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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2. 2023

오기와 걷기

 훗날 돌아볼 나의 오기에게 





다이어트는 숙원사업이다. 어떻게 하면 불 필요한 지방을 걷어낼 수 있을지 늘 생각한다. 예전에는 다이어트 강박증 비스므리한 게 있었다. 일부러 적게 먹고, 골라 먹고, 가려 먹었다. 그 탓에 엄마랑 음식 전쟁이었다. 엄마는, 먹어라. 먹어라. 제발 좀 더 먹어라. 나는, 싫다. 안 먹는다. 그만 먹는다. 배부르다. 시간이 늦었다.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엄마 애를 태웠다. 그때는 몰랐다.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들이 음식을 안 먹으면 속상하다. 배고프다고 음식을 더 달라고 하면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내 얼굴에 화색이 돈다. 자식이 잘 먹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 실제로 배부른 느낌이 아니 그 배부른 감정을 느껴 느낀다.



청소년기 거울에 비친 통통한 모습은 늘 남들과의 비교 선상에 놓였다. 비교 없는 세상은 없나, 나는 왜 그렇게 비교의식에 시달렸을까 뭣이 중헌데. 물만 마셔도 살찌는 거 같다는 말, 그거 내가 한 말이다. 날씬한 A도 B도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럴까, 운동도 2배로 했던 때도 있었다. 그럼 더 빨리 빠질까 싶어서였다. 그렇게 청소년 시기를 지나고, 청년이 되었을 때도 1년 내내 따라다는 이슈는 다이어트였다. 


결혼 전에 만났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가 내 나이 23세였다. 꽃다운 나이. 

오후 당직이라 일하던 어린이집에 와서 퇴근을 기다리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뜬금없는 팩트폭력을 날렸다. 


"나는 네 다리가 너무 두꺼운 거 같아. 사실은 네가 내 이상형에 가깝지는 않아." 


이게 무슨!!!! 돼지호랑말코 같은 소리냐만은, 그 말이 가슴에 날아와 비수 같이 꽂혔다. 

그날 나는 뒷 트임 청 스커트를 입고, 어깨끈 대신 목에 끈을 둘러 묶는 디자인의 핑크색 체크 블라우스를 입었다. 그날 만날 걸 알았기에 나름대로 신경 쓴 옷차림이었다. 남자친구는 정리하는 내 뒷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되지도 않는 말을 던졌다. 혼자 중얼거리던 속 마음이 밖으로 튀어나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덤덤한 목소리였다. 그날 집에 오는 길에 펑펑 울었다.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집에 와서 울면서 친구에게 전화해 볼멘소리를 했다. 


좋아했던 사람, 심지어 내 '남자친구'가 막 되었을 무렵이었다. 내가 좋아서 만난다고 했다. 말 그대로 보면 싫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지만 외모 평가 비하에, 자기의 이상형이 아니란 말은 대체 왜 나를 만나나 싶은 생각으로 몰았다. 지나치게 솔직했던 그의 대답에 대체 만남이 옳은 만남인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좋아하면 똥배도 사랑스럽고, 사랑하면 그 외모가 어떠한들, 무슨 행동을 한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게 사랑 아닌가, 


주변에서 말렸다.


"야, 그게 무슨, 야야, 갖다 버려! 걔는 아니야. 나는 걔 뒤태만 봐도 알아. 걔는 니 짝이 아니야." 

"너를 진짜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외모 평가? 말이 되니? 네가 어디가 어때서?" 

"미친 거 아니야? 지는 얼마나 잘났다고, 너 좋다는 사람 많잖아! 뭣하러 그런 새끼를......" 


난리가 났었다. 그 말을 듣고 펑펑 눈이 붓다 못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속상했지만, 그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매일 출퇴근 길을 걸어 다녔다. 버스를 타지 않고 걸었다. 집에서부터 걸어서 약 한 시간 거리의 직장을 걸어 다녔다. 어떤 날은 출근은 버스를 타고 퇴근은 걸었다. 다른 날은 출퇴근 모두 걸었다. 그렇게 하려면 아침 일찍 나와야 했다. 우린 약 3년을 헤어졌다 만났다를 반복하다 결국 헤어졌다. 


