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숯불갈비를 타고,
“나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배부르게 먹고 싶은 만큼 많이 먹거라.”
30년 전 내가 꼬꼬마였을 시절,
우리 식구는 아주 가끔 태릉 갈비촌에 갔다. 어쩌다 한번 외식하는 날이면 벽에 붙은 메뉴와 메뉴판의 메뉴보다 가격을 먼저 보면서 뭘 먹을지 골라야 했던 춥고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돼지갈비인 줄 알고 주문한 고기는 소갈비였다. 제 막 입에 고기 넣기 시작했는데 가격을 확인한 아빠는 먹었던 것까지만 먹고 나가자고 했다.
추운 겨울, 외투를 주섬주섬 주워입고 나오면서 난감해하던 아빠의 표정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 당시엔 다 으레 비싸면 더 먹고 싶어도 못 먹고 나오나보다 했다. 근면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을 놓은 적이 없다. 과일 장수, 달걀 장수, 원단 재단, 택시기사, 이삿짐, 도비, 컨테이너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몸을 한 시도 가만두질 않으셨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정직하게 벌어서 가족들에게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제법 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 한 끼 할 법하지만, 조금이라도 많이 내야 하는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음식 대접 한 번 해드릴라치면, 비싸다며 손사래친다. 지금은 먼 이국땅에서 사는 자식들 돈 없어 굶지는 않을까, 손주들 장난감이나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과자 못 사 먹을까 한 번씩 돈을 보내 준다.
결혼 후 떨어져 살 때, 한 달에 한두 번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전화를 했다. 다른 메뉴 말고 ‘고기’ 말이다. 그 때마다 아빠는 꼭 1-2인분씩 더 주문을 했다. 배가 불러서 더이상 못 먹겠는데도 꼭 모자란 것 같다며 더 먹으라고 막 밀어붙였다.
“나, 이 정도 고기 사줄 돈 있다. 많이 먹거라.”
아빠는 사랑을 늘 음식으로 표현했고, 지금도 그렇다.
"엄마가 뭐 맛있는거는 해줬어? 뭐가 제일 먹고 싶을까 우리 강아지들?"
아이들과 영상통화할 때 꼭 빠지지 않는 멘트다. 당신 입을 것 먹을 것보다 자식들, 손주들 입에 넣을 것에 더 마음 썼던 아빠의 마음이 숯불갈비를 먹을 때마다 떠오른다. 나이 먹고 옆에서 효도해야 하는데 외국 생활하느라 함께 못 해 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가득한 밤이다.
아빠! 한국 가면 고기 먹으러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