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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May 15. 2023

Happy Mother's Day!

엄마의 날.




"Mommy~~~! Happy Mother's Day!"


"따라~ 엄마! 이거!!"


수줍게 얼른 열쇠고리 하나를 내밀곤 뒷 짐 지고 종종걸음으로 멀지 감치 걸어간다. 별이가,


"어머! 이거 언제 샀어? 어디서 났어?"


말 시키자 아까의 종종걸음보다 빠른 걸음으로 어느새 옆에 와서 섰다.


"그거, 학교에서 마더스데이라고 팔길래 용돈으로 샀어요."


"이쁘다~ 고마워. 엄마 열쇠고리 바꿔 끼워야겠네. 고마워!"


역시 딸은 다르다. 엄마한테 뭐라도 하나 못해줘서 안달인 녀석. 참 이쁘게 잘 큰다.

얘는 나 클 때보다 훨씬 착하고 예쁘게 크는 거 같다. 존재가 감사다.


"엄마! 이거!"


별이보다 더 빠른 속도로 와서 쓱 내밀고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기적 걸어 식탁 맞은편으로 가서 앉는다. 둘째 다엘이가,


역시 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게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늘 엄마가 볼에 뽀뽀한 번 해주면 좋아서 폴짝거리며 돌아가는 다엘이는 둘째라서 늘 샌드위치에 끼인 햄 같다. 그렇게 엄마가 좋은데 표현이 늘 굼뜨다.


"감동이다. 너는 언제 샀어? 근데 둘 다 열쇠고리네? "


"학교에서요. 다른 거 사고 싶었는데 다 팔렸더라고요."  

 

괜히 뒷 말을 붙였나 보다. 고맙다면 끝날 것을.


"엄마가 열쇠고리가 두 개 생겼으니까 그럼 두 개다 걸고 다니지 뭐! 고맙다. "

"그런데, 편지는 없어? "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이 주는 선물에는 편지가 빠지면 섭섭하다. 이 녀석들이 이번 생일에도, 한국 어버이날에도 남아공 Mother's day에도 편지를 빼먹었다. 마음을 전하는 일에는 역시 편지는 정석이라는 논리가 내 머릿속에 있다.


어린 시절에 편지를 참 많이 썼다.

글이라곤 편지가 전부였지만, 편지는 모든 기념일과 선물에는 꼭 함께 동봉되어야 하는 공식 같은 거였다.

고마울 때도, 축하에도, 미안할 때도 말보다는 편지로 전하는 게 더 편했다. 입으로 나오지 않는 말은 편지에 적을 때는 스스럼없이 적을 수 있어 좋았다.


어버이날, 부모님 생일에도 어김없이 편지를 썼다. 그때는 용돈을 받아도 너무 적은 금액이었고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 선물을 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중학교즈음 되었을 무렵에 엄마 아빠를 위해 돈을 내고 선물을 샀던 기억이 난다. 손수건이었다. 시장에 가서 직접 가격 비교를 해가면서 엄마 아빠에게 어울릴만한 손수건을 골랐고 예쁘게 포장했다. 그리고 편지지 살 돈이 부족해 집에 있는 노트를 뜯어 나름 색연필과 형광펜으로 편지지를 수제 작업했다. 정성스레 편지를 써서 포장한 손수건과 함께 엄마 아빠 출근 하시기 전에 방에 가서 몰래 올려놨던 기억이 어렴풋 난다.


엄마 아빠가 내 선물을 받고 어떤 말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웃음 짓고 미소 짓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당시 어린 마음에 혹여나 맘에 들어하지 않을까 봐 두근대는 마음으로.

세월이 많이 흘러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 있지만, 글을 써내려 오다 보니 내 기억상자가 열리는 기분이다.


엄마 아빠는 그때 어떤 기분이셨을까?


