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밟힌 딸
요 며칠 딸의 이야기를 자주 쓴다. 자라나는 새싹인 열세 살 소녀. 내년이면 중학생이다. 이 아인 자기가 곧 중학생이 된다는 사실에 부푼 기대를 가지고 있다. 남아공에서 살면서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다가 작년부터 K-POP에 눈 뜬 후로는 줄곤 한류의 열풍에 본인이 한국인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한다. 여섯 살 때부터 열두 살이 될 때까지 꿈은 바뀌지 않았다. 맛있는 디저트와 빵을 만들 수 있는 파티시에가 별이의 꿈이었다. 작년까지는 말이다.
올해부터는 K-POP에 심취해 아이돌이 되고 싶은 소망에 원래부터 좋아했지만 유난히 더욱 댄스 삼매경에 빠졌다. 그리고 실력 또한 작년에 비하면 일취월장했다. 최근에는 오디션을 본다며 친구들과 연락해 오디션이 언제 열리는지, 어디서 열리는지도 관심이 폭발했다.
남아공 현지 친구인 누구는 최근 하이브에서 주최하는 국제오디션에 1차 합격했다. 그 소식 덕에 별이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해했다. 자기도 되고 싶은데 그것도 BTS 소속사인 하이브라니, 별이는 귀가 팔랑거렸다. 그 친구가 합격했다는 사실은 내게 다섯 번은 말한 것 같다. 그만큼 본인도 어떻게 하면 오디션을 볼 수 있는지가 최대 관심사인가 보다.
별이는 자신이 잘하는 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한다. 부모로서 남편과 나는 언어 쪽으로 유능한 아이의 장점이 보이는데 본인은 아직 모르겠는 게 당연한 거다. 나는 그 만할 때는 그저 간호사, 유치원선생님이 내 꿈의 전부였고,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었다. 어떻게 보면 조숙하게 크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아이의 사춘기가 왔음을 느꼈다. 별거 아닌 말에 말꼬리를 잡거나 툭하면 감정이 북받쳐 올라 엉엉 울어대는 통에 당황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오늘도 한바탕 소통이 있었다. 모처럼 아이들이 먹고 싶다는 립을 먹으러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들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오래전 연예인 매니저 경험과 매니지먼트 사업을 했던 남편은 연예계의 생리를 잘 안다. 덕분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언은 그저 남편의 이야기 일뿐, 별이의 귀에는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게 방해하는 말'이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나 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나, 별이, 그리고 잠자코 듣고 있는 엘형제 속에 퉁퉁 불어 터진 심술 난 빨개진 볼에서 뿜어 나오는 별이의 기운이 차 안을 꽉 메웠다.
강압적으로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단지 별이의 진짜 속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질문한 거였다. 별이는 집에 와서 숙제할 책을 거의 내팽개 치다시피 펼치면서 훌쩍이는 소리와 함께 구시렁거렸다. 그 소리는 계단을 오르고 있는 나에게 들여왔고,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무슨 일만 있었다고 하면 대성 통곡하고 우는 통에 팔짱 끼고 서서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등이라도 토닥거리는 순간, 대성 통곡에서 누군가 한 명은 죽어 나가는 비운에 가득 찬 울음으로 번지고 말걸 뻔히 아는 탓이다.
울면서 할 말 다하는 별이는 자기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가족이 떨어져서 살아야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차피 자기 꿈을 지지해주지도 않을 거면 더 이야기하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이 떨어져 사는 건 싫다는 말에 나도 동감한다. 그러고 싶지 않고, 사실 그럴 마음도 없다. 죽도록 원한다면 그렇게라도 해주겠다고 이야기해 줬을 뿐이다. 원하는 대로 굳이 맞춰주자면 방법은 그뿐이다.
나도 중학시절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가을 동화의 송혜교와 장나라를 보면서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연기가 하고 싶었다. 연극도 하고 싶었고 무대에 서고 싶었다. CCM가수를 꿈꿨고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자리에 서고 싶을 때도 있었다. 노래, 춤에 끼가 있었다. 정확히는 춤이 아니라 틀이 있는 안무였지만,
아는 신문방송학과를 다니는 오빠가 졸업전에 제출하는 영상에 주연배우로 캐스팅되어 단편영화도 찍었다. 그리고 교회 활동하면서 연극, 드라마, 콩트, 스킷 등으로 소원 풀이를 했다. 끼가 넘치게 많았던 건 아니지만 멍석 깔아주면 최선을 다했던 정도였다. 그 당시 가졌던 꿈을 다양한 기회로 풀고, 내가 내 주제 파악을 했기 때문인지 꿈은 더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이 나이 먹도록 내가 그때 연극이나 뮤지컬 배우를 했다면 지금 뭘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간절하지 않았던 탓에 그 이후에 어떤 액션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할 말은 없다.
별이는 나에 비하면 소원 풀 자리가 마땅치 않다. 한국이 아닌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냥 난 그 꿈을 지지해 줄 수 없다. 다만, 오디션이든 어떤 프로그램이든 도전을 하는 건 말리지 않는다. 남편도 나도 같은 의견이다. 다만, 평생에 그 직업을 위해 모든 열정을 다 바치는 건 말리고 싶은 게 진심이다.
이 아이의 꿈이 지나갈 거란걸,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자신이 잘할 수 있고, 좋아하고, 평생 하고 싶은 게 생길 거다. 그리고, 또 다시 원하는 다른 일로 옮겨갈 거다. 지금 시대보다 더 발전할테니까,
그래서 더욱 좌절하지 않고 이 시기를 지나갔으면 하지만 그건 부모의 마음일 뿐이다.
많이 고민하고, 울고, 좌절도 해보고 다시 일어나 보고 꿈도 바꿔보고 노력해서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의 차이과 결과도 스스로 경험해봐야 한다.
이야기의 끝은 나의 경험과 지금의 내 모습에 대한 이야기로 끝났다. 보육교사로서의 직업이 끝일 줄 알았던 나는 새로운 직업 가졌다. 영어소리코치가 되었고, 작가가 되었다. 책 쓰기 코치가 되었다. 별이의 눈에는 엄마는 보육교사 일 때도, 지금도 대단해 보이나 보다. 참 다행이다. 늘 엄마는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란다.
엄마도 매일 노력한다고, 어른도 직업을 바꿀 수 있고 앞으로도 또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는 모른다고, 세상에는 엄마 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고, 그래서 더욱 노력한다고말이다.
단지, 매일 성장하고 싶어서 책 읽고 글 쓰고 영어 공부하면서 앞날을 준비한다고 했다. 그저 내가 뭘 잘 할 수 있는지 그렇게 하면서 돈도 벌고 생활을 유지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는 찾아 열심히 사는 거라고 말이다.
이제 가졌던 꿈을 포기해야 하고, 자기는 꿈을 꿀 수 없고 어떤 꿈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던 별이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이내 곧 잠잠해졌다. 그리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수긍하며 일단은, 자신의 학생 본분과 임무에 충실하겠노라며 숙제를 이어갔다.
부모로서 아이가 힘들게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늘 밝고 예쁘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미 난 안다. 내가 어떤 방법으로 이 아이를 돕는다고 한들, 자기 몫이라는 게 있는 법이라 다 겪고 지나와야 한다는 걸.
때론 단호하게, 덤덤하게, 아이의 아픔을 보고도 조금은 강경하게 대처해야 하는 때가 있다. 오늘은 아이가 끙끙 앓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해결해 줄 수 없는 부분이지만, 거쳐야 할 관문을 잘 지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이의 아픔을 보고도 아프지만 안도하는 엄마,
나는 나쁜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