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는 그래도.
오늘 낮에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맞장구쳤다.
이런 대화를 한 게 마침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나자마자였다. 생각이 흐름을 훅 따라갔다.
엄마라서 행복했고, 엄마라서 불행했다.
한때 육아가 몹시 힘에 부칠 때 나도 했던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육아에 메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나는 너처럼 남편만 보고 살 수 없거든."
신혼 초, 사이가 틀어져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가 생각나 용기 내 전화했다. 마음을 풀자 연락했던 수화기 너머에선 뼈 때리는 말이 들렸다. 그녀의 말이 처음에는 어떤 의도였는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의 무능함 혹은 관계를 비꼬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사이가 멀어졌던 탓이다. 괜히 연락했다. 불쾌한 감정이 뒤늦게 밀려왔다.
반면, 그 말을 듣고 나는 일 평생 남편만 보고 살려고 결혼을 했나 생각했다. 적어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도 그만두고 외지에 떨어져 살면서 주변에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 대체 나는 왜 그때 결혼 하고 싶었지? 를 곱씹었다.
지금 내 나이 40대 초반, 결혼 안 한 싱글 친구들도 꽤 된다. 심지어 내가 중학교 때 노처녀로 불리던 선생님은 아직도 솔로다. 애인은 없지만 가끔 원하는 사람 만나고, 주변에 아이들 다 키워 놓고 여유가 있는 친구들과 아무 때나 만남을 갖는다. 만족스러운 직업에 경제적으로도 나름 풍요로워 보인다. 하나뿐인 조카에게 시즌마다 선물을 자유롭게 해 준다. 또 다른 남자분은 교회 초등부 때도 노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혼자 산다. 돈을 많이 버는데 쓸 곳이 없어서 주변 아이들에게 매주 간식과 밥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참 이상하게도 여자는 나이 먹고 혼자 살아도 쓸쓸해 보이지가 않는데 남자는 중년의 나이에 혼자 살면 왜 그리 외로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 노총각 선생님은 모태솔로였다. 지금은 잘 계실는지.
요즘은 결혼을 못했던 안 했던 옛날과는 시선도 다르고 인식도 달라졌다. 흉도 아니다. 그저 선택이다. 요지는 가끔은 남편도 아이도 신경 쓰지 않고 싶다. 삼시 세끼 다섯 그릇, 빨래거리도 다섯 몫, 청소도 다섯 몫이다. 방 청소하고 이불 빨래만 해도 세 번은 해야 한다. 둘도 아니고 다섯 명 몫의 집안일이 힘에 부칠 때는 그런 생각을 한다. 종종.
필요할 때 온전히 내 시간에 모든 걸 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매일은 아니다.
아주,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루 루틴에 아무런 방해꾼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일하다 원하는 때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렇게 살았을까?
무척 자유했을까?
오로지 그런 면에서의 생각이다.
그 어떤 것도 겪어보지 않은 삶이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 보다 행복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인생은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책임을 나에게 있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은 내가 그려나가는 거다.
내일을 위해, 3년 후, 5년 후의 내 삶을 위해 지금의 나는 현실에 충실하기를 택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언제 크나 싶었던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다.
첫째의 키는 나만하고, 둘째도 곧 따라잡을 거다. 셋째는 아직 멀었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나여야만 한다! 언제 크나,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때가 후회스럽다. 그 정도로 아이들의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어린 시절이 그립다. 사진에 담긴 찰나는 진심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당시의 순간은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을지라도.
아이들이 좀 자라고 보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지금도 감지덕지다.
남편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좋다.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어 좋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어 감사하다.
공부하고 훈련할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에게 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보람차다.
혈혈단신 여행도 갈 수없고, 잠시 한국에 다녀오고 싶어도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다.
내 손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집안의 구석구석의 일도 있다.
엄마가 채워줘야 할 구석구석이 있고,
돕는 배필의 역할로 아내로 지지해야 할 구석이 있다.
여전히 하루 전체 시간을 나만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다 쓸 수는 없지만 감사하다.
결혼이 족쇄가 되기도 하고 날개를 달아 준다고도 한다.
부자 남편을 만나지 못했고, 쥐뿔 아무것도 없는 남편을 만났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시작을 했지만 늘 사랑과 감사로 채운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예쁜 토끼 같은 은다요 삼 남매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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