가끔,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위해 서프라이즈를 준비한다. 댄스, 편지 등 재롱잔치 수준의 무언가를 애써 준비했던 적이 많았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재롱도 세 배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첫째 별이가 딸이어서 그런지 동생들을 잘 구슬려서 나름 상의 끝에 짜잔 하며 보여주는 재롱이 많았다. 사람 참 그런 게, 처음에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감동 가득이었는데 횟수가 잦아지니 나중에는 속마음에 '아 또야. 나 바쁜데 얼른 해라'는 마음이 있던 날도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우왕좌왕함이 귀여웠고, 애쓰는 모습이 기특했지만 간혹 할 일이 많은 날에는 그런 무심한 마음도 있던 게 사실이다.

참 간사하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사진과 영상에 담긴 모든 순간을 다시 한번 꺼내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 시절 얼굴 한번 다시 만져보고 마주보고 싶다.

“ 너 다시 그 때로 돌아가면 안되니?”

막내 요엘이에게 온 가족이 종종 던지는 말이다.  

향수병을 잘 못 건드려 쏟아진 날에는 그 향기가 온 방을 진동하듯 기억의 향수가 종일 마음을 따라다닌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그립다.


"아구, 너랑 오빠 어렸을 때 노랫소리 녹음 해놓은 게 있는데 내가 이걸 늘어지도록 들었다. 그때 더 녹음해둘걸. 너무 아쉬워. 사진도 더 많이 찍어 둘 것을. 세월이 참 빠르다. 애들 사진 많이 찍어둬라."


아빠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 종종, 아니 매우 자주.

그런 말도 얼마나 많이 하셨는지 '이제 좀 그만 얘기하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부모가 되고 아이들을 낳아 길러 보니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다. 얼마나 아쉬우면 그렇게 자주 이야기 했을까, 그 시간이 힘들고 고됐지만, 보배로운 추억을 그적 기억으로만 남겨둬야 하는 게 몹시 아쉬워 그런 말을 하셨을 거란 걸.


오늘도 열어봤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커왔던 흔적을 보고 또 보고, 아이들에게도 공유했다.


"이게 무슨 나야! 아 흑역사~~ 근데 귀엽다 나! 또 보여주세요. 또! "


가끔 남편과 아이들 어렸을 때 이야기 하면 남편은 기억 못 하는 게 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며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일과 사역으로 바빴다. 오죽 바빴으면 둘째 다엘이 출산하러 병원에 데려다 주곤 다시 일하러 갔다. 그래서 탯줄도 친정엄마가 대신 잘랐다. 아이와 종일 시간을 보냈던 나에게만 있는 기억이 있다.


엄마의 기억 속에도 아빠의 기억 속에는 없는 나의 어린 시절의 조각이 들어있겠지.


작년, 올 초 한국에 방문했다 남아공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많이 울었다. 이제는 안 울 줄 알았는데 이별이 가져다주는 감정을 수도꼭지 같아서 잘 제어가 안된다. 스스로 꼭 잠가두려고 애쓰지 않으면 자꾸 줄줄 샌다.

엄마는 나와 카톡으로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한마디 하셨다.


"너는 엄마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모르지?"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전화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르긴 왜 몰라. 알지. 나도 엄마 사랑해."


전화였다면,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눴다면 쉽게 사랑한단 말이 튀어나왔을까, 잠시 머뭇거리지 않았을까.

글이어서 망설임 없이 마음 전달이 가능했다.

엄마도 알았을 거다. 아무리 글이어도 진심이 안 전해지면 마음이 와닿질 않는데, 진심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글이 좋다.


지금 이 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어 볼 수 있다.

기억의 조각도 마음도 모두 다 가감 없이 글로 써낼 수 있어서 말이다.

가끔은 말로 해야 하는 걸 글로 해서 오해가 생기는 때도 있다.

그래도 말로 안 되는 건 글로 다 가능하다.

게다가 말로 수려하지 못한 부분도 글로는 담아낼 수 있어서 좋다.

마음을 듣고 고백하에는 글이 최고다.


그래서,

이 녀석들은 편지는 언제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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