잊혀지질 않는다. 




관계에 대해서 자주 곱씹는다. 어렸을 때 부터 관계는 힘든 문제였다. 잘 지내다가도 한번 씩 생기는 문제는 내 맘을 심히 괴롭혔다. 오해를 자주 받았고, 친구들과 사이에서 갈등했으며, 관계때문에 죽고 싶었던 날도 있었다.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슬퍼할까? 라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 어린 나이부터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관계 때문에 울고 웃은 날이 많았다. 나는 적을 만드는 걸 싫어한다. 적을 만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관계에 가끔 적이 생긴다. 그 이유는 물러 터져 착한 아이 컴플렉스였던 내 성격 탓도 있었던 것 같다. 10대는 물론, 20대와 30대에도 친구가 소중했다. 물론, 나이가 먹어갈 수록 친구의 소중함,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멀리 떨어져나와 타향살이를 하다보니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탓도 있을거다. 누군가와 함께 했던 장소와 시간, 순간을 추억한다. 하지만, 결혼과 육아는 소중했던 친구들과의 거리를 만들었다. 개인적인 특수한 환경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육아가 전부였고, 육아가 힘들었다. 새벽 같이 나가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 하루 종일 아이와 씨름해야 하는 내 상황에 늘 버거웠다. 시간 단위로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아이를 들쳐안고 기차를 타고 2~3시간 가야 하는 거리는 생각도 못했다. 내 상황을 이해해주지 않는 냉정한 친구들의 반응에는 서운함이 가득했다. 그들도 이유가 있었겠다싶지만, 왜 그리 나한테만 냉정했는지 아직도 궁금하기는 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그럼 그 곳에 내 보물이 없었나 싶은 모순감이 들기도 하는 순간이다. 


뭐, 그래도 계속 이야기 하자면, 

10대 초반에는 학교친구가 좋았고, 10대 후반에는 교회친구가 전부였다. 20대는 거의 직장동료 아니면 교회 친구, 선후배와의 시간을 보냈다. 대학 친구들은 아주 가끔 시간이 될때만 만났다.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에는 자주 가지 못했다. 아직도 그 시간이 못내 아쉽다. 여전히 가끔씩 연락을 주고 받지만, 벌어진 틈을 좁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성향이 뭔가 하나에 집중하면 다른 것들을 동시에 하기가 어렵다. 

아니, 다시 말하자. 어느 하나의 관계에 집중하면 다른 관계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일에 있어서는 멀티플레이가 되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멀티 플레이어가 되지 못했다. 관계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놓친 관계도 있었고, 오해도 받았다. 매년 단짝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때, 아니 국민학교때, 중고등학교때, 학교에서, 교회에서도 단짝 친구가 있었다. 단짝 친구와 함께 공유할 것이 많아질 수록 관계는 더 깊어졌다. 나이 먹으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반쪽친구와는 꽤 많은 시간을 공유했다. 그렇지만, 그 관계는 조각이 날때 산산히 부서졌다. 부서졌지만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다니는 기분이다. 기대감이 커서였을까, 기대감이 큰 만큼 실망이 컸었나보다.


양쪽이 똑같은 예쁜 모양의 하트를 온전하다고 말한다면 그 하트는 여태 금도 갔다가 반창고를 붙였다가 찌그러졌다가 펴졌다가 한다.반쪽이라는 의미는 온전한 하나의 원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뉜 모양, 온전한 하나의 하트에서 정확히 반으로 나뉜 모양을 말한다. 남편과의 관계는 평화롭고 좋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그렇게 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반쪽이 된다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일까, 별의 별 생각을 다 해본다.


관계의 거리는 늘 지켜져야 한다. 분명 친구와의 거리는 1미터였다. 그런데 그 이후 5미터가 된 줄도 모르고, 나혼자 1미터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썼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게 밀려 들어온 섭섭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나의 1미터, 3미터, 5미터의 거리는 누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상대방과의 거리는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거리에 어울리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간에도 지켜져야 할 거리가 있다. 1미터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5미터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대하듯 하면 섭섭한 마음이 들거다. 10미터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1미터 거리에 있는 사람처럼 행동하면 적잖케 당황할 거다. 관계에 있어서 실수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리를 급하게 좁히려는 노력도 하지않아야 하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관계에 대한 시각이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관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는 밤이다. 

지혜롭고 건강한 관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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