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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Jul 13. 2021

잇츠 낫 어 그랜파

소심한 편견



오늘 낮 차를 타고 외출하는 중이었다. 

우회전하여 커브를 트는 순간 , 왼쪽 보도블록 위로 희끗희끗한 회색 머리카락인 백인 남자와 머리를 질끈 묶은 백인 여자아이가 자전거를 나란히 끌고 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랑 자전거 타러 나가나 봐, 겨울인데 반팔에 반바지네 역시 백인!" 


남편이 말했다. 


"아빠 아니야? 아빠 일 수도 있지. 백인인데 머리카락이 흰색이나 회색이지 않을까? 아빠 같은데." 


"아 그런가?" 


차 안에서 우리들만의 썰전을 벌였다. 남아프리카에 겨울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예스 오브 콜스! 

당연히, 있다. 다만 2개월 정도의 짧고 뼈 시린 추위가 지나면 조금 추위는 누그러지고, 봄 같은 날씨가 지속된다.  진짜 할아버지든, 아빠이든 우리가 알바는 아니었지만, 궁금했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나는 현지인들은 나이 가늠하기가 어렵다.


"손녀랑 자전거 타러 가시나 봐요?" 


혹여나 길에서 마주쳐 쓸데없이 말 걸었다가 할아버지가 아니라 아빠였다면, 그 당혹스러운 실수를 어떻게 만회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달아오른다. 코로나 시대, 마스크를 한 채로 걸어가다가 만나는 사람들에겐 짧은 인사 외에 다른 말하는 것도 실례 같다. 쇼핑몰 외에 길을 걸어 다닐 일도,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일도 거의 없다. 한국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부터 너는 몇 살이니 나는 몇 살인데 하며 서열을 매기는 게 너무 자연스러웠다. 호칭을 정리하기도 편하고, 비슷한 연배일 때는 좀 더 친근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아공 생활이 4년 차, 아이들은 가끔 놀이터나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에게 너는 몇 살인지 묻는다. 보통 학급에는 제 나이에서 아래 위로 섞여 한 학년에 3개의 나이가 존재하곤 한다. 예를 들면 1학년 학급에는 7,8,9세 아이들이 함께 있다. 가끔은 더 나이 많은 아이들도 있다. 여행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학교를 쉬었다가 다시 다니기도 한다.  


"학교 다니다 죽느니, 그냥 유급시킬래요. 건강 잃으면 무슨 소용이에요." 


이번 코로나 사태로 학교 휴교가 처음 연장되었을 때, 대부분의 엄마의 반응은 비슷했다. 특수한 상황이지만, 일반적으로도 학교 유급에 있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에 나온 뒤로는 서로 나이를 묻는 일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상대방의 나이와 상관없이 관계를 맺는다. 나이가 많든 적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열 살이상 차이나는 분들과 관계를 맺어 왔기에 나이는 관계에 큰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50대 정도인 줄 알았던 아주머니는 70대 할머니였다. 40대쯤 되었겠거니 했던 사람은 20대 청년이었다. 당최 나이 가늠이 어려운 현지인들을 보면서 이제는 나이는 그렇게 궁금하지도, 묻지도 않게 되었다. 그저 그 어느 즈음이겠거니, 

솔직히 빠른 년생을 따졌던 내 시대만 해도 누군가 나이를 물으면 꼭 저는 빠른 년생인데요,라고 말 어두를 붙였다. 빠른 년생으로 1년 빨리 입학해 친구들 대부분이 나보다 한 살 많았기에 원래 동년배인 친구들에게 야, 자, 소리가 듣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학에 진학하는 나이도 상관없는 지금 시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나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기도 하다. 사회에 나오면 한 살이든 두 살이든 마음만 맞으면 금방 친구가 된다. 지금은 한 살이라도 어린 게 좋다. 젊게 살고 싶다.




사람은 첫인상이 중요하다. 대부분 사람을 겪어 본 후 첫인상이 무너지는 경험도 많이 했지만, 첫인상이 평생을 가기도 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풍길지 궁금하기도 하다. 때론, C에게 전해 들은  B에 대한 이야기나 인상이 B의 첫인상을 결정짓기도 한다. 그럴 때면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예상보다 이런 일이 왕왕 있었다. 


"얘는 그렇게 안 생겼는데, 되게 설렁설렁하네. " 


신혼 초, 시어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어떻게 생겼던 걸까? 깐깐하고 꼼꼼하게 생겼다고 보셨을게다.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모든 분야에서 그런 건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한참 동안 내가 뭘 잘 못했나 생각했다. 

외모에서만 풍기는 이미지에 성격이 보기도 한다. 생활 습관까지 어떨 것이라고 내다보며 단정을 짓는다. 인상과 너무 다른 성격에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오히려 반전 매력에 빠지기도 한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는 삶을 살고 있다. 


글을 쓰기 시작 한 뒤로, 글에 담기는 내 생각과 글투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지도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럼 더 무거워질 테니  일단 이만큼으로 일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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