그 누구도 나에게 뚱뚱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늘 보통에서 마름으로 가고 싶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소망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네 다리가 너무 두꺼운 거 같아. 사실은 네가 내 이상형에 가깝지는 않아."는 내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 덕분에 나는 악착같이 걸었고, 또 걸었다. 덕분에 당시 약 3 킬로그램의 체중을 감량했고, 걷는 게 습관이 됐다. 


걷다 보니 생각하게 되고, 걷다 보니 주변이 보였다. 

걷다 보니 소리가 들렸고, 걷다 보니 몸이 반응했다.  


지금도 걷는 걸 좋아한다. 남아공에서는 일부러 걷지 않으면 걸을 일이 없기에 아쉽지만, 산에 하이킹이라도 갈 때면 한 시간도 두 시간도 걸을 수 있다. 




좋아하는 일을 매일 했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데 잘 못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 매일 했다. 그림 그리기, 영어 훈련이 그랬다. 즐기기도 하지만 무겁기도 한 일이었다. 안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냥 매일 했다. 하다 보니 여태까지 해온 날짜를 깨뜨리기가 아쉬워서 계속 한 날도 있다. 오기로 했다.  그렇게 지속하니 몰랐던 재능을 발견했다.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다. 


처음에는 글쓰기도 어려웠다. 지금도 글쓰기는 시작할 때보다 쓰는 순간이 더 좋기는 하다. 때로는 흰 종이를 펼칠 때 미루고 싶을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쓰다가 막히면 잠시 그대로 두고 다른 일을 한다. 그래도 다시 이 자리로 돌아와서 이어간다. 


잘 못하는 분야나 해도 잘 안 되는 분야가 있다. MBTI에서 ISFJ의 성향 중에 "응. 실수 안돼! 다시 돌아가!"의 대목이 있다. 영어 훈련을 하다가도 어느 단어에서 발음이 안되거나 끊기고 발성이 제대로 안 나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시작한다. 녹음 파일은 어느새 10개, 50개, 100개가 넘을 때도 있다. 그렇게 줄을똥 살똥 훈련해서 지금까지 왔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나 못한다고 다시 하라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 내가 꼭 해내리라는 큰 오기를 가지고 훈련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오늘은 글이 안 써지는 날이다. 어제저녁 무료 특강을 끝냈고 글을 끄적이다 반도 못 채우고 잠들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해야 할 일이 많이 떠오르는데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시간은 새벽 1시 반. 그냥 덮고 잠자리에 들었다. 보통 30분에서 한 시간 사이에는  마무리가 다 되고도 남아야 하는데  지금 반나절 째 붙잡고 있다. 


글도 방향을 정해놓고 쓴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쓰려고 했던 방향에서 다른 방향으로 틀어지는 날도 있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더 좋은 생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다른 시각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글쓰기는 즐겨야 맞다. 그냥 집안일하듯 물 흐르듯 편안하게 내 생각과 경험과 이야기를 풀어 나가면 된다. 그런데 즐기지 못하는 날도 많다. 잘 안 되는 날이 있다. 그럴 땐 그냥 이말 저말 쓰다 끝내도 된다. 그냥 어쨌든 분량을 채우기 위해 오기로라도 손끝을 키보드에 두고 두드려 나가면 된다.


오기로 걸어서 살을 뺐던 경험이 있다. 

오기로 공부하고 훈련해서 영어 코치가 됐다. 

그 외에도 어떻게 보면 끈기였고 어떻게 보면 오기였던 노력과 똥고집이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을게다. 


오늘은 한 편을 채우겠노라 오기로 글을 붙잡고 있다 마무리한다. 


오기란 능력은 부족하면서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다.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생각에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어떤 일을 성취하기에 훨씬 유리하다고 본다. 만약 상황 판단력도 능력도 없이 오기만 있다면 처참한 결과를 낳을 게 뻔하다. 오기의 정의처럼 남에게 지기 싫어서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내가 내리는 정의에는 스스로에게 지기 싫은 마음도 있다. 


 40 평생을 살아오면서 잘못된 판단과 되지도 않는 능력으로 오기를 부려 혼나기도 했다. 목적 없고 욕심과 혈기에 가득한 오기는 나를 살릴 수 없다. 나는 나를 살릴 수 있는 일에 오기를 가지고 살아볼까 한다. 비록 지금은 미약하지만 지금의 오기에게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너 참 잘했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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