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4. 2023

삼십을 넘겼다면 결혼 안 했을까

 지금의 나는 그래도.




오늘 낮에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내가 스물일곱에 우리 남편을 만났는데, 당시 시어머님이 나한테 '우리 아들 만나지 말고 다른 사람 만나세요'라고 했었거든! 근데 그때는 그게 나 싫다는 말인지 몰랐지.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것도 안 들리고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니까 나는 결혼해야겠더라고, 그렇게 3년을 만났는데, 서른 살이 되니까 시어머니가 결혼을 해달라는 거야. 뭐 시어머니 말 때문에 결혼을 한건 아니지만 막상 결혼하라고 하니까 내가 굳이? 하면서 안 하고 싶더라고요. 신기한 게 서른이 되니 결혼 안 해도 살겠더라고, 나 돈 잘 벌지, 친구 마음대로 만나지, 뭐 내 맘대로 시간 쓰고 나만 신경 쓰고 부모님 챙겨드리면 되니까 결혼 안 해도 되겠더라고!"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맞장구쳤다.


"어머! 그럼 저도 스물일곱 살에 결혼했거든요! 그때만 해도 스물일곱, 여덟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데 아주 약간 빠른 감은 있지만 대부분 그즈음에 많이들 했던 거 같아요. 친구들 가니까 나도 마음이 막 급해지더라고요. 그렇다고 결혼을 서두른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스물일곱에 결혼을 했네요. 남편 만난 지 6개월 만에요! "


이런 대화를 한 게 마침 은유 작가의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나자마자였다. 생각이 흐름을 훅 따라갔다.

 

엄마라서 행복했고, 엄마라서 불행했다.


한때 육아가 몹시 힘에 부칠 때 나도 했던 생각이었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육체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육아에 메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내 신세가 처량했다.


"나는 너처럼 남편만 보고 살 수 없거든."


신혼 초, 사이가 틀어져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친구가 생각나 용기 내 전화했다. 마음을 풀자 연락했던 수화기 너머에선 뼈 때리는 말이 들렸다. 그녀의 말이 처음에는 어떤 의도였는지 몰랐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도 같았다. 나의 무능함 혹은 관계를 비꼬는 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사이가 멀어졌던 탓이다. 괜히 연락했다. 불쾌한 감정이 뒤늦게 밀려왔다.  

반면, 그 말을 듣고 나는 일 평생 남편만 보고 살려고 결혼을 했나 생각했다. 적어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랬다. 일도 그만두고 외지에 떨어져 살면서 주변에 의지할 사람은 없었다. 남편만 바라보고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때, 대체 나는 왜 그때 결혼 하고 싶었지? 를 곱씹었다.  


지금 내 나이 40대 초반,  결혼 안 한 싱글 친구들도 꽤 된다. 심지어 내가 중학교 때 노처녀로 불리던 선생님은 아직도 솔로다. 애인은 없지만 가끔 원하는 사람 만나고, 주변에 아이들 다 키워 놓고 여유가 있는 친구들과 아무 때나 만남을 갖는다.  만족스러운 직업에 경제적으로도 나름 풍요로워 보인다. 하나뿐인 조카에게 시즌마다 선물을 자유롭게 해 준다. 또 다른 남자분은 교회 초등부 때도 노총각이었는데 지금까지 혼자 산다. 돈을 많이 버는데 쓸 곳이 없어서 주변 아이들에게 매주 간식과 밥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참 이상하게도 여자는 나이 먹고 혼자 살아도 쓸쓸해 보이지가 않는데 남자는 중년의 나이에 혼자 살면 왜 그리 외로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그 노총각 선생님은 모태솔로였다. 지금은 잘 계실는지.


요즘은 결혼을 못했던 안 했던 옛날과는 시선도 다르고 인식도 달라졌다. 흉도 아니다. 그저 선택이다.  요지는 가끔은 남편도 아이도 신경 쓰지 않고 싶다. 삼시 세끼 다섯 그릇, 빨래거리도 다섯 몫, 청소도 다섯 몫이다. 방 청소하고 이불 빨래만 해도 세 번은 해야 한다. 둘도 아니고 다섯 명 몫의 집안일이 힘에 부칠 때는 그런 생각을 한다. 종종.   

필요할 때 온전히 내 시간에 모든 걸 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매일은 아니다.

아주, 아주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하루 루틴에 아무런 방해꾼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면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일하다 원하는 때 여행도 가고, 친구들도 만나고 그렇게 살았을까?

무척 자유했을까?

오로지 그런 면에서의 생각이다.

그 어떤 것도 겪어보지 않은 삶이기에 장담할 수는 없지만, 지금 보다 행복했을 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인생은 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책임을 나에게 있다.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은 내가 그려나가는 거다.

내일을 위해, 3년 후, 5년 후의 내 삶을 위해 지금의 나는 현실에 충실하기를 택한다.

오늘을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내일은 없다.


언제 크나 싶었던 아이들은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다.

첫째의 키는 나만하고, 둘째도 곧 따라잡을 거다. 셋째는 아직 멀었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사람은 나여야만 한다! 언제 크나, 빨리 컸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때가 후회스럽다. 그 정도로 아이들의 그 예쁘고 사랑스러운 어린 시절이 그립다. 사진에 담긴 찰나는 진심으로 눈부시게 아름답다. 당시의 순간은 힘들고 도망가고 싶었을지라도.


아이들이 좀 자라고 보니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아직은 모자라지만 지금도 감지덕지다.

남편이랑 함께 보내는 시간도 좋다.

나의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있어 좋다.

이 땅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어 감사하다.

공부하고 훈련할 수 있어서 좋다.

다른 사람에게 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이 보람차다.


혈혈단신 여행도 갈 수없고, 잠시 한국에 다녀오고 싶어도 생각해야 할 부분도 많다.

내 손이 아니면 해결되지 않는 집안의 구석구석의 일도 있다.

엄마가 채워줘야 할 구석구석이 있고,

돕는 배필의 역할로 아내로 지지해야 할 구석이 있다.

여전히 하루 전체 시간을 나만을 위해 온전히 시간을 다 쓸 수는 없지만 감사하다.


결혼이 족쇄가 되기도 하고 날개를 달아 준다고도 한다.

부자 남편을 만나지 못했고, 쥐뿔 아무것도 없는 남편을 만났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롭지 못한 시작을 했지만 늘 사랑과 감사로 채운다.

남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예쁜 토끼 같은 은다요 삼 남매를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






남편과의 연애스토리를 담은 책
<연애세포 되살리는 알퐁소 도데의 별> 번역본+ 작가의 연애스토리 보러 가기


알라딘

http://aladin.kr/p/Uz2MA

예스 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8609922

유페이퍼

https://www.upaper.net/with3mom/1159166







 

매거진의 이전글 역시, 포기와 단념은 이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