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변화를 축하해
"엄마... 이거... "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딸이 일어나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핏빛 휴지를 들고 바로 내게 직행했다. 언제 시작할까 싶어 마음을 졸여왔다. 초등학교 6학년. 한국 친구도, 현지 친구도 이미 시작한 친구가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모양이다. 좀 더 있다가 시작할 줄 알았다. 나도, 별이도.
계속 마음으로 그려왔다.
그날이 오면 얼싸안고 축하해 줘야지.
창피한 일도 아니고 걱정할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지.
같이 파티도 해줘야지.
그러나 아이가 내민 휴지를 보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축하한다는 말보다 '어쩌지'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란 듯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곤 내가 쓰던 패드를 몇 장 별이에게 가져다주고 사용법을 천천히 설명했다. 주의 사항 몇 가지와 함께.
"축하해 딸, 아주 잘 크고 있네.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 상태가 된 거지. 걱정하지 말고, 뒷정리는 잘해야 해. 몸이 좀 피곤할 수 도 있고, 예민해져서 신경질이 날 수도 있어. 단 음식이 당길 수도 있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이불속에만 있고 싶을 수도 있고. 아무튼, 축하해 딸!"
이렇게 말하곤 안아주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순간 얼마나 놀랐을까, 초경을 시작했다는 사실보다 이제 키가 안 크면 어쩌나 걱정하는 마음이 더 큰 모양이다.
"클 거야. 더 클 거야.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돼. "
요즘 관심사가 다이어트인가 보다. 걱정이 된다.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는데,
그렇잖아도 요 며칠 자기 이제 패스트푸드 안 먹고 샐러드랑 한식 위주로 먹어도 되겠냐고 물었던 터다. 질풍노도의 시기라 피부 트러블도 나고 자꾸 홍조가 생기는지 얼굴 피부도 예민해졌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기껏해야 뾰루지 한 두 개 정도밖에 없던 터라 피부 고민 없이 지나왔다. 별이는 나랑은 다르다. 피지 분비가 활발한지 양볼에 빨갛게 많이 올라왔다.
8-10월 사이에 오디션이 있다고 한다. 아직도 아이돌 오디션에 미련을 못 버렸다. 며칠을 끙끙 거리더니 카톡으로 자기 계획과 마음을 보내왔다. 식단 관리도 허락했고, 오디션도 허락했다. 하고 싶으면 해 보라고 말이다. 그런데 자꾸 다이어트 이야기를 해서 나도 예민해진다. 그냥 골고루 잘 먹으면 좋겠구먼,
우리 엄마도 내가 어렸을 때 이렇게 다이어트한다고 해서 속상했겠구나.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내가 그랬구나. (그래도 나는 중학교 이후였는데......)
남편에게 와서 별이 이야기를 하니 "축하해야겠네. 이따 케이크 살까?" 두 마디 한다. 오늘 아침에는 남편이 감자전을 해준다며 주방에 있었다. 둘째 다엘이 아빠 주변을 어슬렁거렸는지 아빠에게 무슨 말을 듣고 내게 쪼르르 달려왔다.
"누나 뭐 축하해야 되는데요? 무슨 일 있어요?"
"응... 아니, 누나가 드디어 숙녀가 된 거지!"
"잉? 누나 여잔데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니까, 누나도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 상태가 된 거야."
"에~~에? 우오!!! 누나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쪼르르 별이에게 달려간다.
시끌벅적한 소리가 한 동안 오갔다.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남편은 다엘이에게 누나는 이제 아기를 가질 수 있는 몸이 됐다고 설명했다고 했다. 그리고, 너희 두 남자 시끼들이(엘 형제) 누나를 어떤 사람도 함부로 못하도록 잘 지켜줘야 된다고 말했다고 했다. 실제로 항상 그렇게 지키고 있을 수 없지만, 보호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셈이다. 고마웠다. 아빠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게 별이에게 축하해야겠다고 말하고, 동생들에게 누나 잘 보호해 주라고 말한 게 기특하게 느껴졌다. (오구구, 남편. 그런 생각도 알 줄 아는구나!)
하루 종일 온갖 신경이 초경에 쏠렸을 거다. 아침에 이제 매월 겪게 될 마술에 대해서 정보를 찾아봤나 보다. 남편과 내가 사역지에 간 사이, 아이들은 지인 집에서 약 3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지인에게 오늘 초경을 시작했다고 말한 모양이다. 온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 같다. 별이는.
패스트푸드는 안 좋아. 다행이다 어차피 당분간 안 먹으려고 했는데,
단 음식은 왜 당기는 거지? 아, 스트레스받는구나.
나는 아직 배는 안 아픈데? 아, 아픈 사람도 있구나.
줄넘기는 해도 되나? 운동은 어떻게 해야 되지? 스트레칭만 해야 되나.
혼자서 벌써 인터넷을 뒤져 주의 사항 및 자기가 겪게 될 상황을 공부했나 보다. 방에 들어가니 책상 위에는 사춘기 여자아이들이 읽는 책이 꺼내져 있었다. 이 책은 벌써 2년 전에 누군가에게 받은 중고책이었다. 그동안 궁금할 때마다 봤는데도 다시 보고 싶어졌나 보다.
저녁에 케이크 사서 축하 파티 해주려고 했더니 자기는 케이크는 안 먹겠단다.
아! 다이어트.
그래서 집에 있던 좋아하는 소고기를 몇 점 구워주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 마트도 문을 다 닫았다.
(남아공 마트는 늦어도 오후 5시면 문을 다 닫는다.)
기분이 묘하다. 아장아장 걷고, 장난감 기타 치며 시크릿 쥬쥬 흉내 내던 아이가 내년이면 Teenager(14세)에 진입한다. 그리고 제2차 성징이 눈 밖으로 보인다. 신체 변화에 따라 느끼는 감정변화도 눈에 띄게 나타난다. 부모로서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은 지도 고민하게 된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러나 따뜻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세심하게.
20230716일 기록해 본다.
"엄마 나는 초경이 언제였지?" 물을 때,
"응. 너는 2023년 7월 16일이었어."라고 정확하게 이야기해 줄 만큼 기억력은 좋지 못할 거다. 내가 말해 줄 것도 없이 본인이 더 잘 기억할 테다. 그러나 인생의 큰 변화가 시작되는 시점을 혼자 겪게 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으로 기록해 본다.
"축하해 딸."